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울티마와 삼보 트라이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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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울티마와 삼보 트라이젬

草人! 2021. 12. 5. 15:24
작성

© 草人 최광민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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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울티마와 삼보 트라이젬


http://www.surfing.net/ultima/index2.html

내가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란걸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은 1984년을 전후해서였다.

당시 한국의 개인용 컴퓨터 업계는 애플II 계열과 MSX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아버지께서 삼보 트라이젬 컴퓨터를 하나 장만해 주셨다. 


Apple II (source: Wikemedia Commons)

삼보 트라이젬 애플II 클론과 엡손 플로피 드라이버 + 도트매트릭스 프린터

8비트 8088프로세서, 녹색 모노크롬 모니터, 메인메모리는 64kb, 게다가 당대로서는 흔치 않았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까지 포함되어 있던 애플II 클론 이었다. 컴퓨터를 가진 내 친구들이 대부분 마그네틱 테이프 레코더에 정보를 저장할 시절, 내가 가진 "고용량" 플로피 디스크는 모든 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검정색 정사각형의 큼직한 플로피 디스크는 편법으로 양면을 다 포맷할 수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 가끔씩 에러가 나기도 했다.

그 플로피 디스크 속에 담았던 게임 가운데 {울티마} 시리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임이다. 나는 {울티마4}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아서 C. 클라크의 {2001 오디세이}를 붙들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코스모스}와 {2001 오디세이}가 입시지옥 가운데 우주로 향한 나의 도피처였다면, {울티마}, {바즈테일}, {호비트}등의 어드벤처/롤플레잉 게임들은 환상세계로 향한 나의 도피처였다.


Ultima V (source: Wikimedia Commons)

해적판 게임이었기 때문에 매뉴얼도 지도도 없었는데다가, 권장되지 않던 양면포맷을 한 플로피디스크는 게임 중 가끔씩 에러를 냈다. 지루한 모노크롬 화면에서 벗어나 찬란한 16컬러를 보고 싶을 때는, 모노크롬 모니터 대신 컬러TV와 트라이젬을 연결해서 그 현실감 나는 16색 CGA의 세계에 빠져들고는 했다. 모킹보드 카드에서 울려나오던 그 4중화음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지.

나는 놀라운 집념을 가지고 매뉴얼의 도움없이 게임에 사용되는 마법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씩 하나씩 완전히 경험으로 짜맞춰나갔고, 문게이트의 개폐를 조절하는 두 개의 달의 삭망조합을 해독했고,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때 그랬던 것처럼 일일이 그 넓은 브리타니아를 걸어다니면서 답사해 스스로 지도를 만들었고, 게임에 사용되는 룬문자를 로마자와 대조한 사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매뉴얼 없이 직접 찾아낸 정보를 적어내린 노트가 두 권.


Britannia (source: Wikimedia Commons)

요새 게임의 현란한 3D와 서라운드 음향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오래된 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서 심심할때 내 랩탑으로 해보면서, 이 롤플레잉 게임의 목표인 8개의 미덕(Honesty, Compassion, Valor, Justice, Sacrifice, Honor, Spirituality, Humility)과 3개의 정신(Truth, Love, Courage) 을 오래된 주문처럼 하나씩 소리내어 읊어본다.

평생 여덟가지 미덕을,
세 정신 가운데 아우르리라.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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