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과 불로장생의 꿈




일상

[© 최광민]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과 불로장생의 꿈

草人! 2022. 3. 6. 05:48
작성

© 草人 최광민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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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과 불로장생의 꿈

목차
  •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
  • 1986년 3월 3일 3학년 3반 33번
  • 1999년 9월 9일 0시 (+9시) 9분 9초
  • 2011년 10월
  •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 22초


초신성 (ASASSN-15lh) 폭발


#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



고대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 종류의 단어가 있다. 하나는 "카이로스 καιρός" 이고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 χρόνος"다. 전자는 '시각' 혹은 '어떤 순간'을 뜻하고, 후자는 '지속되는 시간의 연장'을 뜻한다.  '카이로스'를 일종의 '질적'개념으로 본다면, '크로노스'는 '양적'개념에 대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흥미롭게 '카이로스'는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날씨'도 뜻하는데, 언어학자들 사이에선 어떻게 '카이로스'가 '시간'과 '날씨'를 동시에 의미하게 되었는지 여전히 미궁 속.

'카이로스'를 일종의 '변화의 결정적 찰나'로 해석하여 고대 피타고라스 철학에서는 이 '카이로스'는 상반되는 두 원리를 연결하는 우주의 기본적 원리로 간주되었고, 엠페도클레스 역시 이를 통해 우주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개념에서 출발해 그리스 철학에서는 '카이로스'를 '수사학'과 '변증'의 기본원리로 여기기 시작하는데, 소크라테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이 그런 의미에서 논증과 변론에서의 '카이로스'를 중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수사학}에서 논증과 증명이 청중에게 납득되어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설명하는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직선적 시간관을 가진 유대-기독교적 전통에서 '카이로스'는 물리적인 시간이라기 보다는 '신의 의지 가운데 예지/예정된 시각'을 뜻한다. 가령, '신의 나라', '신의 날', '구원', '추수', '때' 등을 말할 때 '카이로스'가 사용되었다.  즉, "그 때"에 해당한다. 

어찌보면, 좌/우 진영을 오가며 "경제민주화"란 자신의 '뜻'을 펼치게 해 줄 '주군'을 찾아 '춘추전국'을 방랑한 가히 '현대판 제자백가' 노정객 김종인이, 2021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검찰총직 사임과 동시에 야당 후보로 급부상 되던 전 검찰총장 윤석열에게 "별의 순간을 잡아야 한다"라는 충고를 하면서 유명해진 단어 "별의 순간"도 '카이로스'와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겠다.

'별의 순간'의 원어인 독일어 'Sternstunde 슈테른슈툰데'는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줄 운명적인 행위, 결정, 사건을 뜻한다. '점술/무속 시비'로 궁지에 몰렸던 국민의 힘 후보 윤석열에게는 또 공교롭게도 원래 이 단어는 인간의 운명이 출생 시 별자리 위치로 결정된다는 중세 점성술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20세기 오스트리아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광기와 우연의 역사} (원제: 인류의 별의 순간 Sternstunden der Menschheit)에서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12개 역사의 편린과 중심인물을 기술하면서 사용했다.

Solche dramatisch geballten, solche schicksalsträchtigen Stunden, in denen eine zeitüberdauernde Entscheidung auf ein einziges Datum, eine einzige Stunde und oft nur eine Minute zusammengedrängt ist, sind selten im Leben eines Einzelnen und selten im Laufe der Geschichte. Einige solcher Sternstunden -Ich habe sie so genannt, weil sie leuchtend und unwandelbar wie Sterne die Nacht der Vergänglichkeit überglänzen, veersuche ich hier aus den verschiedensten Zeiten und Zonen erinnern. -- Stefan Zweig. {Sternstunden der Menschheit}

이처럼 극적인 긴장으로 가득한 운명적 순간이 닥치면, 하루 혹은 한 시간, 심지어는 고작 일분 만에 미래를 결정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런 순간은 개인의 삶에서 드믈지만, 역사에서도 드물다. 여기서 나는 여러 시대와 영역에서 별의 순간들을 추려내 기억하려 한다. 이렇게 이름 붙인 이유는, 이런 순간들이 부질없이 지나간 세월 속에 밤하늘 별처럼 영원히 빛나기 때문이다. -- 영문판, {Decisive Moments in History}에서 중역 / 최광민


