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3: 예정과 자유의지, 그리고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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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철학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03: 예정과 자유의지, 그리고 구원

草人! 2021. 8. 6. 12:17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0-13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로마카톨릭 vs. 프로테스탄트 #3: 예정과 자유의지, 그리고 구원

순서

  1. 아우구스티누스 당시 라틴교회의 상황
    1. 예정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1. 펠라기우스의 주장
      2. 아우구스티누스의 반박
    2. 중세의 논쟁: 고트샬크와 에리게나
      1. 서기 5-8세기의 중간 역사
      2. 고트샬크와 에리게나의 논쟁
    3. 16세기의 논쟁: 루터, 칼뱅, 아르미니우스
      1. 루터: 단일예정
      2. 칼뱅주의 진영: 칼뱅과 베자의 이중예정
      3. 아르미니우스: 예지
    4. 칼뱅주의적 아르미니우스 주의 혹은 아르미니우스적 칼뱅주의
    5. 악한 신자
    6. 선한 불신자: 구원, 형벌, 멸절
    7. 맺음말


    히포 주교 아우구스티누스, 서기 6세기 로마 라테란 프레스코 (출처: 위키미디아 커먼스)


    # 아우구스티누스 무렵까지의 간추린 역사

    권위(적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툴은 "전통"이란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할 때 역사적 맥락이 소중한 이유이다. 역사적인 부분이 그 텍스트를 이해하는 전부가 분명 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그 텍스트를 이해해 온 역사적 맥락을 배제해서도 않된다. 역사성이 배제된 종교는 언제든지 판타지로 전락할 위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사상사는 또한 고대와 중세의 철학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치적 격동기를 가진 지중해를 둘러싼 아시아-아프라카-동서유럽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독교 사상은 기나긴 교리적 투쟁을 거치며 처음 5세기를 넘겼다.

    AD 3세기 말까지 지중해 일대에는 대체로 3개의 총주교구가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로마가 그것이었다. 이후 AD 5세기까지 그리스도교 공인 후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5개의 총주교구의 지도에 따르는 각 지역의 주교들은 각각 교구를 감독하는 총주교의 독자적인 관할을 받았는데, 신학에서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가, 정치적 실세로서는 제국의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공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AD 1세기 말에 유대인 국가가 해체된 후로 수 세기가 흐른 탓에 예루살렘의 영향력은 더욱 약했고,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팔레스티나 지역을 총괄하는 카이사리아 주교구의 치리하에 있다가 양성파/단성파 논쟁의 결정타가 될 AD 451년의 칼케돈 공회의 이후에 총주교구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물론 기독교의 일반적 전승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종교적 상징성과 로마제국의 오랜 수도라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로마주교가 특수한 위치는 가지고 있었지만, 이 당시만 해도 각 지역 주교들은 로마주교의 통제권 하에 있지 않고 지역별로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로마주교의 치리권은 서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제한되어 있었다.

    삼위일체 논쟁과 테오토코스 논쟁 같은 심각한 교리논쟁의 진앙지는 로마가 아니라 범-그리스 문화권이었다. 즉,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들이 논쟁을 이끌고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신학자들이 가세했다. 이들의 논쟁은 단순한 교리 논쟁이 아니라 고도의 수사학과 논리학과 철학이 동원된 (그리고 다소 정치적인) 논쟁이었으며 ousia, persona, hypostasis, physis 같은 그리스 존재론의 철학용어들이 총동원되었기 때문에 다분히 그리스적인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가 그리스도론(Christology)을 중심으로 양성파와 단성파로 갈라서 철학적인 교리적 논쟁에 집중하고있을 무렵, 이탈리아 반도,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 지방, 북 아프리카라는 서로마 문명을 기반으로 하는 라틴교회는 상대적으로 이 논쟁들에 그다지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았고, 그 대신 신의 '은총'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은총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핵심에는 향후 그리스도교 사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아우구스티누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 예정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

    ## 논쟁의 발단(1세기) : 바울

    흔히들 예정론을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스위스 개혁교회를 이끌었던 쟝 칼뱅에 의해 제창된 것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와 쟝 칼뱅은 4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기 사상을 재차 강조했을 뿐이다. 또한 9세기의 고트샬크 역시 "이중예정"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창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기 견해를 충실히 재현해냈을 뿐이다.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이 견해를 스스로 제창한 것이 아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에 근거해서 펠라기우스에 맞섰을 뿐이었다.

    29 ὅτι οὓς προέγνω, καὶ προώρισεν συμμόρφους τῆς εἰκόνος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εἰς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πρωτότοκον ἐν πολλοῖς ἀδελφοῖς· 30 οὓς δὲ προώρισεν, τούτους καὶ ἐκάλεσεν· καὶ οὓς ἐκάλεσεν, τούτους καὶ ἐδικαίωσεν· οὓς δὲ ἐδικαίωσεν, τούτους καὶ ἐδόξασεν. 

