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3: 존엄




일상

[©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3: 존엄

草人! 2022. 1. 27. 01:39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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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3: 존엄 

1. 방위분류학

지금은 지구상에서 멸종해버린 방위 (단기사병)는 크게 두 그룹으로 분류된다.

(1) 향방

소위 "동사무소 방위 (동방)"로서, 주로 동사무소와 구청에 배속되어 예비군 소집업무를 담당했다. 군 부대에서의 예비군 교육은 "군방" (소위 군부대 방위) 의 소관이었다. 이들이 배속된 동사무소내 군사무소를 "동대"라 불렀고, 동대장의 지휘권 아래 있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군기는 다소 해이했고, 국가는 이들의 출퇴근 비용과 점심값을 지불했다. 이들은 대체로 동사무소 지하실과 옥탑에서의 가혹행위를 군생활의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2) 군방

군부대에 배치된 방위로서, 배속된 부대의 특성에 따라 예비군 교육, 무기관리, 행정, 초소경계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점심은 해당 군부대에서 지급했다. 군방들은 앞서 말한 동방들을 천시하여 동급의 방위로 간주하지 않았고, 따라서 동방들 공공연하게 조롱/모욕했는데, 일례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방들은 예비군을 이끌고 교육에 들어오는 동방들의 정문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보조문이나 개구멍을 사용하게 했다.

훈련소 시절, 군 개혁과 하나회 숙청을 부르짖던 YS는 자대배치에 난수발생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는 훈련소에서 훈련병 대표가 번호를 하나 고르면, 그에 따라 난수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랜덤"하게 자대가 배치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힘있는 분의 자제 분들에겐 난수발생 전에 이미 꽃보직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고, 나머지 훈련병들에게 돌아갈 꽃보직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70만원만 주면 집에서 100미터도 되지않는 동네 동사무소 동방으로 빼주겠다는 동대장의 사악한 유혹을 뿌리치신 (통장) 애국모친을 둔 덕분에, 나는 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도 한 시간 반을 가야하는 안양에 배치되었다.

나는 군생활 중 국가에 재산을 헌납하기도 했다. 한 달에 약 36000원 가량을 출퇴근비로 자비부담했는데, 사실 그다지 자발헌납은 아니었다. 원래 군방의 출퇴근을 위해 부대는 출근버스를 운용하거나 출퇴근비를 지급해야 했는데, 부패한 우리부대 장교들은 그 돈을 떼어먹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월급 6410원 (당시 쇠고기 부페 입장료는 5-6천원이었다)에서 410원을 지급하지 않고 부대 비자금으로 꿀꺽 삼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따라서 국가는 17개월 x (36000원 + 410원) 을 나와 내 전우로부터 부당하게 갈취했던 셈이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안양의 한 부대에서 "명목상" 낮시간 동안 국가를 보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퇴근은 보통 8시에 했다.



2. 자대배치 첫날, 막사 앞

자대 야외필승관에서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몇몇의 동기와 함께 대대에 배치가 되었다. 우리 대대로 가려면 연대본부에서부터 야트막한 산을 넘어가야 했는데, 인솔 고참이 오리걸음으로 그 산길을 넘게했다. 그때 그 인솔고참은 어떤 이상한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였다. (당시에는 그게 서태지 노래인 줄 몰랐다). 그 날의 트라우마 탓인지, 나는 평생 서태지의 노래를 단 한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각설하고, 대대 막사 앞에 도착하니 대대원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날의 폭우로 내가 오리걸음으로 넘어간 그 비포장 산길이 깊게 패여서 "나라시 작업"이란 걸 해야 한다는 것 같았다. 나라시? 곱게 자란 나로서는 그런 "비속어"는 생소했다. 아무튼 동기 세 명과 막사 앞에 서있노라니, 중간 고참 하나가 우리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야 이 XX들아, 오함마하고 당까하고 다찌에 싣고 막사 들어가 딸딸이 쳐 !!"

우리는 얼어붙었다. 오함마? 당까? 다찌? 무엇보다도 막사에 들어가 뭘 하라고? 마지막 명령은 인간의 존엄에 관한 중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일단 막사에 들어가 멍하게 서 있으니까, 그 중간고참 하나가 들어오더니 동기 하나를 발로 차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XX들아, 딸딸이 몰라?"
"시정하겠습니다"

또 발로 찼다. 바지를 내려야 할 시점인가?

"시정하겠습니다"

또 발로 찼다. 다시 한번, 시정하겠습니다.

급기야 동기 하나가 바지를 내렸다.

그걸보고 피실피실 웃더던 중간고참은 막사 책상에 놓인 물체 하나를 집더니 오른손으로 뭔가를 열심히 돌렸다. 딸딸딸딸딸...하는 소리가 났다.

"필씅~ 통신보안! 나라시 작업준비 끝났는데 말입니다...."


Wikimedia Commons



3. 6개월 후, 막사 앞

6개월 후, 신병이 둘이나 들어와서 막사 앞에 정자세로 서있었고, 최일병 (나)와 부사수는 건달같은 표정을 지으며 신병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이 XXX들아, 막사에 튀어 들어가서 빨랑 딸....."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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