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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1-12-12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1: 軍士父一體
© 최광민, Kwangmin Choi, 200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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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1: 軍士父一體
1.
1992년 3월, 나는 이름도 없이 신병훈련소 유격장의 흙바닥을 뒹굴고 있던 **번 훈병이었다. 당시 방위병 제도가 없어진다는 소문에 나처럼 겁먹고 '자원'입대한 "자원" (혹은 "군바리")들이 많아서, 해당 달 신병훈련소 입영 650여명 가운데 92%가 초급대 이상 대재 학력 이상 소지자였다. 내가 태어난 해의 출산율은 단군 이래 최고의 절정을 친 해였기 때문에, 해당 년 입영대상자 중 고졸 2급 판정자는 자동면제 처리되곤 했다 (심지어 대학을 3수한 대학동기 중 일부도 소집대기 후 면제가 되었다.) 방위병 제도가 정말 사라지게 된 것은 몇 해가 더 지난 후였다.
입영 첫날, 정신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빨래비누 찌꺼기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너덜너덜한 "B급" 훈련복을 받아들고 연병장에 사열한 신병들을 향해 육군 제 52사단장은 "단군 이래 최고학력 신병집단>"이라고 한껏 신병들의 사기를 추켜 세웠다. 입영 대상자 중 대학생 비율이 92%라면 아마도 단군 이래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고학력 신병임에는 분명했다.하지만 꽃샘추위가 심해서였는지 사단장의 찬사에 대한 "단군 이래 최고 엘리트 신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단장은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즉시 실시함으로써 우리에게 처절한 복수를 안겨다 주었다.
이 "엘리트 집단"으로 우글거리는 나의 내무반에는, 4월 5일에 예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면서 훈련을 거부하고 기도에 몰두하는 바람에 전 내무반원을 단체기합의 저주로 몰아넣은[엘리아 기도원] 신도가 하나 있었고, 무엇보다도 전체 훈련소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던 고문관이 무려 3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이 세 명은 모두 강남 출신이었고, 두 명은 국내에서 박사과정 중, 다른 한명은 외국에서 박사과정 중인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 자원이었다. 이들을 "박사고문관"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대한민국 고문관들의 특징은 어느 훈련소, 어느 자대에서 동일하며, 단기사병과 기간병의 구분도 없다. 모든 고문관의 1차특징은 육군도수체조와 PT체조 중, 숙달된 조교가 "마지막 회 반복구호 없다."며 수십 차례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반복구호를 반드시 복창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우렁차게.
2.
그날은 유격훈련이 있는 금요일이었다.
그날도 세명의 박사고문관들은 앞에 불려나와서도 목소리가 터져나가도록 그렇게도 하지말라는 반복구호를 복창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마지막회 반복구호를 몇번 실수로 복창하기는 했지만 이미 목이 다 쉬어 있어서, 아무리 숙달된 조교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PT체조 가운데 가장 공포의 PT는8번 [온몸비틀기].
사회에서 허리를 한번이라도 비끗했던 적이 있던 사람들이 몸서리치는 그 [온몸비틀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사고문관3총사가 복창을 남발하는 바람에, 전 신병들이 온몸비틀기만 수 백번째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온몸비틀기] 세트가 수 십번이 넘게되면, 그 체조형상은 고통스럽게 등 대고 누워서 두다리를 반쯤도 못든 채 땅바닥에서 문어가 흐느적거리는 꼴이 된다.
그 문어 꼴을 보고 숙달된 조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그런데 이 노래제목은 {어머님 "은혜"}가 아니라 {어머님 "마음"}이다 !)
훈련소에서 버스로 10 정거장이 채 떨어지지 않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은혜를 떠올리자, 쥐난 다리의 고통 때문인지, 끊어지는 허리의 고통 때문인지, 박사고문관3총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를 낳으실때 어머니가 치른 산고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이 오버랩 되어서인지, 모든 훈련병의 눈에는 흙먼지와 범벅이 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600여명의 훈련병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흐느끼면서 이 노래를 합창하고 있었다.
3.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아아, 고마와라. 스승..
스승?
600여명의 합창은 동시에 멈추었다.
스승?
아뿔사, {어머님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의 후렴구는 왜 그리도 유사하게 느껴졌던지!. 합창이 멈춘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박사고문관 3총사 중에서 가장 가방끈이 길던 유학파 고문관이 교관이 서있는 단상 바로 아래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아, 고통 속에서의 한줄기 웃음은 얼마나 달콤하던지! 키득거림은 순식간에 600여명 전원에게 번져갔다.
훈련병들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버린 교관은 돌발상황에 당황했는지 단상에서 뛰어(날아)내려와 단상 옆에서 키득거리던 유학파 박사고문관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이 새끼. 미국물 먹더니 아주 지랄하는구나.”
교관의 일격과 함께 우리들 사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던 숙달된 조교들도 키득거리는 우리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전투화로 코를 걷어채여 코피를 질질 흘렸지만, 그렇게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웃음을 잊고 살았던 신병교육대 3주차에 비로소 터져나온 웃음소리. 걷어 채이는 고통의 비명과 버무려져도 결코 멈춰지지 않았던 그 키득거림은, 과연 혹독한 교관과 조교에 대해 힘없는 훈련병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저항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나는 3명의 박사고문관, 열흘 후면 재림할 예수를 영접하기 위해 전날 훈련에 불참한 608번, 그리고 유격 중 키득거리다 본보기로 차출된 몇 명과 함께 군기교육대로 보내져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구보하고 있었다.
그들과 구보하며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군대에선, 스승과 부모가 하나라는 것을.
"軍士父一體" 라는 것을.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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