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5-05-2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
© 최광민, Kwangmin Choi, 2005-05-2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
https://archive.org/details/taleoftwocities00dickrich/page/n6/mode/1up
나는 혁명의 필요성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얼굴을 갖지 못한 혁명"에는 거의 아무런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수구적이어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유혈과 선동적 프로파겐다를 싫어하는, 게다가 양비론과 양시론에 온정적이기까지 한 내 개인적 취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좌파에 온정적인 합리적 중도-보수"로 내 정치적 입장을 정의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회색한 / 灰色漢"이다. 그리고 선/악 혹은 두개의 이미 정해진 "정답" 가운데 한 편만 선택해야 하는 혁명은 나 같은 회색분자들에게 때때로 몹시 가혹하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썼다면, 도버해협 건너 영국의 찰스 디킨즈는 {두 도시 이야기}를 썼다. 디킨즈의 소설은 혁명 전 귀족의 잔혹상을 고발하여 억울하게 투옥되었던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 (AlexandreManette)에 얽힌 사건을 배경으로, 그의 딸 루시를 사랑하는 프랑스 귀족 출신이자 앙시엥 레짐에 반대하는 망명객 샤를 다니와 변호사 시드니 칼톤의 우정과 애증,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시드니의 희생을 담는다.
위고와 디킨스의 이야기는 사실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 두 소설 모두 기득권자들에게 억압받던 평민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한다. 하지만 동시에 두 소설 모두 프랑스 혁명이 가지고 있던 가차없는 잔혹성 역시 함께 고발한다.
그래서 {두 도시 이야기}의 도입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은, 프랑스 대혁명을 (사실은 모든 형태의 유혈혁명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니체의 충고를 늘 잊지 마시길.
살벌한 혁명의 광기 속에서 소설은 독자들에게 계속 묻는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너를 대신 희생할 수 있는가?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썼다면, 도버해협 건너 영국의 찰스 디킨즈는 {두 도시 이야기}를 썼다. 디킨즈의 소설은 혁명 전 귀족의 잔혹상을 고발하여 억울하게 투옥되었던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 (AlexandreManette)에 얽힌 사건을 배경으로, 그의 딸 루시를 사랑하는 프랑스 귀족 출신이자 앙시엥 레짐에 반대하는 망명객 샤를 다니와 변호사 시드니 칼톤의 우정과 애증,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시드니의 희생을 담는다.
위고와 디킨스의 이야기는 사실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우선 두 소설 모두 기득권자들에게 억압받던 평민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한다. 하지만 동시에 두 소설 모두 프랑스 혁명이 가지고 있던 가차없는 잔혹성 역시 함께 고발한다.
그래서 {두 도시 이야기}의 도입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은, 프랑스 대혁명을 (사실은 모든 형태의 유혈혁명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epoch of belief, it was the epoch of incredulity,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we were all going direct to Heaven, we were all going direct the other way.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이자 불신의 시대였다. 계몽의 시대이자 암흑의 시대였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지만, 또 아무 것도 없기도 했다. 낙원을 향해 곧장 달려가는듯 싶었지만, 그 정반대의 길로 질주하고 있기도 했다... / 번역: 최광민
그러니 부디 혁명을 꿈꾸는 이들은 니체의 충고를 늘 잊지 마시길.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늘 주의하라. 네가 심연을 들여다 볼때는, 심연도 너를 응시하기 때문이다.
{선악을 넘어서 / Beyond Good and Evil}, 아포리즘 #146
살벌한 혁명의 광기 속에서 소설은 독자들에게 계속 묻는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너를 대신 희생할 수 있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할 수 있는 사람.
SO SAY WE ALL.
SO SAY WE ALL.
草人
반응형
'책|영화|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광민] 니코스 카잔차키스, {자유냐, 죽음이냐} (0) | 2022.03.21 |
---|---|
[© 최광민]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0) | 2022.03.15 |
[© 최광민] 비천무 단상 (0) | 2022.01.17 |
[© 최광민] 시민 vs. 영웅: {파운데이션}과 {은하영웅전설}과 또또 (0) | 2021.12.30 |
[© 최광민] 보 버넘, {Bo Burnham: Inside}: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무대에 서고 싶어 (0) | 2021.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