하지만 막상 "별의 순간"을 말한 김종인 본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운명이 "별"에 좌지우지 된 것인지 확신이 안섰던지, 2021년 8월 17일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주선으로 윤석열과 오찬회동을 가질 때 주역/사주/명리/관상/풍수 해설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관료계에 "명망이 있는" 역술인이자 칼럼니스트인 "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 노병한 소장을 동석시켜 관상을 보게 했다. (노병한은 1991년 단국대에서 "한국의 지역불균형에 관한 연구"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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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정해진 서양 점성술의 "별의 순간"이 정확한지, 살면서 종종 바뀌기도 한다는 사주/관상이 정확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점성술이든 사주/관상이든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 천기누설이 또 달라진다는 것 뿐. 이유는 모르겠다.

ㄹㅇㅋㅋ

그다지 찬란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는 내게도, 생각해 보면 나름의 카이로스와 별의 순간들은 있었다.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



# 1986년 3월 3일 3시 33분 33초

이 해의 "3월 3일"은 월요일로 내 중학교 3년 개학일이었는데, 이 시각부터 5시간 후 등교해 "3학년 3반 33번"으로 배정받았다. (당시 서울의 중학교 한 반 정원은 62명) 

한반 인원이 33명 이상인 전 세계의 학교마다 단 한명 씩 기인이 출현한 셈인데, "전 세계에서 바로 이날 3월 3일 3학년 3반 33번이 된 청소년들 xxxxxxx명이 지구를 구한다" 일종의 SF/판타지 소설 같은 설정으로 써먹을 수 있을 듯 하다.

학교이름이 "오류"중이 아니라 "3류"중이었으면 하나를 더 추가했을 듯.

1+9+8+6 = 24 = 3 x 8 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억지스러워 고려치 않으련다.

참고로 난 해주 최씨 좌량공파 33세 손.



#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

1980년대 초, {은하철도 999}에 이어 MBC 문화방송에서 일요일 아침 방영했던, 마츠모토 레이지의 TV 애니메이션 {천년여왕, 新竹取物語1000年女王}의 설정에 따르면, 1000년 주기로 타원궤도로 태양계를 도는 행성 라메탈은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에 지구에 최근접 지구는 큰 재앙 앞에 놓이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라메탈 행성은 이번을 끝으로 태양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라메탈인들은 이번 근접일에 아예 지구를 탈취하려고 한다. 오랜 인류의 역사 동안 '천년여왕'이란 인류형 클론을 지구에 투입해 인류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해 온 라메탈 행성인들이 결국 지구를 통째로 접수하기로 예정된 시점이 바로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 . 은하철도 "999"에 이어 마츠모토 레이지의 "9"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기왕 설정할 거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로 했으면 좋았을 듯 싶은데, 아마 그건 본인 생각에도 너무 작위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시각을 "9시 9분 9초"로 기억하는 내 또래들이 꽤 있는데, 사실 아예 1화의 제목이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였다.


1999年9月9日零時9分9秒

당시는 여전히 왜색배격 문화가 강고하던 때라, 주인공인 천년여왕 "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의 일본 이름인 "야요이"는 " 한나"로, 남주인공 "하지메"는 '철이'로 불렸다. 미모로 본다면 가는 눈의 메텔보다는 큰 눈의 한나가 나았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메텔의 인기는 한나에 비할 바 아니었다. 주제가는 당시 늘 그랬듯 김국환.

18방 시절 나는 이 노래를 개사해 서울에서 멀리 안양까지 출퇴근하는 "수도방위사령부" 방위의 애환을 노래했다.



곡조: 천년여왕
가사: 최광민

[1]

짧은 머리 휘날리고

눈동자를 크게 뜨면
방위의 18개월,
한 순간의 꿈이라네.

전설 속에 살아온 영원한 방위

십.팔.방.위. (십.팔.방.위.)

출근을 슬퍼말고 퇴근 때까지,
퇴근 때까지, 지켜-다-오.

달려라 달려라 출근버스야.

늦지마라, 늦지마라, 십팔방위야.
아아아아아-아
십.팔.방.위

[2]

싸제의 추억일랑
출근할 때 묻어두고

용맹한 내 모습에
밝은 미소 지어다오


6방이 방위면 18방
거.의.현.역. (거.의.현.역)

출근을 슬퍼말고 퇴근 때까지,
퇴근 때까지, 지켜-다-오.

