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김지연 vs. 이지연: {찬바람이 불면}과 전화괴담

일상

[© 최광민] 김지연 vs. 이지연: {찬바람이 불면}과 전화괴담

草人! 2021. 12. 5. 15:41
작성

© 草人 최광민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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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김지연 vs. 이지연: {찬바람이 불면}과 전화괴담

순서
  1. 찬바람이 불면
  2. 전화괴담

2021-01-13

요 며칠 기온이 훅 떨어지고 바람도 세게 불다보니 왠지 "쎈치"해져서, 20년 전 소리바다/냅스터 시절 받아둔 1980 - 1990년대 인기가요 mp3를 CD에 구워둔게 있길래 22년된 파나소닉 디스크맨에 넣어 간밤에 들어보았다.



디스크맨이랑 매치하기 위해 헤드폰도 8/90년대 "갬성"나게 귀 에 닿는 부분이 (기왕이면 오렌지색) 스폰지 로 된게 있을까 이베이를 찾아봤는데, 하도 촌스러워서 요샌 그런건 안파는 듯.

하지만 그런 것 없어도, 디스크맨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1번 곡은 마침 90년대 무보정 미모 아이돌로 손꼽히는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 다오}.

https://youtu.be/1joAzG03q7Q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 [가요톱10, 1989]

씨디 굽던 당시 왠 바람이 불었었나 싶긴한데, 2번 곡 역시 바람과 관련된 이지연의 {찬바람이 불면}.

대학 1학년 가을이던가 나왔던 노래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지난 30년 간 이지연의 최고 노래라고 평하며 쎈치해질 때 마다 정말 무수히 들었다. 사실 이지연의 약간 헉헉 거리는 듯한 가창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부드럽게 부르는 이 노래를 최고의 곡이라 늘 생각해 왔다.

새벽에 홀로 음악을 듣다보니 왠지 더 쎈치해져서, 아릿답던 이지연의 1990년대 모습을 보며 노래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투브에서 90년 대 방송을 찾아본다.

그런데 기대했던 이지연은 안나오고 계속 엉뚱한 사람이 부르는 동영상만 잡히는 것.

"김"지연이라고.

https://youtu.be/g1sscUBatrA
 

아, 김지연이란 사람의 80년대 노래를 이지연이 90년대에 리메이크 한건가?

이렇게 생각해서 계속 이지연의 {찬바람이 불면}을 검색해 봤지만, 계속 김지연 동영상만 뜨는 것이었다. 

더 찾아보니 이지연은 아예 그 노래를 부른 적도 없더라는.

oh my god !

Oh My God !!

OH MY GOD !!!


대학 1학년 때부터 지난 30년 내내, 전 이 노래를 들으며 엉뚱한 가수를 떠올렸던 것이다.

가요톱10에서 몇 주간 1위도 했다니 TV에서 얼굴을 봤을 법도 한데, 예능방송을 잘 안봐서 그랬던 듯. 그런데 나만 헷갈린게 아닌게 소리바다에서 다운받았던 . mp3파일명도 분명 "이지연 _ 찬바람이 불면"이라고 되어 있다.

남의 사랑을 가로챈 듯 한 죄책감에 가수 김지연에게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하여튼 상심과 당혹감을 담아 다음날 우쿨렐레 채보를 하며, "이젠 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라는 구절을 씁쓸히 곱씹는다.



아디오스, 미 아모르!

그녀는 이렇게 제 마음에서 영영 떠나가 버리게 되었다.





내가 노래를 듣던 저 파나소닉 디스크맨에겐 슬픈 전설이 있다.

1999년 봄에 두달 간 KAIST에서 대학원생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대학써클 2년 후배와 3인실에서 룸메이트를 했었다. 짧지만 국가의 녹을 먹던 시절. 정말 기숙사 샤워장에서 녹물이 나왔다.

4월 어느날 궁동에서 술 마시고 자정 좀 넘어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서 잠을 청하며 이 디스크맨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졸린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고 받았더니 대뜸 어떤 앳된 목소리의 여자가 막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턴 내가 말할 테니까 오빤 듣고만 있어"

시키는 대로 듣기만 했다. 40분 간.

사연은...  오빠를 처음 만났던 이야기, 4년 간 사귀며 나눴던 아름다운 이야기들, 오빠가 수차례 다른 여자랑 바람 피운 사연, 그래도 받아줬던 사연, 앞으로도 돌아오면 받아주겠다는 용서의 말. 그 오빠란 놈, 듣기만 해도 정말 나쁜 놈이라 울컥하기도 했다.

술에 취해 듣다 졸다가를 반복하며 40분이 경과할 무렵, 이윽고 전화 속 여인은 말을 끊으며 그녀가 생각한 "오빠"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 오빠가 한번 말해 봐".

그래서 시키는대로 했다.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여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즉시 딸깍.

다음날 오후, 전화의 여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는데, 뭐 그렇다고 그걸 약점 잡아 만나자고 수작 부리고 그러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1999년 유학 왔을 땐, 어떤 또 다른 여인이 "몇년 간 사귀다 유학 간 후론 소식을 끊은 (역시 나쁜 놈으로 여겨지는) x광민 오빠"에게 비슷한 사연을 담은 이메일을 내 이름으로 시작하는 핫메일 주소로 보내온 적도 있다. 아마 가짜 이메일을 알려준 듯? 이번에도 "이메일 잘못 보내셨습니다"란 정중한 답장을 써보냈다.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아무튼 요새도 가끔씩 이 기억이 나면 혼자서 키득거리며 웃는다.
 
전화 거실 땐 수신자 확인 꼭 잊지 마세요.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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