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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12-06-25
제목
[© 최광민] 월칭 마틸다 Waltzing Matilda
© 최광민 20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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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월칭 마틸다 Waltzing Matilda
{Waltzing Madtlda}, Wikimedia Commons
#1
2001년 8월 차를 몰고 텍사스에서 인디애나로 이사하던 중, 오스틴에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텍사스/아칸소 접경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생각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모르겠구나
정말 모르겠구나.
#1
2001년 8월 차를 몰고 텍사스에서 인디애나로 이사하던 중, 오스틴에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텍사스/아칸소 접경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생각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한산한 식당에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한 5분 동안 주문받을 생각을 안하는 웨이트리스는 그렇다치고, 구석에 영감님 너댓 분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뭔가 수근거렸다.
아, 이거 KKK 마을에 들어온건가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토스트에 커피를 마시면서 아칸소 주도 리틀락으로 가는 길의 지도를 보고 있으려니, 영감님 한 분이 나가다가 한마디 툭 (물론 영어로) 물어본다.
"중국에서 왔나?"
"한국에서 왔는데요".
"남한? 북한?"
"남한인데요"
그랬더니 나가다 말고 자리에 앉더니 이렇게 묻는다.
"강원도 홍천이라고 하냐? 나 한국전쟁 때 거기서 싸웠다."
이윽고 동네 친구들인데 홍천에 같이 파병되었다는 구석의 친구 분들이 합석하셨다.
"그때 한국 정말 죽도록 추웠어"
"쌤쑹이 한국회사라던데?"
"내가 가본 외국은 한국 밖에 없어"
"아리랑~ 아리랑~"
등등.
오스틴에서는 한 유학생이 집에서 오징어를 구워먹고 있었는데, 이웃의 한 영감님이 찾아와서 제발 오징어를 구워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토스트에 커피를 마시면서 아칸소 주도 리틀락으로 가는 길의 지도를 보고 있으려니, 영감님 한 분이 나가다가 한마디 툭 (물론 영어로) 물어본다.
"중국에서 왔나?"
"한국에서 왔는데요".
"남한? 북한?"
"남한인데요"
그랬더니 나가다 말고 자리에 앉더니 이렇게 묻는다.
"강원도 홍천이라고 하냐? 나 한국전쟁 때 거기서 싸웠다."
이윽고 동네 친구들인데 홍천에 같이 파병되었다는 구석의 친구 분들이 합석하셨다.
"그때 한국 정말 죽도록 추웠어"
"쌤쑹이 한국회사라던데?"
"내가 가본 외국은 한국 밖에 없어"
"아리랑~ 아리랑~"
등등.
오스틴에서는 한 유학생이 집에서 오징어를 구워먹고 있었는데, 이웃의 한 영감님이 찾아와서 제발 오징어를 구워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전 포화 속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타고 있던 냄새가 떠오른다면서.
#2
처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조교수 인터뷰 차 온 가족이 지금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처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학교 근처의 펜션에 숙소를 잡아주었다. 호텔과는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주인 노부부는 자식들이 출가한 후 100년 정도된 그 집을 사서 호텔로 개조한 것이었다.
주인 영감님과 로비에서 잠깐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이 불쑥 자신이 18살 때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주로 영등포 일대에서 주둔하면서 보급병(?)을 했던 듯 한데, 4살 짜리 우리 애에게 "산토끼, 토끼야~" 노래를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 노래를 배웠냐고 물었더니, 영등포 일대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짬짬이 했다고 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말씀하신다. "내가 한국에서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늘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2
처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조교수 인터뷰 차 온 가족이 지금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처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학교 근처의 펜션에 숙소를 잡아주었다. 호텔과는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주인 노부부는 자식들이 출가한 후 100년 정도된 그 집을 사서 호텔로 개조한 것이었다.
주인 영감님과 로비에서 잠깐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이 불쑥 자신이 18살 때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다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주로 영등포 일대에서 주둔하면서 보급병(?)을 했던 듯 한데, 4살 짜리 우리 애에게 "산토끼, 토끼야~" 노래를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 노래를 배웠냐고 물었더니, 영등포 일대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짬짬이 했다고 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말씀하신다. "내가 한국에서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늘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영감님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전쟁터에서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 역시 그 분이 어떤 일을 전쟁터에서 하셨는지 묻진 않았다.
다만 당신들의 희생에 감사드린다고 답해주었다.
#3
미국에 살다보면 나이 지긋한 영감님들 가운데 한국전 참전자들을 시골에서도 꽤 보게된다. 1950년 초반에 총 48만 명의 미국인이 파병되었고, 이 가운데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총 137,250명이 미국 측 피해규모로 집계되니 작은 전쟁은 아니었다.
미국 현충일이 오면, 이 동네 도서관 앞 쪽에 있는 전쟁기념공원에서 노병들이 행진도 하고, 기념식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호주 가수 Eric Bogle이 1971년에 발표했던 {And the Band Played Walzing Matilda}를 떠올리게 된다.
