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7: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목차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 최광민 (Kwangmin Choi). 2019-11-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7: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목차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 초기교회에서의 로마주교/감독의 지위는?
- 베드로는 로마주교로서 순교했는가?
- 서유럽 로마카톨릭 교황이 오늘날 같은 수장권을 주장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 "너는 베드로다"
- 바울의 로마방문 이전에 로마교회가 있었고 장로/감독이 있었다는 사실은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을까?
Icon of Sts. Peter and Paul from Saint Sophia Cathedral in Novgorod
#로마카톨릭교회의 수장권 주장에 대해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 감독의 지위는 어떠했나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린도 교회가 분열하였을 때 당시 로마 감독이였던 클레멘트는 자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니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서신을 썼다고 했는데,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로마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도 우위에 있었나요?
[답변]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는 교황수장권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초기교회의 로마 주교가 아무 힘도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과도하게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역사적인 로마 주교의 지위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AD 1세기 말부터 로마 주교/감독의 지위는 좀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로마는 정치/경제적으로 제국의 수도라는 우월적 지위를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순)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매우 초기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로마 일대는 1세기 중반부터 로마 중앙정부의 크고 작은 박해에 여러차례 노출되어 있어 (가령, 네로 시절) 초기부터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또 베드로와 바울이란 두 대표적 사도가 모두 로마에 가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또 순교하기까지 했다고 여러 지역교회들의 다수 주교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주교들이 로마주교직에 대해서 매우 명예로운 자리라며 찬사를 보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대교회의 직제상 타 지역 주교는 다른 주교의 치리권에 개인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고대의 로마 주교가 중세의 교황과 같은 형식으로 타 지역 주교의 치리 문제에 "상관"의 자격으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AD 4세기 이후에도 "공회의"가 소집되면 로마 주교는 본인 혹은 특사를 공회의에 파송해서 로마교회의 견해를 다른 지역교회의 주교들 앞에서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동서방 교회가 공히 "공회의"로 수용하는 주요 전체공회의에서 로마 주교는 이들 공회의를 독단적으로 주관하지도, 그 진행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다른 지역 보편교회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을 말하기는 불리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가 소집하고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키릴로스가 주재해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소위 '양성론' 논쟁을 다룬 AD 431년 제 1차 에페소스 공회의에 이어, 단성론 논쟁인 유티케스 논쟁의 핵심인 예수의 신-인성 결합문제에 대해 로마 주교 레오1세가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가 소집하고 알렉산드리아 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주재한) AD 449년 에페소스 제2차회의 ("강도회의")에 콘스탄티노플 주교 플라비아노스를 지지하는 서한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당시 합성파인 알렉산드리아 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주도한 에페소스 제2차회의에서는 묵살되었습니다. 레오1세는 단성파가 주도한 에페소스 공회의에서 단성론/합성론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수도원장 유티케스를 옹호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를 꾸짖으면서, 알렉산드리아 제 1대 주교인 마르코스 (마가)가 로마 주교 베드로의 비서였으니, 알렉산드리아 주교는 로마 주교의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디오스코로스를 비판합니다. 물론 에페소스 제2차회의를 장악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와 친-알렉산드리아 단성파 주교들은 레오1세의 이 편지를 완전히 묵살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령 로마교회의 "초대주교"였다고 해도, 이것으로부터 다른 교회와 주교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이 자동적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대주교" 역시 베드로이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직은 베드로 > 에보디오스 > 이그나티오스로 이어졌다고 고대교회들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최광민
[질문] 베드로는 실제로 로마로 가서 거기서 감독직을 맡고 사역을 하다가 순교를 했나요?
