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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20-12-09
제목
[© 최광민] 공수처 단상
법의 여신, {위키미디아 커먼스}
# 삼사 (三司)
조선시대에 언론을 담당하던 상설기관인 사헌부 / 사간원 / 홍문관을 합해서 삼사 (三司)라 불렀다. 언론삼사(言論三司)라고도 한다.
이 가운데 사헌부는 문무백관에 대한 감찰 및 탄핵을 수행,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과 주요 시국사안에 대해 언론을 담당하는 언관(言官)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삼사 중에서도 사헌부와 사간원을 양사(兩司) 혹은 '언론양사'라고 한다. 중요한 시국사안에 대해, 양사는 독자적으로 혹은 합의를 통해 활동했다. 이 양사. 혹은 삼사의 언론기능이 목표한 것은 폭주하는 왕권이나 신권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듣기엔 매우 훌륭하지만, 꼭 그 원래 의도대로 삼사가 작동했던 것 만은 아니다.
이상적으로만 작용한다면 산 권력에 대해서도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하는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가 빛나기도 했지만, 삼사의 언론이 당쟁의 분파에 편향될 경우는 종종 유혈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 공수처
고등학생 시절 사헌부나 사간원에 대해 국사 수업에서 배운 사람이라면 공직자 전반에 대한 상설적인 감사/감찰기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이건 일종의 큰 원론일 뿐, 사는데 바쁜 일반인들이야 아주 최근까지도 그런 기관의 구조나 구성에 대한 그다지 구체화된 형식을 그리고 있진 않았다. 대체로 '포청천' 이나 1990년 초/중반 이탈리아 정/재/관계의 부패를 대규모로 단죄한 검사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같이 부패인사들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가차없이 처단하는 판관의 모습을 막연히 떠올리지 않았을까? 피에트로 경우는, 아예 당시 나름 상대적으로 덜 부패했다고 여겨지던 여당 기민단/사회당 정부를 붕괴시켜 버릴 정도였다.
현행 정부조직법에서 정부조직과 관리들에 대한 감찰/감사업무를 수행하는 감사원이 조선시대 사험부의 기능을 대체로 가지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찰/감사업무를 보다 상설화하고 필요하다면 감사원이 직접수사나 기소권을 갖는 보다 더 독립적인 기관이 되면 어떻까 하고 약 20년 동안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공수처"는 "감사/감찰권한과 독립성이 강화된 감사원"의 형태였다.
2019년 여당과 군수야당의 합의로 현재 형태의 공수처법이 가결될 때만 해도, (사실 이 군소야당들은 당시 함께 처리된 개정 선거법을 통해 이듬 해 선거에서 얻을 이익을 노린 정치공학으로 공수처법에 합의했다는 점이 못마땅했지만) 일단은 공직자 비리문제를 다룰 상설기구가 생긴다는 점 자체에 아주 큰 이의는 없었다. 다만, 이 형태의 공수처가 사실상 새로운 형식의 검찰이란 점, 그리고 당시 합의된 내용에 따르면 최종적으론 대통령이 임명할 공수처장이 결국 집권 측에 우호적인 인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맹점이 있음에도 법 조문 상으론 선출과정이 마치 그렇지 않은 듯 포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우려했다.
공수처법 6조에 따르면 공수처장후보추천위회가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주체고, 위원회 위원은 국회의장이 임명/위촉한다. 추천위원은 총 7인으로 각각 최대 5명씩 추천가능하며,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2명의 후보로 압축하여 추천하면, 대통령은 이 가운데 한명을 택일하게 된다. 대통령 소속기관이지만 직무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직접 임명하는 것에 비해 위원회가 주체가 된 꽤 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7인의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 중 당연직 위원 3인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이다. 변협회장은 (물론 대한변협의 의사를 참고하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위원직을 수행한다. 언뜻 보기엔 행정부에서 1인, 사법부에서 1인, 그리고 외부 법조계 인사 1인으로 균형잡혀 보인다. 나머지 4명의 추천위원은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되었던 정당의 교섭단체가 추천한 2인' (여당 몫), '그 밖의 교섭단체가 추천한 2인' (야당 몫) 을 국회의장이 임명하게 되어있다.
표면적으론 여야 위원이 각 2명씩 이라 여야가 동수로 정치적으로 안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당연직에 사실상 여당 측인 법무장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3:2에서 시작한다. 7명 가운데 6인 위원의 동의를 얻는 자 2인을 공수처장 최종후보로 압축하기 때문에, 이 경우 여당 측은 법원행정처장과 대한변협회장을 우군으로 삼으면 된다. 만약 1당의 거야가 아니라 야권이 비슷한 두개 세력 이상으로 분열되면 야당 표 하나를 더 가져올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년 말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을 묶은 한 수도 그걸 노려 디자인 된 것이기도 하고.
감사원장의 경우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라면, 공수처장의 임명의 경우 중립적이란 생색은 내지만 호쾌한 합의가 없는 경우 저울은 여당 측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장치를 심어놓았다. 가령, 여당 측 후보는 법무부장관 추천인사를 포함해 3명이고 야당 측은 4명이 추천되었다. 이 둘이 극한 대립을 벌일 것, 그리고 서로 쌍방 간 후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되었던 바이고, 그럼 대체로 공은 (마치 여야 대치 상황에서 양측 후보자가 모두 사표가 된 후 특검 추천 때 종종 그러하듯) 이도저도 아닌 대한변협 측 인사를 "중립"적인 인사로 고려하게끔 무언의 압박이 주어지게 된다.
