[© 최광민] 보르헤스의 {픽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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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보르헤스의 {픽션들}

草人! 2025. 1. 11. 00:50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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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픽션들}





내 또래들이 보통 그러했듯 나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통해 보르헤스에 입문했다.

{장미의 이름}도 사용했던 수많은 보르헤스적 요소들 (도서관, 미궁, 하이퍼텍스트, 인용 등등)은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난독증을 유발시키지만, 일단 익숙해지고나면 보르헤스식 글쓰기가 작가와 독자들에게 얼마나 편한 무대를 선사하는지 깨닫게 된다. 보르헤스는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이 작품의 플롯을 짤때 두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보르헤스적 발상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진자}는 사실, 보르헤스식 pseudo-realism이 realism으로 변신했을 때의 비극에 관한 보고서이다.

보르헤스식의 모호한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번역자들로 하여금 그 글에 "주석"을 달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듯 싶다. 그런데 주석을 달고자 하는 번역/주석자들의 진지한 시도는 때때로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민음사 판 황병하 번역에 등장하는 "번역자의 주석" 가운데는 기상천외하게 틀린 것이 너무나도 많다.

가령, "Passion Flower/수난화"를 "열정 (passion)의 꽃"이라고 한 주석, AD 7/8세기의 영국 수도사 베데 (Bede) 혹은 라틴어명 "베다 Beda"를 인도 힌두교 경전 {베다}와 착각한 주석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석" 실수는 불문학자 김정란 교수가 조르쥬 나타프의 {상징, 기호, 표지}를 번역하면서 애써 삽입한 주석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냥 번역만 하시면 좋을 뻔 했다.


{픽션들}은 보르헤스의 글쓰기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그의 대표적 단편이다. 여기 수록된 단편들 가운데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특별히 (움베르토 에코 덕에) {바벨의 도서관}과 {불사조 교파}, 그리고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가장 좋아한다.

  •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
  • 원형의 폐허들
  • 바빌로니아의 복권
  • 바벨의 도서관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불사조 교파
  • 기억의 천재, 푸네스

단편 [기억의 천채, 푸네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Funes, the Memorious

...Without effort, he had learned English, French, Portuguese, Latin. I suspect, nevertheless, that he was not very capable of thought.
To think is to forget a difference, to generalize, to abstract. In the overly replete world of Funes there were nothing but details, almost contiguous details....

그는 아주 쉽게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생각'한다는 것은 차이를 잊고,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걸 뜻한다. 과도하게 꽉 찬 푸네스의 세계 속에는 오직 '세부'적인, 끝없이 이어지는 세부적인 것들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 번역: 최광민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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