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통(通)하였느냐?

일상

[© 최광민] 통(通)하였느냐?

草人! 2021. 11. 26. 16:54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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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通)하였느냐?

순서
  1. 암기, 암기, 암기
  2. 남녀상렬지사 (男女相悅之詞)
    1. 쌍화점 (雙花店)
    2. 동동 (動動)
  3. 통(通)하였느냐?


Zihuatanejo, {The Shawshank Redemption}


1. 암기, 암기, 암기

나의 고등학교 교육은 전형적인 암기식 입시위주 교육이었다. 사실 나는 암기식 교육이 창의적 정신을 빼앗아 간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암기식 교육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 장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방대한 엔트리 혹은 키워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두뇌에 저장된 정보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라고 보았을 때, 인간은 그 정보를 무작위로 검색할 수는 없고 대신 일종의 키워드를 사용해 내용을 쉽게 꺼내 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검색이 잦은 정보는 피드백을 받아 기억 속에서 더욱 강화되지만, 검색되지 않는 정보들은 점점 희석되어 흔적만 남는다. 암기식 교육은 당시로서는 (그리고 나중에도) 별로 쓸데없어 보이는 키워드들을 암기하도록 학생들에게 "강요"함으로써, 나중에 혹시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 그 정보를, 혹은 그런 정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리게 해 준다. 물론 암기식 정보가 주는 것은 그저 키워드일 뿐이긴 하지만, 하지만 누구나 흥미가 있다면 이 키워드를 사다리 삼아 더 깊고 상위의 정보로 이동해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암기식 교육이 나에게 준 혜택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남보다 더 많은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암기식 교육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많은 검색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수 십년 전이라면 이런 키워드와 호기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나서 인터넷이 등장했고, 이제 키워드와 호기심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플라톤의 원문에서 TV 드라마 편성표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모두 검색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시대를 지식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지 않은 20대에 맞이했다는 점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한다.


2. 남녀상렬지사 (男女相悅之詞)

고등학교 국어시간을 나는 "제도"시간이라고 부르곤 했다. 국어를 "정복"하기 위해 한 손엔 자를, 다른 손엔 형광펜과 칼라볼펜을 들고 교과서에 "밑줄 쫙" 긋는 제도시간으로 국어수업이 규정되던 시절, 우리는 줄을 긋지 않으면 무언가를 암기해야했다. 나는 원래 시를 좋아해서 시를 외우는 것은 그다지 큰 고통은 아니었다. 문제는 못 외우면 몽둥이 찜질을 당한다는 점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때 외웠던 시들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의 야구방망이와 큣대라는 폭력이 가져다 준 아취어린 부작용 (교양)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무튼 우린 목숨을 걸고 시를 외웠다. 백수광부의 {공무도하가}에서 서정주의 {국화옆에서}까지, 세종의 {훈민정음 서문}에서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까지 우리는 2천 수 백년을 넘나드는 우리 민족의 시가/산문문학을 정말 지겹게도 줄줄이 외워댔다. 어디 그 뿐 만인가! 한문시간에는 "나랏말쌈이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꿔렌들도 능히 읽어낼 수 없다는 얼마나 또 많은 당나라 5언절구들과 8언율시들 줄줄이 읊어대었던가? 심지어 한국어로 된 훈민정음 서문의 한문버젼인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야 여문자로 불상유통할세..."까지 외워야 했릿?심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어느날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고려가요 2편씩을 외워오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외울까 잠시 고민하다가 우연히 국사책에서 고려시대 아랍상인들이 모여살던 예성강 하구 벽란도에 대한 대목을 떠올리고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詞)'로 분류되는 {쌍화점}을 생각해 냈다. 남녀상렬지사는 물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리가 없다. 나는 이 시와 역시 다른 남녀상렬지사인 {동동}을 외워갔고, 결과는 국어선생님의 당구 큣대로 엉덩이 10대를 가격당하는 것으로 참담하게 끝났다. 때린 이유는 분명했다. 그런 남녀상렬지사는 학력고사에 나올 리가 없다는 것.