{Walzing Matila}는 19/20세기 호주에서 양털을 깍으면서 여기저기 다니던 떠돌이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유행가로 호주의 비공식 국가로 불리며, 1-2차세계대전에 호주군이 파병될 때도 반드시 연주되거나 군가로 불렸던 곡이기도 하다.
"마틸다"란 여자와 "춤"을 춘다는 뜻이 아니며, "마틸다"는 품팔이 노동자가 짐을 싸거 지고 다니던 봇짐을 말하며 "왈칭"이란 (일감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다. 노래 자체도 그렇게 떠돌아 다니던 노동자가 도망친 염소를 한마리 잡아먹고 절도죄로 몰리자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전쟁의 맥락에서 불려진 {왈칭 마틸다}에 담긴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를 뒤틀어, 70년대 포크가수인 에릭 보글은 1915/16년 영/불/호주/뉴질랜드과 터키군이 싸우다 연합군 측이 대패한 갈리폴리 전투의 상이군인을 화자로 하여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And the Band Played Walching Matilda 그리고 악대는 왈칭 마틸다를 연주했다}를 쓰고 불렀다.
많은 가수들이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이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John McDermott의 노래가 이 곡을 가장 잘 해석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들어보자.
#4
다만 당신들의 희생에 감사드린다고 답해주었다.
#3
미국에 살다보면 나이 지긋한 영감님들 가운데 한국전 참전자들을 시골에서도 꽤 보게된다. 1950년 초반에 총 48만 명의 미국인이 파병되었고, 이 가운데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총 137,250명이 미국 측 피해규모로 집계되니 작은 전쟁은 아니었다.
미국 현충일이 오면, 이 동네 도서관 앞 쪽에 있는 전쟁기념공원에서 노병들이 행진도 하고, 기념식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호주 가수 Eric Bogle이 1971년에 발표했던 {And the Band Played Walzing Matilda}를 떠올리게 된다.
{Walzing Matila}는 19/20세기 호주에서 양털을 깍으면서 여기저기 다니던 떠돌이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유행가로 호주의 비공식 국가로 불리며, 1-2차세계대전에 호주군이 파병될 때도 반드시 연주되거나 군가로 불렸던 곡이기도 하다.
"마틸다"란 여자와 "춤"을 춘다는 뜻이 아니며, "마틸다"는 품팔이 노동자가 짐을 싸거 지고 다니던 봇짐을 말하며 "왈칭"이란 (일감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는 뜻이다. 노래 자체도 그렇게 떠돌아 다니던 노동자가 도망친 염소를 한마리 잡아먹고 절도죄로 몰리자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Once a jolly swagman camped by a billabong
Under the shade of a coolibah tree,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 his "Billy" boiled,[21]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l his "Billy" boiled,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Down came a jumbuck to drink at that billabong,
Up jumped the swagman and grabbed him with glee,
And he sang as he shoved[N 1] that jumbuck in his tucker 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Up rode the squatter, mounted on his thoroughbred.
Down came the troopers, one, two, and three.
"Whose is that jumbuck[N 2] you've got in your tucker 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Up jumped the swagman and sprang into the billabong.
"You'll never catch me alive!" said he
And his ghost may be heard as you pass by that billabon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전쟁의 맥락에서 불려진 {왈칭 마틸다}에 담긴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를 뒤틀어, 70년대 포크가수인 에릭 보글은 1915/16년 영/불/호주/뉴질랜드과 터키군이 싸우다 연합군 측이 대패한 갈리폴리 전투의 상이군인을 화자로 하여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And the Band Played Walching Matilda 그리고 악대는 왈칭 마틸다를 연주했다}를 쓰고 불렀다.
많은 가수들이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이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John McDermott의 노래가 이 곡을 가장 잘 해석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들어보자.
"And the Band Played Walzing Matilda}
-- Eric Bogle | John McDermott
-- 번역: 최광민
Now when I was a young man I carried me pack
And I lived the free life of the rover.
From the Murray's green basin to the dusty outback,
Well, I waltzed my Matilda all over.
젋은 시절 난 봇짐 지고
일거리 찾아 맘껏 떠돌며 살았어
머레이 녹지에서 황야까지 누비며
그래, 온 사방을 떠돌았지
Then in 1915, my country said, "Son,
It's time you stop ramblin', there's work to be done."
So they gave me a tin hat, and they gave me a gun,
And they sent me away to the war.
1915년 조국은, 빈둥대지 말고
이제 할 일을 하라고 명했지.
철모와 총을 쥐어주곤
전쟁터로 날 보내 버렸어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As the ship pulled away from the quay,
And amidst all the cheers, the flag waving, and tears,
We sailed off for Gallipoli.
우릴 실은 배가 선창을 떠나갈 때
악대는 {월칭 마틸다}를 연주했지.
환호소리, 펄럭이는 깃발, 흐르는 눈물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갈리폴리로 향했어.
And how well I remember that terrible day,
How our blood stained the sand and the water;
And of how in that hell that they call Suvla Bay
We were butchered like lambs at the slaughter.
훤히 기억한다. 그 끔찍했던 날,
모래밭과 바닷물이 어떻게 우리 피로 물들었는지.