[답변]
AD 2-3세기 교부들의 기록이나 (그 유명한 "쿼 바디스?" 가 등장하는) 위경 {베드로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어떤 식으로든 (실제 방문을 포함해) 로마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확실하고, 또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사역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클레멘스가 남긴 기록의 경우,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정황상 로마라고 추정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감독/주교직"이란 표현은 좀 문제가 있는데, 베드로는 공식적으로는 "사도"이고, 전승에 따르면 그가 "리누스"를 감독으로 세운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의 정의란 "사도의 바른 가르침과 권위를 직접 전승"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본인이 후대의 의미로서 "주교/감독"이라고 말하긴 정의상 약간 곤란하죠. 그리고 1세기 말까진 아직 사제/장로나 주교/감독이란 용어가 같은 직제 안에서 혼용되던 시대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직의 강화는 그노시스 이단의 발흥하는 1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이단에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 최광민
[질문] 초기 기독교 시대에 로마 감독의 지위는 어떠했나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 고린도 교회가 분열하였을 때 당시 로마 감독이였던 클레멘트는 자신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니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서신을 썼다고 했는데,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로마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도 우위에 있었나요?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는 교황수장권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초기교회의 로마 주교가 아무 힘도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과도하게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역사적인 로마 주교의 지위가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AD 1세기 말부터 로마 주교/감독의 지위는 좀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단 로마는 정치/경제적으로 제국의 수도라는 우월적 지위를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순)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매우 초기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로마 일대는 1세기 중반부터 로마 중앙정부의 크고 작은 박해에 여러차례 노출되어 있어 (가령, 네로 시절) 초기부터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또 베드로와 바울이란 두 대표적 사도가 모두 로마에 가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또 순교하기까지 했다고 여러 지역교회들의 다수 주교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주교들이 로마주교직에 대해서 매우 명예로운 자리라며 찬사를 보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대교회의 직제상 타 지역 주교는 다른 주교의 치리권에 개인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고대의 로마 주교가 중세의 교황과 같은 형식으로 타 지역 주교의 치리 문제에 "상관"의 자격으로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AD 4세기 이후에도 "공회의"가 소집되면 로마 주교는 본인 혹은 특사를 공회의에 파송해서 로마교회의 견해를 다른 지역교회의 주교들 앞에서 표명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동서방 교회가 공히 "공회의"로 수용하는 주요 전체공회의에서 로마 주교는 이들 공회의를 독단적으로 주관하지도, 그 진행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다른 지역 보편교회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을 말하기는 불리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가 소집하고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키릴로스가 주재해 콘스탄티노플 총주교 네스토리우스의 소위 '양성론' 논쟁을 다룬 AD 431년 제 1차 에페소스 공회의에 이어, 단성론 논쟁인 유티케스 논쟁의 핵심인 예수의 신-인성 결합문제에 대해 로마 주교 레오1세가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가 소집하고 알렉산드리아 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주재한) AD 449년 에페소스 제2차회의 ("강도회의")에 콘스탄티노플 주교 플라비아노스를 지지하는 서한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당시 합성파인 알렉산드리아 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주도한 에페소스 제2차회의에서는 묵살되었습니다. 레오1세는 단성파가 주도한 에페소스 공회의에서 단성론/합성론자인 콘스탄티노플 대수도원장 유티케스를 옹호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를 꾸짖으면서, 알렉산드리아 제 1대 주교인 마르코스 (마가)가 로마 주교 베드로의 비서였으니, 알렉산드리아 주교는 로마 주교의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디오스코로스를 비판합니다. 물론 에페소스 제2차회의를 장악한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디오스코로스와 친-알렉산드리아 단성파 주교들은 레오1세의 이 편지를 완전히 묵살했습니다.
전체 보편교회의 주도권을 놓고 알렉산드리아 총주교좌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좌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새 공회의를 소집하기 위해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오스 2세는 이번에는 레오 1세에게 회의 주재를 요청하면서 AD 450년 보낸 서신에서 그를 처음으로 "서방의 총주교 (파트리아르카 옥시덴티스 Patriarcha Occidentis)"라 불렀고, 이후 이 호칭은 로마주교, 즉 로마카톨릭 교황의 공식 칭호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레오 1세는 이번에도 직접 참석은 피하고 대리인들을 테오도시오스 2세의 후임 마르키아노스 황제가 소집한 칼케돈 공회의에 파견하여 주재시킵니다. 이때 레오 1세가 지난 AD 449년 제 2차 에페소스 회의 (강도회의)때 보냈다가 묵살되었던 서신이 참석자들에게 "재발견"되어 공개적으로 거론되면서 결국 알렉산드리아 측은 결정적으로 패배해게 됩니다.
