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media Commons 십일월 - 양전형 행인들이 이따금 어깨를 움츠린다 언뜻, 가야 할 때임을 알아챈 은행잎들 말없이 욕망의 손 내리더니 무리 지어 허정허정 먼 길 나섰다 아아 해마다 이맘때 도지는 지병 내 안에서 세상을 앓던 수많은 단풍잎들 줄줄이 떨어지는 병 뼈끝까지 시려 온다 또다시 가야겠다 그렁그렁한 눈물 탈탈 털어내며 사람아 사람아 가슴이 벌겋게 아린 사람아 내 안에 들어와 함께 별을 헤아리던 사람아 어차피 세상살이는 눈물로 시작되는 것 들찬 어깨에 동동 매달리며 한사코 가지 않겠다던 가랑잎의 허튼 맹세는 들먹이지 말자 꽃잎이 늘 바람을 용서하여 왔듯 우리도 한때는 향기 그윽한 어느 꽃들이었듯 쓸쓸한 세상 마냥 품고 뒹굴며 뒹굴며 먼 길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