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2: 방위와 여대생

일상

[©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2: 방위와 여대생

草人! 2022. 1. 27. 01:38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4-03-16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방위의 이름으로 #2: 방위와 여대생 

# 1993년 5월 마지막 주 금요일. 안양

퇴근허가를 받기 위해 행정반을 들른 최 상병에게, 중대장은 이튿날에는 부대가 아닌 여의도로 출근하라는 명령을 시달했다. 이른바, 보훈의 달을 맞이한 여의도 안보교육장 정돈사업 (=청소)의 일환이었다.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근데 말입니다, 복장 말인데 말입니다, 애들 환복은 어디서 시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말입니다, 말입니다, 말입니다. 정규군 기마부대 사라진 지가 백 여년인데 대한민국 국군은 참 말을 많이도 찾는단 말이다.

각설하고, 환복(換服).

풀이하자면 단기사병이 출근시 평상복을 군복으로 갈아입는 행위를 뜻하는 "군사용어"다. 퇴근시라면 환복이란 군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뜻할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과 함께 대두된 환복문제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단기사병(이하, 방위)에게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였다. 군복을 입고 출퇴근이 허용되는 지방 방위들과 달리, 수방사 소속 방위들은 도시미관을 이유로 평상복을 입고 출근해 부대 안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게 지침이 하달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의도 안보교육장 어디에서 과연 백 여명의 방위들이 환복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거기 B-29 있잖아, B-29."

중대장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F-80 "쌕쌕"이와 함께 한국전을 누비던 B-29에겐 가없는 모욕의 순간이었다.


B-29 (출처: Wikimedia Commons)





2. 토요일, 여의도 안보교육장

다음날 최 상병은 전시된 B-29 속에 들어가 환복을 마친 십 여명의 대대원을 이끌고 여의도 안보교육장 바닥에서 담배꽁초와 휴지를 줍고 있었다. (그 시간 우리 부대의 갈참과 폐참은 B-29 속에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귀에 위크맨을 끼고 수잔 베가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종이 기억나지 않는 북괴의 탱크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떡집에 불났을 때 날만한 소리같은 수선스런 소리가 들리면서 플래쉬가 번쩍였다.

"뭐야 이거."

고개를 든 최 상병의 주변에는 5명 정도의 아릿다운 여인네들이 서 있었고, 그 중에 대표로 보이는 하나가 나에게 더듬거리는 영어로 자신들은 타이완 카오슝에서 수학여행 온 여대생들이라고 밝히고, 태어나서 한국군은 처음보는데 함께 사진을 찍으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카오슝. 당시 나의 대만펜팔인 宗曉靑도 카오슝이 살고 있었는지라 매우 반가왔다.

그때 내 옆으로 비닐 쓰레기봉투를 짊어지고 지나가던 김 이병이 묻지도 않았는데 영어로 말했다. 이 자는 영문과를 다니다가 입대한 지 4개월 된 막내였다.

"Oh, we are just Bangwi."

나는 말없이 김 이병을 노려봤다.,

"시정하겠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김 이병은 큰 소리를 외친 후, 쓰레기 봉투를 들고 저 멀리로 뛰어갔다. 이 염화미소, 불립문자를 이해하지 못한 대만 여대생들은 이 장면에 븐명 큰 감명을 받았으리라.



대만 여대생들이 한국군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안보교육장에 퍼지자, 곳곳에 "짱"박혀있던 말년 방위 상병들과 기간사병 병장 몇 명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B-29 속에서 자고있던 폐참과 갈참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나와있었다.

모여든 한 무리의 한국군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여대생 중에 과대표라 생각되는 친구가 물었다. 왜 어떤 사람 군복은 민무늬 국방색인데, 어떤 사람 군복은 얼룩덜룩한지를. 순간 말년 방위 상병들의 표정은 차갑게 굳었다.

답 대신 나는 단체사진을 찍을 것을 서둘러 제안했고, 아까의 김이병이 대만 여대생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받아 사진을 찍었다. 우리 모두 그 사진 뒤에 싸인을 해 주었고 대만 여대생들은 감격에 찬 얼굴로 무한히 행복해했다. 아마도 이 사진은 지금 세계 어디엔가 살고 있을 그 과대표 (이름이 링링이었던가?) 의 사진첩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결혼해서 애가 있다면 아마도 둘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겠지. 

"엄마, 엄마랑 같이 사진 찍은 이 아저씨들 누구야?" 
"아, 이 아저씨들은 대한민국 공수부대 아저씨들이야."

나는 중문과에 다니던 동기 놈을 시켜 중국어로 한가지 제안을 했다. 12시부터 휴가인데, 괜찮다면 우리가(대학다니던 동기들) 서울 구경시켜줄테니 저녁에 맥주라도 함께 하자고. 여대생들은 흔쾌히 승락했다. (대만이지만) 대륙의 여인들은 과연 호탕했다.




3. 팔도사나이 

메가폰 켜는 소리가 나더니 중대장이 메가폰에 대고 외쳤다.

"시간됐으니, 환복하고 퇴근해라."

우리는 여대생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다시 B-29에 들어가 사복으로 환복하고 나왔다. 전화부스를 이용한 수퍼맨의 환복에나 비길만한 방위들의 신속한 변신에 여대생들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가 그들이 생각하던 통상의 "그" 한국군이 아닌 방위임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휴가는커녕 부대로 돌아가 오렌지색 체육복을 입고 축구나 할 수 밖에 없는 병장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 방위들은 대만 여대생들과 함께 "퇴근가" {팔도 사나이}를 연호하며 안보교육장을 걸어나왔다.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두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얼싸좋다 최상병, 신나는 어깨춤
우리는 한가족, 팔도 사나이.

신나게 장단맞춰 노래부르자.
정다운 목소리, 팔도 사나이 !

띵호아.

p.s.

안타깝게도, 남대문 시장의 인파 속에서 여대생들을 잃어버렸다는.

혹은

(여대생들이) 도망갔다는.




草人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