한편 레오 1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는 선출직이 아닌 당연직으로 로마황제들에게 자동승계되어 그라티아누스 황제 (재위: AD 367-383)까지 이어지다가 사용중단된 로마의 대사제직인 "폰티펙스 막시무스"란 직위/호칭을 AD 440년 경부터 로마주교에게 처음 적용시킨 인물입니다. 이 '폰티펙스 막스무스' 역시 이래로 로마주교의 공식호칭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령 로마교회의 "초대주교"였다고 해도, 이것으로부터 다른 교회와 주교들에 대한 로마교회의 수장권이 자동적으로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키아 교회의 "초대주교" 역시 베드로이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직은 베드로 > 에보디오스 > 이그나티오스로 이어졌다고 고대교회들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 최광민
[질문] 베드로는 실제로 로마로 가서 거기서 감독직을 맡고 사역을 하다가 순교를 했나요?
[답변]
AD 2-3세기 교부들의 기록이나 (그 유명한 "쿼 바디스?" 가 등장하는) 위경 {베드로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어떤 식으로든 (실제 방문을 포함해) 로마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확실하고, 또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사역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클레멘스가 남긴 기록의 경우,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정황상 로마라고 추정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감독/주교직"이란 표현은 좀 문제가 있는데, 베드로는 공식적으로는 "사도"이고, 전승에 따르면 그가 "리누스"를 감독으로 세운 것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의 정의란 "사도의 바른 가르침과 권위를 직접 전승"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본인이 후대의 의미로서 "주교/감독"이라고 말하긴 정의상 약간 곤란하죠. 그리고 1세기 말까진 아직 사제/장로나 주교/감독이란 용어가 같은 직제 안에서 혼용되던 시대로 학계는 추정합니다. 앞서 말한대로, 주교/감독직의 강화는 그노시스 이단의 발흥하는 1세기 후반 이후 다양한 이단에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 최광민
[질문] 로마 감독이 서유럽 기독교 세계의 수장으로서 현재의 교황과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단계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답변]
단계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일단 칼케돈 공회에서 다룬 예수의 신/인성 논쟁에서 로마주교 레오1세의
견해를 바탕으로 공식신조인 {칼케돈 신조}가 작성되면서 로마교회의 신학적
입지가 강화됩니다. 하지만 칼케돈 공회의이후 교회, 특별히 시리아와 이집트
지역은 단성/합성파가 주류를 이뤘고, 이 지역이 이슬람에 병합되는 7세기 까지도
칼케돈파는 이 지역을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라틴/로마교회가 동로마 비잔틴 황제 및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 맞설 만한 실질적인 정치력이 생긴 것은, AD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틴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힘을 잃고 난 6세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동로마 지역이 단성/양성/칼케돈파 분쟁과 및 이슬람 등장과 함께 도래한 성화상 논쟁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에 빠진 7-8세기를 거쳐, 아리우스파인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니케아신조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귀의하고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는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 카롤루스 마그누스 (샤를마뉴)가 동로마에 정치/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로마 주교가 샤를마뉴에게 서로마황제의 지위를 대관한 이후인 8-9세기 이후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면 대략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의 일이죠.
이후 10-11세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선교지 관할권 충돌문제 및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 이후, 로마주교가 서유럽 전체의 관할권 뿐 아니라 동방에 대해서도 단독 "수장권"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 전역에 선교를 떠나기 이전부터 로마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들에 의해 이미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로마에 사도 바울이 가기 이미 이전부터 상당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바울과 더 나아가 베드로가 로마에 가기 이전부터 로마에는 장로와 감독이 있었을테니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가톨릭 측에 대한 강력한 반박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례만 봐도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보면 이미 AD 40년대에는 그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울이 AD 50년 대 후반에 로마에 갔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사도권 계승"이겠죠? 그 전에 있던 장로/감독을 사도가 직접 임명하거나 인준하지 않았다면 "계승"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마교회에서 (1) 베드로 -- (2) 리누스 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가령, AD 5세기 무렵의 동/서방의 기독교 교부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3세기 중반, (서방)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각 교회는 "각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각각은 바로 이 개별 주교들에 의해 치리된다고 적습니다.
