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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네가 본 건, 지붕 덮은쇠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속 구름찢어라, 사람들아,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아침 저녁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볼 수 있는 사람은외경을알리라아침 저녁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마실 수 있는 사람은연민을알리라차마 삼가서발걸음도 조심마음 모아리며.서럽게아 엄숙한 세상을서럽게눈물 흘려살아 가리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2025.02.10

최영미,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최영미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 촛불을 춤추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밤도 밤이 아니다 술잔은 향기를 모으지 못하고 종소리는 퍼지지 않는다 그림자는 언제나 그림자 나무는 나무 바람은 영원한 바람 강물은 흐르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면 겨울은 뿌리째 겨울 꽃은 시들 새도 없이 말라죽고 아이들은 옷을 벗지 못한다 머리칼이 자라나고 초생달이 부풀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처녀는 창가에 앉지 않고 태양은 솜이불을 말리지 못한다 석양이 문턱에 서성이고 베갯머리 노래를 못 잊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면 미인은 늙지 않으리 여름은 감탄도 없이 시들고 아카시아는 독을 뿜는다 한밤중에 기대앉아 바보도 시를 쓰고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하는 정녕 사랑이 아니라면 아무도 기꺼이 속아주지..

2022.07.31

왕범지 (王梵志) 시 모음

[노트] 왕범지의 시는 왠지 좀 툴툴거리는 말투의 반말로 읽는게 제 맛인 듯 싶다. 그렇게 옮겨본다. ---- 梵志翻着袜, 人皆道是錯. 乍可刺你眼, 不可隱我脚. '범지는 버선을 뒤짚어 신었어!' 모두들 내가 잘못했다 말하지. 당신들 눈엔 가시처럼 보여도 내 발이 아프진 않아 ----- 我不樂生天 亦不愛福田 飢來一砵飯 困來展腳眠 愚人以為笑 智者謂之然 非愚亦非智 不是玄中玄 하늘에 태어나길 바라지도 복 많이 받기도 원하지 않아 그저 배고프면 밥 한사발 먹고 피곤하면 발 뻗고 잘 뿐. 바보는 비웃지만 현자는 맞다고 해 어리석은 것도 지혜로운 것도 그렇다고 심오한 뜻이 있는 것도 아냐 ------ 吾富有錢時 婦兒看我好 我若脫衣裳 與吾疊袍袄 吾出經求去 送吾即上道 將錢入舍來 見吾滿面笑 繞吾白鴿旋 恰似鸚鵡鳥 邂逅暫時貧..

2022.01.16

장석주,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Wikimedia Commons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 장석주 세상에서 내가 본 것은 아픈 사람들과 아프지 않은 사람들. 살아있는 것들의 끝없는 괴로움과 죽은 것들의 단단한 침묵들. 새벽 하늘에 떠가는 회색의 찢긴 구름 몇 장. 공복과 쓰린 위. 어느날 찾아오는 죽음뿐이다. 말하라 붕붕거리는 추억이여. 왜 어떤 여자는 웃고, 어떤 여자는 울고 있는가. 왜 햇빛은 그렇게도 쏫아져내리고 흰 길 위의 검은 개는 어슬렁거리고 있는가. 구두 뒷굽은 왜 빨리 닳는가. 아무 말도 않고 끊는 전화는 왜 자주 걸려오는가. 왜 늙은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공원의 비둘기떼들은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는가.

2021.11.16

신경림, {비에 대하여}

Wikimedia Commons 비에 대하여 - 신경림 땅속에 스몄다가 뿌리를 타고 올라가 너는 나무에 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때로는 땅갗을 뚫고 솟거나 산기슭을 굽돌아 샘이나 개울이 되어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들고 먼 데 사람까지를 불러 저자를 이루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심술이 나면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땅속에 스몄다가 뿌리를 타고 올라가 너는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으로 물고 할켜 나무들 줄줄 피 흘리고 상처나게 만들고 더러는 아예 뿌리째 뽑아 들판에 메다꽂는다 마을과 저자를 성난 발길질로 허물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을 거친 언덕에 내평개친다 하룻밤새 마음이 가라앉아 다시 나무들 열매 맺고 사람들 새로 마을을 만들게 하는 너를 보고 사람들은 하지만 네가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한다 너를 좇아 만들..

2021.11.16

송기원, {눈 내린 며칠}

Wikimedia Commons 눈 내린 며칠 1 外 - 송기원 왜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몰랐을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죽음이라고만 여겼을까. 깊어진 한겨울을 연사흘 눈이 내려 쑥부쟁이, 엉겅퀴, 개망초, 강아지풀 시든 덤풀까지 쌓인 눈 속에 온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 죽은 고양이 한 마리, 끈이 떨어진 슬리퍼 한 켤레, 컵라면 그릇, 깨진 플라스틱 대야마저 쌓인 눈 속에 온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 아직도 나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여. 천홍공단을 끼고도는 시궁창 옆에서 비로소 안으로 열린 길을 더듬어들며, 나 또한 쌓인 눈 속에 온전히 모습을 감추네. 눈 내린 며칠 2 무너진 둑을 수리하느라, 물을 빼버려 펄을 드러낸 천홍 저수지에도 밑바닥 가득히 눈이 쌓였다. 겨울내내 저수지를 지날 때마다 내 ..