작년 말 합의된 공수처 법안에 따르면 3명의 당연직 위원과 여당 측 2인 야당 측 2인으로 구성된 7인 위원회에서 추천된 후보중 2인을 고른 후 6표를 얻어야 후보추천이 완료되어 대통령의 낙점 순서로 넘거갈 수 있다. 이것만 보면 야당에게 "비토권"을 "보장"한 듯 생색낼 수는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당연직 위원중 법무부 장관과 여당 측 2인은 당연히 친여인사를 지지할 것이고, 야당은 만약 두개 이상의 대등한 세력으로 갈리면 (가령, 기본 보수 계열 정당(들)과 진보주의 (가령, 정의당)) 야당 몫 2표는 갈라지게 된다. 법체처장이야 법률적 하자가 없다면 사실은 누가 되든 상관없을 것이고, 변협회장이야 자기가 추천한 후보를 자신이 비토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일단 야권만 분열되면 가결정족수인 6표를 얻는건 어렵지 않다. 앞서 말한대로 사실 작년 말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을 하나로 묶어 표결한 것도 바로 그런 의도로 군소야당들에게 떡밥을 던진 것이기도 하고. 하나의 거야가 등장한 상황을 당시엔 아마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또한 변협회장이 추천한 3명의 인사 가운데 "1인"의 후보가 아닌 "2인"을 골라 최종적으로 대통령에게 추천한다고 해도 한 명을 낙점하는 것은 결국 대통령이다. 변협회장이야 정치적 고려로 친여와 친야/중도를 섞어서 추천할 것이니 사실은 2인 중 1인만 여당 측 인사면 충분한 것이다. . 둘 다이면 더 좋고. 어짜피 공은 대통령이 받는 것이니 변협회장에게 부담없이 도망갈 뒷문도 열어준 셈. 상당히 공들여 숨겨놓은 교묘한 장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경우는
- 위원장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1명,
- 당연직 위원인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명,
-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3명
- 더불어민주당이 2명,
- 국민의힘이 4명
이 공수처장 후보를 총 11인 추천했다. 사실 극한대결이 예상된 상황에서 더불어 민주당 2명, 국민의 힘 4명은 애당초 처음부터 사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계수할 필요도 없다.
현재 야당 측이 공수처창 후보합의에 사보타지 하는건 사실 작년 합의된 공수처법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사실 비토할 권한도 있고. 현 제1야당인 '국민의 힘'의 주축이랄 수 있는 '자유한국당' 계열 의원들은 작년 말 공수처법 표결을 거부했으니 그런 태도는 나름 일관성은 있다), 작년 말 공수처법 통과되고 세부내용을 올해 초에 자세히 읽어보면서 이런 숨겨진 장치가 내내 찜찜하긴 했다.
나는 공수처가 우선적으로 "산 권력"을 주요 타겟으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라 분주한 것보다, 미리 미리 외양간을 손보는 것이 낫다. 다시 말하자면 정권교체된 후 옷 벗고 나간 권력자를 추후에 조사해 잡아들이는 것보다,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 '산 권력'의 비위를 미리 처단하는게 큰일 다 벌어지고 나서 '죽은 권력'을 추후에 처단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게 바로 '사정기관'의 존재이유이기도 하고.
한국정치에선 이제 일상화 되었지만, "죽은" 권력 처단이야 공수처가 아니라도 사실 차기정권이 결심만 하면 언제나 할 수 있다. 게다가 (1) 현 정권 말년에 친여 인사가 임기 3년 (정년 65세)의 공수처장으로 취임한 후 이후 1-2년 후의 대선에서 정권이 바꿔 "공수"가 전환될 경우 새 정권 초반기에 구정권 인사인 공수처장이 주도하는 소위 "죽은 권력"수사에 모종의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고, (2) 만약 정권이 유지되는 경우라면 이 경우엔 "죽은 권력"조차 없으니 그냥 묻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나는 상설 감사/감찰기구는 해당 정권 하의 '야당' 몫으로 해주는게 '산 권력'의 비위가 더 곪기 전에 잡아들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구조라고 그동안 생각해 왔다. 정권이 유지되면 유지되는 대로, 갈리면 갈리는 대로 야당 2기로 들어선 기존의 야당이나 혹은 바뀐 정권 하에서의 새 야당 측 (전 정부여당)이 구 야당인 현 정권의 감시역할을 할 것이니 얼마나 쌍심지를 켜고 비리를 찾아내려 사력을 다하겠는가! 권력에 대한 견제가 늘 상설화 될테니 '산 권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하기엔 이 방식이 제일 낫지 않을까?
놀라운 해법이 아닌가 하며 스스로에게 감탄하려다가 그만두고 만다. 현실적으로 가능성 0.
뭐, 어떤 정부여당이 스스로 제 목에 칼을 겨누고 바늘방석에 앉으려 할까. 특히 압승을 거둔 정부여당이라면 더욱 싫겠지. 그거야 인지상정이다.
...
조금 전, 임시국회 본희외에서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의결 정족수를 7명 중 6명에서 3/5인 5명으로 완화하는 내용인데, 결과적으로 야당이 아무리 반대해도 (여당이 선호하는) 공수처장 추천이 가결되는 것. 작년 말의 법조문이 다소 위선적인 레토릭이었다면, 오늘의 이 개정안은 의도가 차라리 솔직해서 좋다고 인정해야 하려나.
"공수처 출범"을 정점으로 하는 이번 정부의 "적폐청산"이나 "검찰개혁"이란 얼굴엔 두가지 층위가 있는 듯 하다. 권력을 정의롭게 통제하자는 외피에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그 진피에는 교조의 한을 신원해 달라는 "교조신원운동 敎祖伸寃運動"이란 여섯글자가 진하게 새겨져 있지 않을까?
헌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하나.
"공수"래, 공수거 하니
아니나 노지를 못하리라.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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