4세기 (동방) 소아시아 닛사 주교 그레고리오스는 해당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천국의 열쇠들을 모든 "주교들"에게 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물론 이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처의 주교들이 로마교회의 계승선에 따라 주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 것이며,
베드로는 그 열쇠를 받은 첫 사람이자 그 대표란 인식입니다. 이건 확실히
'베드로의 계승자인 로마주교가 다른 모든 주교에 대한 (치리에 있어)
수장권을 가진다'란 설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 최광민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라틴/로마교회가 동로마 비잔틴 황제 및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 맞설 만한 실질적인 정치력이 생긴 것은, AD 5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사후 비잔틴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힘을 잃고 난 6세기 이후부터 시작하여, 동로마 지역이 단성/양성/칼케돈파 분쟁과 및 이슬람 등장과 함께 도래한 성화상 논쟁으로 정치적/종교적 혼란에 빠진 7-8세기를 거쳐, 아리우스파인 다른 게르만족과 달리 니케아신조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귀의하고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을 장악하게 되는 프랑크 왕국의 통치자 카롤루스 마그누스 (샤를마뉴)가 동로마에 정치/군사적으로 거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동시에 로마 주교가 샤를마뉴에게 서로마황제의 지위를 대관한 이후인 8-9세기 이후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면 대략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후대의 일이죠.
이후 10-11세기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가 선교지 관할권 충돌문제 및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는가를 두고 벌어진 필리오케 논쟁 이후, 로마주교가 서유럽 전체의 관할권 뿐 아니라 동방에 대해서도 단독 "수장권"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 최광민
[질문]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 전역에 선교를 떠나기 이전부터 로마 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들에 의해 이미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었는데 이는 사실인가요? 로마에 사도 바울이 가기 이미 이전부터 상당 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바울과 더 나아가 베드로가 로마에 가기 이전부터 로마에는 장로와 감독이 있었을테니 교황수위권을 주장하는 가톨릭 측에 대한 강력한 반박 사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된 사례만 봐도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보면 이미 AD 40년대에는 그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바울이 AD 50년 대 후반에 로마에 갔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사도권 계승"이겠죠? 그 전에 있던 장로/감독을 사도가 직접 임명하거나 인준하지 않았다면 "계승"의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마교회에서 (1) 베드로 -- (2) 리누스 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 최광민
[질문] 동방 정교회에서는 가톨릭에서 베드로의 수위권의 근거로
사용하는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또 4세기
경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이 반석 위에"라는 절에서 반석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로마 교회에서 "반석"의
의미가 베드로를 뜻하며 교황수위권의 근거로서 사용된 시기는 언제부터
인가요?
[답변]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상스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를 들어보시고요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녹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마태(오)의 복음서} 16장 18-19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을 가사로
합니다.