그럼 처음부터 남녀상렬지사는 안 된다고 말하시든지.


2.1. 쌍화점 (雙花店)

{쌍화점}은 13세기 충렬왕 때 지어진 음사다. 충렬왕은 이름난 음탕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국에 직접 신하를 파견해 미인들을 관기로 삼아 개경으로 불러올리고, 이들에게 남자옷을 입히고 남장별대(男粧別隊)라 불렀는데 이 노래 역시 이들이 부르고 연기도 했다고 한다. '쌍화점'은 상화(霜花)라는 서역식 떡을 파는 집으로 '상화'란 술을 넣어 발효시킨 빵 같은 것이라고 하고, '회회아비'란 원나라때 실크로드에서 무역을 담당했던 원나라 제2신 계급인 색목인(色目人)인을 뜻한다. 그들은 서역인이며 또한 회교도였다. (회회아비가 단순히 몽골인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

-1

샹화점(雙花店)에 샹화(雙花) 사라 가고신댄
회회(回回)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店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 거지러 다로러
긔 잔 데가티 더마거초니 업다

쌍화점에 쌍화떡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2.

삼쟝사(三藏寺)애 브를 혀라 가고신댄
그 뎔 사쥬(社主)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뎔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삿기 샹좌(上座)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지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덥거츠니 업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3.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댄
우뭇룡(龍)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우믈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ㅤㅅㅢㅤ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잣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지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덥거츠니 업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4.

술팔 집의 술를 사라 가고신댄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싸미 이 집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간 ㅤㅅㅢㅤ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잣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워 워(偉偉)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듸가티 덤거츠니 업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망할 무렵의 고려는 이처럼 왕에서 백성까지, 땅끝에서 건너온 외국인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의 괴생물체까지 가세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나라꼴 볼 만 하다.


2.2. 동동 (動動)

하지만 고려에 이런 남녀상렬지사만 있던 것은 아니다.같은 남녀상렬지사이지만 월령가인 {동동}인 이보다는 나의 정서에 들어맞는다. 사실 찬찬히 살펴본다면 {동동}이 무슨 음란한 남녀상렬지사인가? 요새 귀로 듣는다면 기껏 애절한 발라드 정도에 해당할 뿐인 것을. {동동} 속 어디에 회회아비가, 주지스님이, 우물룡이, 술집주인이 여념집 처녀 손을 지긋이 쥐던가? 아니 조선의 사대부들에게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없었더란 말인가. {동동}과 같은 남녀상렬지사라면, 순정이 소외받는 이 시대에는 지엄한 국법으로 지정해 모든 청춘남녀들에게 암기/숙지하게 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1

正月(정월)ㅅ 나릿므른 아으 어져 녹져 하논대. (정월의 냇물은 얼었다 녹았다 정다운데)
누릿 가온대 나곤 몸하 하올로 널셔. (세상 가운데 나고는 이 몸은 홀로 지내누나)
아으 動動다리.

二月ㅅ 보로매, 아으 노피 현 燈(등)人블 다호라. (이월 보름에 아! 높이 켠 등불 같아라)
萬人(만인) 비취실 즈지샷다. (만인 비치실 모습이로다)
아으 動動다리.

四月 아니 니저 아으 오실셔 곳고리새여. (사월 아니 잊고 아! 오셨네 꾀꼬리여)
므슴다 錄事(녹사)니만 ㅤㄴㅖㅅ 나랄 닛고신뎌. (무슨 일로 녹사님은 옛날을 잊고 계신가)
아으 動動다리.

六月ㅅ 보로매 아으 별해 바룐 빗 다호라. (유월 보름에 아! 벼랑가에 버린 빗 같구나)
도라보실 니믈 ㅤㅈㅕㄱ곰 좃니노이다. (돌아보실 님을 잠시나마 따르겠습니다.)
아으 動動다리.

七月ㅅ 보로매 아으 百種(백종) 排(배)하야 두고, (칠월 보름에 아! 갖가지 제물 벌여 두고)
니믈 願(원)을 비잡노이다. (님과 함께 지내고자 소원을 비옵니다)
아으 動動다리.