    ...(8:29) nam quos praescivit et praedestinavit conformes fieri imaginis Filii eius ut sit ipse primogenitus in multis fratribus (8:30) quos autem praedestinavit hos et vocavit et quos vocavit hos et iustificavit quos autem iustificavit illos et glorificavit... 

    ...(8:29) 하느님은 미리 아신 사람들을 예정하여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정하셨고, 그래서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8:30) 하느님은 예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른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고, 의로운 자들을 영광스럽게 만드셨습니다....-- 한국어 공동번역, {로마서}

    성서를 신앙의 근저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교파도 위의 두 절에 등장하는 προγινώσκω / 예견 과 προορίζω / 예정 이란 단어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위의 두 단어에 대한 해석이 교파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소위 "예정론"은 칼뱅주의를 따르는 프로테스탄트 스위스 개혁교회, 장로파 교회, 일부 침례교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예정론"은 "칼뱅의 예정론" 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 펠라기우스의 관점

    브리타니아 혹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AD 400년 경 로마로 와서 살았던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쇠락을 거듭해 가고 있던 로마제국 서부에서 만연한 운명론과 결정론의 영향으로, 개인들의 윤리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가 상대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풍조에 분노했다.  로마에서 인간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한 펠라기우스는 곧 서부 로마제국 여러지역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게 된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스토아 철학에도 조예가 깊던 펠라기우스는, 실천윤리적인 스토아 철학적인 요소인 개인적인 금욕적 삶을 강조함으로써 로마인의 윤리의식을 고양하고자 했다.

    이런 무렵 펠라기우스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접하게 되었다.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에 훗날 펠라기우스-아우구스티누스 논쟁을 촉발시키게될 유명한 고백을 하나 적어 놓았다.

    Da quod iubes, et iube quod vis. Imperas novis continentiam. [Confessions, X, xxi:45]

    (주님,)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주시고, 주실 것을 명령하시옵소서 [고백, 10권 21:45]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논리를 즉각 비판했는데. "우리가 계명을 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신이 우리에게 계명들을 주신 것이지, 행할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계명을 주셨을 리가 없다"는 것이 펠라기우스의 주된 요점이었다. 즉, 선악을 선택할 인간의 자유의지를 변호하고 나선 것이었다.

     펠라기우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과 악을 독자적으로 추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의 구원은 각자의 윤리적 삶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펠라기우스적 논리의 귀결점은 전통적 원죄개념의 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펠라기우스가 보기에 아담의 죄는 아담 그 자신에게만 적용될 뿐이며, 따라서 신생아의 상태는 죄를 짓기 이전의 아담과 같은 상태라 보았다. 따라서 신의 징벌은 인류 전체에 내려진 선고가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 각자에게 해당하게 되게 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그동안 죄가 없는 사람도 있어왔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또한 펠라기우스는 예수는 자신의 희생적 삶을 통해 인간에게 윤리적 모범과 교훈을 주었을 뿐이며, 더 나아가 모세의 율법 역시 복음 만큼이나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윤리적 삶과 도덕적이고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신조는 로마교회 안에 즉각적인 교리적 충돌을 불러일으켰고,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지지하던  켈레스티우스가 공식적으로 원죄를 부정하자 본격적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켈레스티우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더 정교하게 밀고 나간 것이었는데, 이어지는 AD 415년 로마제국의 동부 팔레스티나에서 열린 리다 주교회의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펠라기우스가 켈레스티우스의 입장을 (표면적으로는) 정죄했다.

    북아프리카 히포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원죄에 관하여}에서 펠라기우스의 이단성을 조사하기 위해 팔레스티나에서 열린 회의에서 논의된 켈레스티우스의 주장을 옮기고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와 켈레스티우스의 견해는 사실상 같은 것이기 때문에, 주교회의에서 켈레스티우스의 견해를 정죄한 펠라기우스가 주교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을 거짓으로 기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문맥을 본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유아세례의 효력을 변호하기 위해서 이 논지를 펼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유아세례가 영아의 원죄를 씻는다고 여겼고, 따라서 펠라기우스/켈레스티우스의 견해처럼 영아들이 원죄가 없고 또 윤리적 삶을 통해 구원에 이를 나이에도 미치지 못하다면 "원죄를 씻는" 유아세례는 무의미하게 된다.