술바 만이라 불리는 그 생지옥에서
어떻게 도살장의 새끼양처럼 죽어 나갔던지.
Johnny Turk, he was waitin', he primed himself well;
He showered us with bullets, and he rained us with shell --
And in five minutes flat, he'd blown us all to hell,
Nearly blew us right back to Australia.
만반의 태세로 매복한 터키놈들은.
총알을 퍼붓고 포탄을 비처럼 떨구었지
떡 5분 만에 우릴 전부 지옥으로 날려버렸어.
막바로 호주까지 날아갈 판이었어.
But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When we stopped to bury our slain,
Well, we buried ours, and the Turks buried theirs,
Then we started all over again.
전사자를 묻으러 전투를 멈췄을 때
악대는 {왈칭 마틸다}를 연주했지.
양 측이 전사자를 묻고 나서
우린 다시 전투를 시작했어.
And those that were left, well, we tried to survive
In that mad world of blood, death and fire.
And for ten weary weeks I kept myself alive
Though around me the corpses piled higher.
피와 죽음과 불바다의 미친 세상에서
산 병사들은 그저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주위로 시체가 켭켭이 쌓였지만
난 용케 10주를 버텨냈어.
Then a big Turkish shell knocked me arse over head,
And when I woke up in me hospital bed
And saw what it had done, well, I wished I was dead --
Never knew there was worse things than dying.
머리 위로 터키놈 포탄이 터져 쓰러진 후
병상에서 깨어났을 때,
내게 일어난 일을 보고 그때 현장에서 죽었기를 바랬어
죽음보다 더 나쁜게 있단 걸 그때까진 몰랐지
For I'll go no more "Waltzing Matilda,"
All around the green bush far and free --
To hump tents and pegs, a man needs both legs,
No more "Waltzing Matilda" for me.
푸른 들판를 맘대로 다니며
더는 "왈칭 마틸다" (유랑생활) 못하게 된거야.
텐트와 봉을 지려면 두 다리가 필요하니까
더이상 떠돌진 못하게 된거지.
So they gathered the crippled, the wounded, the maimed,
And they shipped us back home to Australia.
The armless, the legless, the blind, the insane,
Those proud wounded heroes of Suvla.
부러지고, 찢기고, 사지가 잘린 병사들을 수습해
그들은 우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냈어.
팔 잃은자, 다리 잃은 자, 눈 잃은 자, 그리고 미쳐버린 자들
이들이 소위 '자랑스런 술바전투의 상이용사'들이야.
And as our ship sailed into Circular Quay,
I looked at the place where me legs used to be,
And thanked Christ there was nobody waiting for me,
To grieve, to mourn and to pity.
배가 서큘러 부두로 들어설 때
예전 내 두 다리로 서있던 거길 바라보았어.
그리고 나를 위해 슬퍼하고 곡하고 불쌍히 여길
어느 누구도 부두에 없다는 걸 주님께 감사했지
But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
As they carried us down the gangway,
But nobody cheered, they just stood and stared,
Then they turned all their faces away.
계단으로 배에서 내리는 와중에도
악대는 "왈칭 마틸다"를 연주하고 있었어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고,
그저 서서 우릴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지
And so now every April, I sit on my porch
And I watch the parade pass before me.
And I see my old comrades, how proudly they march,
Reviving old dreams of past glory,
매년 4월이면 나는 현관 문 앞에 앉아
집 앞을 지나가는 행진을 보지.
늙은 전우들이 옛 영광을 되살리며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걸 보곤 해
And the old men march slowly, all bones stiff and sore,
They're tired old heroes from a forgotten war
And the young people ask "What are they marching for?"
And I ask meself the same question.
뼈 골은 노병들이 고통스럽고 힘겹게 행진해.
잊혀진 전쟁에서 살아남은 지친 늙은 영웅들이지.
젊은이들이 "영감님들은 왜 행진하는 거에요?라 묻곤 하는데,
사실은 나 자신에게 똑같이 묻곤해.
But the band plays "Waltzing Matilda,"
And the old men still answer the call,
But as year follows year, more old men disappear
Someday, no one will march there at all.
여전히 악대는 "월칭 마틸다"를 연주하고
여전히 노병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하고 있어.
세월이 흐로고 노병들은 점점 죽어가면,
언젠간 행진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겠지.
"Waltzing Matilda, waltzing Matilda.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And their ghosts may be heard as they march by that billabo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
누가 나와 떠돌아 다니련가.
그 연못을 지나칠 때, 누가 나와 떠돌아 다니련가?"란
유령의 소릴 들을 지도 모르지."
#4
일전에 아들이 물었다.
"아빠, 미국이랑 독일이 지금도 싸워요."
"아니, 지금은 아주 맹방이지".
"아빠, 미국이랑 일본이 지금도 싸워요."
"아니, 지금은 아주 맹방이지".
"Ok...then What's the POINT of war?"
"어, 그럼 전쟁은 도대체 왜 하는거에요?"
모르겠구나
정말 모르겠구나.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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