[답변]
우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르네상스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Tu es Petrus 너는 베드로다}를 들어보시고요 (킹스칼리지 합창단의 녹음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녹음입니다)
18 κἀγὼ δέ σοι λέγω ὅτι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19 δώσω σοι τὰς κλεῖδας τῆς βασιλείας τῶν οὐρανῶν, καὶ ὃ ἐὰν δή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δεδε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καὶ ὃ ἐὰν λύσῃς ἐπὶ τῆς γῆς ἔσται λελυμένο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 그리스어
18 Et ego dico tibi, quia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19 Et tibi dabo claves regni cælorum. Et quodcumque ligaveris super terram, erit ligatum et in cælis: et quodcumque solveris super terram, erit solutum et in cælis. --- 라틴어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한국어 새번역
해당 복음서 구절을 앞뒤 문맥에 맞춰 평이하게 읽으면, 이 말은 예수가
케파(아람어)/베드로(그리스어)에게 하고 있는 말이고, 문맥상 예수가 말하는
'반석'은 베드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마도 대화에 사용했을 아람어로 하면 이렇게 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한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 혹은 다른 단어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는 재치있는 언어유희 (pun)를 가끔씩 사용하는데 사실 이 구절도 그런 한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앞의 '케파'는 베드로지만, 뒤의 '케파'는 바로 앞에 등장하는 그의 '믿음'의 믿음의 '반석/케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두 케파 모두 베드로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앞뒤 '케파'는 '베드로 개인'과 '반석'이란 뜻이 이중적으로 중의적으로 조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베드로 πέτρος" 다, 내가 이 "반석 πέτρ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가 아마도 대화에 사용했을 아람어로 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는 "케파"다. 내가 이 "케파"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복음서에서 예수는 한 단어의 이중적인 의미, 혹은 다른 단어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는 재치있는 언어유희 (pun)를 가끔씩 사용하는데 사실 이 구절도 그런 한 예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가령, 앞의 '케파'는 베드로지만, 뒤의 '케파'는 바로 앞에 등장하는 그의 '믿음'의 믿음의 '반석/케파'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두 케파 모두 베드로를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앞뒤 '케파'는 '베드로 개인'과 '반석'이란 뜻이 이중적으로 중의적으로 조합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구절을 다른 모든 교회에 대한 "로마주교의 수장권"을 주장하는
로마카톨릭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즉, "1대 로마 주교인 베드로를 계승하는
교회가 (혹은 교회"만") 그리스도의 교회이다"라는 식으로 읽게 되는 경우,
로마 주교의 치리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란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통해 세운
'참 교회'인 '로마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정교회의 경우는 저 구절을 그냥 액면가로 읽습니다. 다만,
정교회의 입장은 오직 "로마 주교"만이 베드로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모든
주교가 그를 (정확히는 그와 사도적 권위를 나눠갖는 모든 사도들) 계승한
것으로 봅니다. (사실 안티오키아 교회의 1대 주교도 베드로입니다) 따라서
로마 주교는 모든 합법적 주교 가운데 하나인 형제일 뿐이지, 로마 주교가
다른 지역의 주교들보다 수위에 있다는 근거를 저 구절에서 이끌어낼 수
없다고 여깁니다. "주교"라는 지위의 고대적 의미가 "(이단에 대해)
정통교리의 계승자"란 점에서 본다면, 베드로와 사도들의 권위는 "특정지역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교리수호자"로서의 주교들을 통해 이어진다고
풀이하는 것이죠.
3세기 중반, (서방)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각 교회는 "각 주교"에 의해 세워졌고, 각각은 바로 이 개별 주교들에 의해 치리된다고 적습니다.
"Our Lord, whose precepts and admonitions we ought to observe, describing the honour of a bishop and the order of His Church, speaks in the Gospel, and says to Peter: "I say unto you, That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will I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will give unto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soever you shall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Thence, through the changes of times and successions, the ordering of bishops and the plan of the Church flow onwards; so that the Church is founded upon the bishops, and every act of the Church is controlled by these same rulers." ---St. Cyprian, Epistle XXVI to the Lapsed그 말씀과 가르침에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할 우리 주님께서는 명예로운 주교의 지위와 그 분의 교회의 성직에 대해서 {복음서}에서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이 반석 위에 나는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지옥의 문들이 (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무엇이든 이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래서 시대가 흐르며 (주교직이) 계승되어 가면서, 주교직과 교회의 체계도 이렇게 흘러온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교들 위에 세워져 있고, 교회의 모든 일은 동일한 치리자들에 의해 통제된다. -- 카르타교 주교 키프리아누스, {파문된 자들에게 보내는 서신} / 번역: 최광민
라틴어 {불가타}의 번역자이기도 한 4-5세기 히에로니무스는 "모든 주교들"이
"천국의 열쇠들"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But you say, the Church was founded upon Peter: although elsewhere the same is attributed to all the Apostles, and they all receive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the strength of the Church depends upon them all alike, yet one among the twelve is chosen so that when a head has been appointed, there may be no occasion for schism. --- St. Jerome, Against Jovinanius:그런데 그대는 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비록 같은 것이 모든 사도들에게 주어졌고, 그들 모두 천국의 열쇠들을 받았고, 교회의 능력은 그들 (사도들) 모두 위에 동일하게 서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표가 뽑힐 때 12사도 가운에 한 명이 선택되었을 뿐이지 거기 어떤 분열도 있진 않았다 -- 히에로니무스, {요비아누스 반박} / 번역: 최광민
It is through Peter that Christ gave to bishops the keys of their heavenly prerogative. -- Gregory of Nyssa (Opp. tom iii)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열쇠들을 가질 특권을 주교들에게 주신 것은 베드로를 통한 것이다 -- 닛사 주교 그레고리우스 / 번역: 최광민
5세기 초반, (서방) 이탈리아 브레스키아 주교 가우덴티우스는, 해당 구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베드로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물론 "밀라노" 주교는 "로마" 주교가 전혀 아닙니다.