    Now I pray you carefully to observe by what evidence Pelagius is shown to have deceived his judges in Palestine, not to mention other points, on this very question of the baptism of infants, lest we should seem to any one to have used calumny and suspicion, rather than to have ascertained the certain fact, when we alleged that Pelagius concealed the opinion which Coelestius expressed with greater frankness, while at the same time he actually entertained the same views. Now, from what has been stated above, it has been clearly seen that Coelestius refused to condemn the assertion that "Adam's sin injured only himself, and not the human race, and that infants at their birth are in the same state that Adam was before the transgression," because he saw that, if he condemned these propositions, he would affirm that there was in infants a transmission of sin from Adam. When, however, it was objected to Pelagius that he was of one mind with Coelestius on this point, he condemned the words without hesitation. I am quite aware that you have read all this before. Since, however, we are not writing this account for you alone, we proceed to transcribe the very words of the synodal acts, lest the reader should be unwilling either to turn to the record for himself, or if he does not possess it, take the trouble to procure a copy. Here, then, are the words:—  Augustinus of Hippo, Book II. {On Original Sin} Chapter 11 [X.]—How that Pelagius Deceived the Synod of Palestine.

    [전략]...이제 위에 언급된 것처럼, 켈레스티우스는 "아담의 죄는 오직 본인만 효력이 있을 뿐이며 인류 전체에는 영향이 없었고, 갓 태어난 영아는 죄를 범하기 전 아담의 상태와 동일하다"란 주장을 정죄하길 거부했다. 이 전제를 정죄할 경우 그는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죄가 영아들에게도 전이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대해 켈레스티우스와 같은 생각인지를 펠라기우스에게 물었을때, 펠라기우스는 이 견해를 망설이지 않고 정죄했다. .....[후략]. --- 히포 주교 아우구스티누스, {원죄에 관하여}, 제 2권 11장 / 번역: 최광민

    이후 펠라기우스의 견해에 동조하던 로마주교 조시무스가 이 결정을 번복하자 AD 418년에 아프리카 주교단이 정죄를 재결의했고, 이번에는 로마주교 조시무스도 이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가 불러온 논쟁은 라틴교회 내부에서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논란이 아니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예정론

    AD 418년의 카르타고 주교회의에서 약 200명의 주교들이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정죄했는데, 이들은 원죄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의 은총은 과거 및 미래의 죄를 모두 포함한다는 점, 그리고 신의 은총없이는 인간이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원죄로 인해 갓난아기도 자동적으로 죄인이라는 관점은 유아세례의 의미를 강화시키게 된다.

    사실 원죄의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 이미 라틴교회의 교리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 북부도시 히포의 주교가 된 후, 마니교,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 그리고 아리우스파 등과 일련의 논쟁을 벌이게 되면서 원죄론과 은총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보다 더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치명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자기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의 관점은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유래한다는 기독교의 기본 사고와 충돌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원죄" 개념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지지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를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보았고, 따라서 아담의 죄란 신이 창조한 질서 속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은 "인간의 교만"이 초래한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인간 자신의 질서"마저 교란되어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와 영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또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로 인해 저주 아래 있으며, 특별히 인간이 성교를 통해 출생한 점에서 분명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성적 충동이란 영이 육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관점을 놓고 영과 육을 대립시키는 마니교의 교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벗어나지 못한 것이란 비판도 당시에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사랑에서 떠난 인간은 자기애에 고착된 결과 인간보다 열등한 것들에 예속되었다고 보았다.  영이 육에 예속된 결과 육의 노예인 인간은 자기행위로 타락했음에도 자기의지로는 타락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그의 노예의지는 구원 자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과 육이 역전된 현 인간상태를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단계가 구원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즉, “밑으로 내려가는 사랑이 위로 올라가는 사랑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신의 사랑과 은총 뿐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었다. 그래서 신의 아들이 성육신했고,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라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다.

    에클라눔의 주교로서 펠라기우스를 지지하여 파문당한  율리아누스는, 원죄를 성적충동과 결부시킨 아우구스티누스의 후기 견해를 예리하게 공격했다. 율리아누스는 인간의 본능은 피조된 본성에 속하므로 "도덕적 중립"이라는 입장을 취했고,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극복과 절제의 대상"인 본능적 충동을 "악"으로 규정해 물질과 영을 극단으로 대립시키는 마니교의 이원론으로 회귀했다고 비판했다.

    원죄론에 입장에 서 있던 측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극단적" 견해에 반발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의 비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윤리적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도덕적 규율을 무효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초점을 맞췄다. 로마 수도사이자 신학자였던 요한 카시아누스 (c. 360 – 435)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이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점을 들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마지막 저술을 통해 그의 예정론을 논리적인 극한까지 밀고 나갔는데. 당대 교회가 그의 이 주장을 일반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약 1000여년이 지나 로마카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예리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는 스콜라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나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그의 이론을 다시 복권시킬 것이다.