八月ㅅ 보로만 아으 嘉排(가배) 나라마란 (팔월 보름은 아! 한가윗날이건마는)
니믈 뫼셔 녀곤 오날날 嘉俳샷다.(님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늘이 뜻있는 한가윗날입니다.)
아으 動動다리.

十月애 아으 져미연 바랏 다호라. (시월에 아! 잘게 썰은 보리수나무 같구나)
것거 바리신 後(후)에 디니실 한 부니 업스샷다. (꺾어 버린 뒤에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아으 動動다리.

十一月ㅅ 봉당 자리예 아으 汗衫(한삼) 두퍼 누워 (십일월 흙바닥에 아! 홑적삼 덮고 누워)
슬할 사라온뎌 고우닐 스ㅤㅅㅢㅤ옴 녈셔. (임을 그리며 살아가는 나는 너무나 슬프구나)
아으 動動다리.

十二月ㅅ 분디남가로 갓곤 아으 나잘 盤(반)잇 져 다호라.(십이월 차려 올릴 소반의 젓가락 같구나.)
니ㅤㅁㅢㅤ알패 드러 얼이노니 소니 가재다 므라잡노이다. (님 앞에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 입에 뭅니다)
아으 動動다리.


3. 통(通)하였느냐?

그래서 '순정' 좋아하던 草人은 순정 좋아하다가 과연 애정만세(愛情萬世)를 불러나 보았더냐? 위 더러듕셩 사랑에 통(通)하였더냐? 통하긴. 여태껏 편편황조(翩翩黃鳥) 바라보며 소녀야소녀야(少女何少女何) 외치고 있는, 애정불통(愛情不通)에 아으 동동다리 신세지.

翩翩黃鳥 훨훨나는 꾀꼬리는
雌雄相依 암수 서로 정다운데
念我之獨 외롭구나 이내 몸은
誰其與歸 뉘와 함께 돌아갈까.

하지만 유리왕은, 성유리는, 이제 더이상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유리왕은 백골이 진토된 지가 오래요, 성유리는 전업한 지가 오래니까. 아홉촌장(九干)들과 함께 찬바람을 맞으며 산정상에 서서 때때로 절규해 보기도 한다지만, 쌀쌀한 바람은 코끝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나의 심장을 후비는데, 아소 님하, 당신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느뇨.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찍고 xx (탬버린).

少女何少女何 소녀야 소녀야
首其現也 머리를 내밀어라.
若不現也 내밀지 않으면
獨居而生也 혼자서 살겠노라

나는 터벅터벅 4잎 클로버가 자란다는 전설의 섬을 찾아 항구를 찾아도 보지만, 포구의 뱃사람들은 하나같이 시큰둥한 표정만 지으며, 한때 그토록 많던 4잎 클로버는 오래 전 이미 모두 말라죽고 이젠 한 잎, 2잎 혹은 3잎 만 가지는 돌연변이들만 섬에 번성한다는 흉흉한 소문 만을 전한다. 원래부터 그 섬은 존재한 적조차 없다며 일갈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을 던져버릴 수 없는 나는 이 고독의 망망대해 위에 일엽편주를 띄우고, 오늘도 옛 지도가 가리키는 섬을 향해 바람도 없는 짙푸른 바다 위를 힘차게 저어간다. 뱃전을 나는 편편황조를 푯대 삼아.

비록 그 길이 외롭고 쓸쓸할 지라도,
들려오는 풍문이 나를 절망시킨다 하더라도,
억조창생이 몰려와 돛을 찢어버린다 하더라도,

두 손으로 노를 단단히 붙들고
나는 소망한다.

I hope the my clover is up there.
I hope I can make it across the border.
I hope to see her and shake her hands.
I hope she is as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and 소박하기를 as she has been in my dreams.

I HOPE.

至菊叢 至菊叢 於思臥,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至菊叢 至菊叢 於思臥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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