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草人 최광민 2020-11-06
저작권(© 최광민)이 명시된 글들에 대해 저자의 동의없는 전문복제/배포 - 임의수정 및 자의적 발췌를 금하며, 인용 시 글의 URL 링크 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최광민] 아들, 틴에이저가 되다.
© 草人 최광민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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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아들, 틴에이저가 되다.
지난 10월에 아들이 만 13살이 되어 공식 틴에이저가 되었다.
몇해 전 한자리 수에서 두자리수 나이로 승진할 때 아들에게 "틴에이저 된거 축하해"라고 했더니, 10살부터 만 12살까지는 틴에이저가 아니라 '프리-틴 (pre-teen)'이라고 정정해주던 녀석이 드디어 명실상부한 '틴에이저'의 자리에 올랐다.
내겐 매우 특이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는데, 내가 아들의 나이 때 쓴 일기를 읽고 함께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들과 함께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국민학교 일기장에 씌여진 내용이야 매우 짦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세부적인 내용을 종종 물어왔는데, 그럴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의 토막들이 영화 {빅 피쉬}에서 처럼 일부 과장되고 서로 짜깁기도 되면서 '리얼 스토리'가 아닌 '판타지'로 발전하기도 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나와 아들은 36살 돼지띠 띠동갑인데, 아들의 만 4살 생일에 내가 자기보다 10배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녀석이 엄청 놀라워하던 때가 생생하다. 난 그 나이에 "10배"란 개념은 몰랐던 것 같은데.
아들은 올해 폭풍성장해서 이미 나보다 10cm 이상이 커졌다. 대학 1학년때 아버지 양복 빌려 입고 친구 누나 결혼식장에 갔던 기억이 나는데, 난 아들에게 양복을 빌려주긴 커녕 이제 아들 옷 물려입게 생겼다. 왠지 분하지만, 또한 즐겁기도. (잇히!)
내가 삼형제 중 둘째이고 동생과는 8살 터울인데, 동생이 태어난 국민학교 2학년 때 부터 동생 (천)기저귀 갈고 젓병 소독하고 분유 타서 먹이던 일에 익숙했던 터라, 아들 키우는데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동생 키울 땐 왠지 '아들 같다'는 생각을 했고, 반대로 아들 키울 때는 왠지 '동생 같다'는 미묘한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들 두 살 때는 처가 먼저 박사수료하고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바람에, 박사과정 말년 차이던 내가 한 학기 동안 이유식 만들어 먹이며 돌보느라 아들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보니 태어나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목욕시키고 유모차 태워 산책하고 침대에 같이 누워 재우는 일은 내가 주로 도맡아 했다. 그래선지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날 가끔 '엄마'라고 혼동해서 부르곤 했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이 보통 동화책 읽어달라고 한다던데, 우리 애는 특이하게도 동화책 대신 "진짜 이야기 real story"를 해달라고 늘 고집했다.
마침 내가 국민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쓰던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유학 나왔던 터라, 그래서 생각해 본게 내가 아들 나이와 같은 나이이던 36년 전 해당일에 쓴 일기를 그날 밤 아들에게 같이 보면서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한국말을 거의 못해서 일일히 영어로 번역해서 말해줘야 했지만).
아래가 국민학교 1-2학년 때 내가 쓴 그림일기장들. 노란 일기장이 1978년 1학년때 쓴 첫 나의 일기장이다.
내가 삼형제 중 둘째이고 동생과는 8살 터울인데, 동생이 태어난 국민학교 2학년 때 부터 동생 (천)기저귀 갈고 젓병 소독하고 분유 타서 먹이던 일에 익숙했던 터라, 아들 키우는데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동생 키울 땐 왠지 '아들 같다'는 생각을 했고, 반대로 아들 키울 때는 왠지 '동생 같다'는 미묘한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들 두 살 때는 처가 먼저 박사수료하고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바람에, 박사과정 말년 차이던 내가 한 학기 동안 이유식 만들어 먹이며 돌보느라 아들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보니 태어나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목욕시키고 유모차 태워 산책하고 침대에 같이 누워 재우는 일은 내가 주로 도맡아 했다. 그래선지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날 가끔 '엄마'라고 혼동해서 부르곤 했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이 보통 동화책 읽어달라고 한다던데, 우리 애는 특이하게도 동화책 대신 "진짜 이야기 real story"를 해달라고 늘 고집했다.
마침 내가 국민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쓰던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유학 나왔던 터라, 그래서 생각해 본게 내가 아들 나이와 같은 나이이던 36년 전 해당일에 쓴 일기를 그날 밤 아들에게 같이 보면서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한국말을 거의 못해서 일일히 영어로 번역해서 말해줘야 했지만).
아래가 국민학교 1-2학년 때 내가 쓴 그림일기장들. 노란 일기장이 1978년 1학년때 쓴 첫 나의 일기장이다.
내겐 매우 특이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는데, 내가 아들의 나이 때 쓴 일기를 읽고 함께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들과 함께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국민학교 일기장에 씌여진 내용이야 매우 짦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세부적인 내용을 종종 물어왔는데, 그럴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의 토막들이 영화 {빅 피쉬}에서 처럼 일부 과장되고 서로 짜깁기도 되면서 '리얼 스토리'가 아닌 '판타지'로 발전하기도 했다.
우리 애가 제일 좋아했던 이야기는 내가 어릴 적부터 키워온 개들에 대한 것이다. 아들은 (내가 키우던 순서대로) 토니, 루루, 미키, 똘이, 방실이, 나비(고양이), 또또, 그리고 그리고 수많던 새끼 강아지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냐고 6살 무렵부터 자주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토니와 루루는 내가 키우던 개들과 그 가족들을 거느리는 왕과 여왕으로서 식솔들을 거느리고 내가 살던 동네 뒷산 (개봉산/개웅산)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둘러댔고, 그 이후 거의 2년 간 이 이야기에 바탕한 다양한 버전의 이야기로 변형하가며 애를 재우는데 활용했다.
내가 키웠던 마지막 개인 또또를 1999년 1월 1일 새벽 그 산에 묻고 유학을 나왔으니 내가 아들에게 꼭 거짓말을 한건 아니다. 우리 애는 초등학교 4학년 쯤부터는 그 개들의 현재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아마도 개의 수명이 그렇게 길 수 없다는 걸 어느새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자신의 생일에 내게 보낸 카드를 읽으면서, 나와 나의 아버지는 왜 이런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안타까와한다.
아들! 공식적 틴에이저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아래 노래는 아들을 재우면서 기도처럼 종종 불러주던 노래인데 우쿨렐레로 채보 해보았다.
아래 노래는 아들을 재우면서 기도처럼 종종 불러주던 노래인데 우쿨렐레로 채보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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