달려라 달려라 출근버스야.

늦지마라, 늦지마라, 십팔방위야.
아아아아아-아
십.팔.방.위


노스트라다무스의 "공포의 대왕" 이 하늘에서 내려올 "1999년 7월"이나 Y2K버그로 연도를 두자리로만 표시하던 컴퓨터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통제를 상실한 핵무기가 무차별 발사되며, 경제가 붕괴하고 그때까지 인류가 쌓아온 기술문명이 한순간 멸망할 것이라던 "1999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에 비해 {천년여왕}의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는 시적인 운율이 뛰어났다. 맨 앞의 "1"과 " 몹시 거슬리긴 했지만, 9999년은 현재 인류에겐 너무 먼 미래.

어린 시절 그렇게 고대했던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 나는 석사 1학기 대학원 생으로 학생기숙사 식당에서 자판기에서 뽑은 초코바를 우두커니 씹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9시 9분 9초"에도 음료수 마시며 뭔가 있을까 기대해 봤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년여왕이 비장하게 읖조리던 "1999년 9월 9일 0시 9분 9초"는 어디로 간걸까.

각설하고, 

{은하철도 999}의 999나 {천년여왕}의 1000에서 기독교의 "종말론"과 "천년왕국"를 왜곡한 모티프가 있다고 여긴 한국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이 두 애니메이션을 그런 취지에서 '사탄적'이라 여기고 방영금지를 주장하던 분들이 있었다. 사실 두 애니메이션을 MBC가 당시 유년부 주일학교가 열리던 시간인 일요일 오전 8시 무렵에 방영했기 때문에 유년부 예배 지각인원들이 상당했으니..... 아마 '사탄적'이란 인식도 틀리진 않았을 듯 

하지만 이 {천년여왕}이 정규방영이 중단되고 휴일에 간헐적으로 방영된 이유는, 대나무에서 태어나 달로 승천한 카구야 히메에 관한 일본 설화 {竹取物語 (죽취물어)}를 마츠모토 레이지가 재해석했다는 기사가 한국신문에 떴기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천년여왕}의 원제는 {新竹取物語1000年女王} (新 타케토리모노가타리 1000년 여왕)

카구야 히메 설화, 위키미디아 커먼스




# 2011년 10월

특별히 일정한 수열이 반복되진 않지만, 나와 내 아들 사이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숫자의 배합이다.

나와 아들은 띠동갑인데, 바로 이날부터 약 9달 간 간 내 나이는 아들 나이의 10배가 되었다. 나와 아들 사이에 평생 단 한번 있는 일. 

간단히 연수로만 나이를 셀 때, 아빠가 아이 나이의 10배가 되려면 아래와 같아야 한다.
  • 아이 1살, 아빠 10살
  • 아이 2살, 아빠 20살
  • 아이 3살, 아빠 30살
  • 아이 4살, 아빠 40살
  • 아이 5살, 아빠 50살
  • 아이 6살, 아빠 60살
  • 아이 7살, 아빠 70살
  • 아이 8살, 아빠 80살
  • 아이 9살, 아빠 90살
  • 아이 10살, 아빠 100살
  • 아이 11살, 아빠 110살.


10살 짜리 아빠는.... 비행청소년으로 보기에도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고, 환갑 이후로는 심히 주책 같아서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 22초

이 순간은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 이후 아주 고대하며 기다려왔던 순간으로, 이번엔 이 순간을 기념하며 간밤에 보"2"차를 끓여 마셨다.

"11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11초"는 이미 천년 전에 지났고, "3333년 3월 3일 3시 33분 33초"까지 살아있을 자신은 도무지 없다. "9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는 지구 자체가 대파국 없이 그때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조차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나마 약간 생존 가능성있는, 200년 후 "2222년 2월 22일 22시 22분 22초"는 완벽한 "2의 향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그 순간을 맘껏 즐기리라. 그러고도 여유가 좀 있다면 그때서야 다음도 한번 기약해 볼 수 있을 듯

  • 3333년 3월 3일 3시 33분 33초
  • 4444년 4월 4일 4시 44분 44초
  • 5555년 5월 5일 5시 55분 55초
  • 6666년 6월 6일 6시 6분 6초
  • 7777년 7월 7일 7시 7분 7초
  • 8888년 8월 8일 8시 8분 8초
  • 9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


草人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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