2021.11.16

백석, {흰 바람 벽이 있어}

Wikimedia Commons 흰 바람 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또 이것은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

2021.11.16

왕유, {인정 人情}

Walking on Path in Spring by Ma Yuan (马远 c.1190 - 1279年)), a Chinese painter of the Song Dynasty. 인정(人情) - 왕유 酌酒與君君自寬 人情飜覆沙波瀾 白首相知儒按劍 朱門先達笑彈冠 草色全經細雨濕 花枝欲動春風寒 世事浮雲何足問 不如高臥且加餐 친구여, 술이나 들자꾸나. 사람의 정리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백발된 오랜 친구도 칼을 겨누고, 선배도 후배의 앞길을 막나니, 보라, 비에 젖어 잡풀은 우거져도, 봄바람 차가워 꽃은 못 핀다. 뜬구름 같은 세상일 말해 무엇하랴, 누워 배나 쓸며 지냄이 좋으리.

2021.11.16

기형도, {가수는 입을 다무네}

Wikimedia Commons 가수는 입을 다무네 - 기형도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흰 김이 피어오르는 골목에 떠밀려 그는 갑자기 가랑비와 인파 속에 뒤섞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세월이 떠돌이를 법으로 몰아냈으니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그는 천천히 얇고 검은 입술을 다문다 가랑비는 조금씩 그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도 아득했다 나를 괴롭힐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모퉁이에서 그는 외투 깃을 만지작거린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2021.11.16

원재훈,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Wikimedia Commons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 원재훈 한때 나는 편지에 모든 생을 담았다. 새가 날개를 가지듯 꽃이 향기를 품고 살아가듯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별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생의 비밀을 적었다. 아이의 미소를, 여인의 채취를, 여행에 깨우침을, 우체통은 간이역이였다. 삶의 열차가 열정으로 출발한다. 나의 편지를 싣고 가는 작은 역이였다. 그래 그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낙엽에 놀라 하늘을 본 어느 날이였다. 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 창문이 열리듯, 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 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 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2021.11.16

박인환, {세월이 가면}

Wikimedia Commons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 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2021.11.16

이바라키 노리코, {자신의 감수성 쯤은}

自分の感受性くらい 자신의 감수성 쯤은 - 茨木のり子 - 이바라키 노리코 詩 ぱさぱさに乾いてゆく心を 바싹바싹 말라가는 마음을 ひとのせいにはするな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みずから水やりを怠っておいて 스스로가 물주기를 게을리했으니 気難しくなってきたのを 드센 성정에 물들어가는 것을 友人のせいにするな 지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しなやかさを失ったのはどちらなのか 부드러움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苛立(いらだ)つのを 초조해지는 것을 近親のせいにするな 친척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なにもかも下手だったのはわたくし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것은 나 자신. 初心消えかかるのを 초심이 사라져 가는 것을 暮らしのせいにするな 생계 탓으로 돌리지 말아라 そもそもが ひよわな志にすぎなかった 원래부터 허약한 의지에 지나지 않았다. 駄目..

2021.11.14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소망}

Wikimedia Commons 소망/Wish - 페데리꼬 가르시아 로르까- Federico Garcia Lorca 너의 뜨거운 마음을, 오직 그것만을. 꾀꼬리도, 음악도 없지만, 은밀한 강과 작은 샘물이 있는 나의 낙원, 들녘. 잎새 위로 바람도 일지 않고, 꽃잎이고 싶은 별도 없는, 환한 빛, 가로막힌 시선 가운데 빛나는 또 다른 광채. 고요한 휴식,그곳 우리들의 입맞춤, 메아리로 되울리는 그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는. 너의 뜨거운 마음을, 오직 그것 만을. Just your hot heart, nothing more. My Paradise, a field, no nightingales, no strings, a river, discrete, and a little fountain. Without t..

2021.11.13

양전형,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 양전형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내 안에 있던 철없는 바람이 그만 너를 사랑한다고 나지막이 말해 버렸다 먹구름 가득하고 파도 드센 날이었다 너는 그냥 무심코 나를 보고만 있었으니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러나 혹시 너를 사랑한다는 그말이 너에게 당도하여 이미 가슴에 넣었거나 던져버리지 않았다면 그 말이 닿는 순간 곧바로 돌려다오 참으로 세상이 맑고 잔잔한 날 헛된 내 바람의 소리가 아닌 진심어린 눈으로 크게 말하리니 너를 사랑한다는 말 너를 사랑한다는 말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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