I beseech our common father Ambrose, that, after the scanty dew of my discourse, he may pour abundantly into your hearts the mysteries of the divine writings. Let him speak from that Holy Spirit with which he is filled, and ‘from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and, as a successor of Peter, he shall be the mouth of all the surrounding priests. For when the Lord Jesus asked of the apostles, ‘Whom do you say that I am?’ Peter alone replies, with the mouth of all believers,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What reward did that confession at once receive? Blessedness indeed, and the most glorious power of the heavenly kingdom --- St. Gaudentius Tract. 16, De Ordin. Ipsius.내 빈약한 논변 후에 그대의 가슴에 거룩한 성서의 신비를 부어주시길, 우리 모두의 교부인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촉구한다. 성령 충만하셔서 '그 배로 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그 분 (=암브로시우스)께서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고, 또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그 분은 주위 모든 사제들의 입이 되실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을 때, 베드로 홀로 모든 신자의 입을 대변해, "그리스도이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했다. 이 고백을 하자마자 어떤 상을 받았는가? 진실로 그것은 축복이자 천국의 가장 영광스런 권능이었다. --- 브레스키아 주교 가우덴티우스 / 번역: 최광민
6세기 (서방) 스페인의 세비야 주교인 이시도루스는 위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묶고 푸는 권한"은 그리스도를 통해 베드로에게 "우선" 주어졌고, 다른
사도들도 사도의 교제 가운데 동일한 권한을 부여받아 베드로와 동등한
자격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즉, 각 지역의 주교좌는 모두
동등한 그리스도의 교회란 뜻입니다. 6세기면 이미 동/서방 교회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던 때인데도 여전히 동일한 관점이 고수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Thus the Lord says to him: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sha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and I sha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So Peter first received the power of binding and loosing, and he first led people to faith by the power of his preaching. Still, the other apostles have been made equal with Peter in a fellowship of honor and power. They also, having been sent out into all the world, preached the Gospel. Having descended from these apostles, the bishops have succeeded them, and through all the world they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seats of the apostles. --- St. Isidore of Seville, {De Ecclesiasticus}그래서 주님께서는, "너는 베드로다. 이 반석 위에 나는 내 교회를 세울 것이고,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네게 천국의 열쇠들을 주겠다."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묶고/푸는 권능을 처음으로 받았고, 그의 능력있는 설교로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끈 첫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도들 역시 영예롭고 능력있는 교제 가운데 베드로와 동등하게 되었다. 그들 역시 모든 세상으로 내져 복음을 전파했다. 이 사도들의 뒤를 이어 주교들은 그들을 계승했고, 온 세상에서 그들은 사도좌를 세워오고 있다 --- 세비야 주교 이시도루스, {교회론} / 번역: 최광민
아무래도 저 구절이 "로마주교의 독점적 수위권"을 뜻하려면 타교회의
지위하향이 필요하므로, 서방의 로마카톨릭교회가 배타적 수장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때는 프랑크왕국의 정치적 지원 하에 서방이 동방에
대해 종교/정치적인 독립권을 대외적으로 표방하게 되는 9세기 이후라
봐야겠죠. 물론 동방은 이슬람의 침략과 십자군 전쟁으로 을의 위치에 처할
때 서방에 약간 고개를 숙이긴 하지만, 그 전이나 이후나 대체로 서방 측의
주장을 무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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