    그가 죽은 지 수 년이 지난 AD 434년, 레랭 (Lerins) 출신 수도사 빈켄티우스는 동서 분리 이전의 보편 (카톨릭) 교리의 보편성을 (1) 어디에나 있고, (2) 언제나 있고, (3) 누구나 믿는 것 (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creditum est)으로 정의한다. 빈켄티우스 본인이 준-펠라기우스주의를 지지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그의 활동지역인 현재 남 프랑스 지역인 남부 갈리아 지방에는 준-펠라기우스에 동조하는 성직자와 수도사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1) I have continually given the greatest pains and diligence to inquiring, from the greatest possible number of men outstanding in holiness and in doctrine, how I can secure a kind of fixed and, as it were, general and guiding principle for distinguishing the true Catholic Faith from the degraded falsehoods of heresy. And the answer that I receive is always to this effect; that if I wish, or indeed if anyone wishes, to detect the deceits of heretics that arise and to avoid their snares and to keep healthy and sound in a healthy faith, we ought, with the Lord's help, to fortify our faith in a twofold manner, firstly, that is, by the authority of God's Law, then by the tradition of the Catholic Church.

    (1) 거룩한 삶과 교리에 있어 뛰어났던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통해 타락한 이단과 진정한 보편교회를 구별해 낼 일종의 고정되고 보편적인 지도원리들을 확립할 수 있을지를 놓고, 나는 깊이 고심하며 끈기를 가지고 탐구를 계속해 왔다. 내 바램이든 혹은 다른 이들의 바램이든 간에, 발호하는 이단의 사기를 감지하고 그들의 덫을 피하며 건강하고 건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 두 단계로 우리의 신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늘 얻어진 결론이었다,
    그 첫번째 단계는 신의 율법 (=성서)의 권위를 따르는 것이고, 두번째는 보편교회 (카톨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 번역: 최광민

    (2) Here, it may be, someone will ask, Since the canon of Scripture is complete, and is in itself abundantly sufficient, what need is there to join to it the interpretation of the Church? The answer is that because of the very depth of Scripture all men do not place one identical interpretation upon it. The statements of the same writer are explained by different men in different ways, so much so that it seems almost possible to extract from it as many opinions as there are men. Novatian expounds in one way, Sabellius in another, Donatus in another, Arius, Eunomius and Macedonius in another, Photinus, Apollinaris and Priscillian in another, Jovinian, Pelagius and Caelestius in another, and latterly Nestorius in another. Therefore, because of the intricacies of error, which is so multiform, there is great need for the laying down of a rule for the exposition of Prophets and Apostles in accordance with the standard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Church Catholic.

    (2) 이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길, 성서의 정경들이 확립되었으니 그 자체로서 충분하지 않는지, 굳이 교회의 해석과 관련지어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성서를 아주 깊숙히 파들어가는 경우 모든 사람들이 단 하나의 동일한 해석에 이르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일한 저자의 진술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결국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은 견해가 추출될 가능성은 늘 있다. 노바티아누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사벨리우스는 저렇게 말하며, 도나투스는 또 이렇게, 아리우스, 유노미우스, 마케도니우스는 또 저렇게, 포티누스, 아폴리나리스, 프리스킬리아누스는 또 이렇게, 요비니아누스, 펠라기우스, 켈레스티우스는 다시 이렇게, 나중의 네스토리우스는 또 저렇게 설명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굉장히 다양한 세부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두고 보편교회의 해석기준에 따라 어떤 원칙을 놓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번역: 최광민

    (3) Now in the Catholic Church itself we take the greatest care to hold that which has been believed everywhere, always and by all. That is truly and properly 'Catholic,' as is shown by the very force and meaning of the word, which comprehends everything almost universally. We shall hold to this rule if we follow universality [i.e. oecumenicity], antiquity, and consent. We shall follow universality if we acknowledge that one Faith to be true which the whole Church throughout the world confesses; antiquity if we in no wise depart from those interpretations which it is clear that our ancestors and fathers proclaimed; consent, if in antiquity itself we keep following the definitions and opinions of all, or certainly nearly all, bishops and doctors alike.

    (3) 우리는 이제 보편교회 내부에서 어디서나 언제나 누구에게나 믿어졌던 것들을 매우 주의깊게 붙든다. 이것들이야 말로 진정 적절하게 그 단어 자체가 본래 의미에 따라 "보편적 / 카톨릭"이라 불릴 수 있으며, 거의 보편적인 모든 것들을 구성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보편적이고, 오래되었으며, 누구나 동의하는 그런 것을 따르겠다면, 바로 이 원칙을 붙들어야 한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고백하는 진리에 대한 하나의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보편성(의 원칙)'이다. 우리의 선조들과 교부들이 선언했던 것이 분명한 교리로 부터 이탈하지 않을 때 이를 '고대성(의 원칙)'이라 한다. 이 '고대성(의 원칙)' 그 자체에서 유래되는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 주교들과 교회박사들이 내린 정의들과 견해들 따를 때 이를 '동의성(원칙)'이라 한다. / 번역: 최광민

    (4) What then will the Catholic Christian do, if a small part of the Church has cut itself off from the communion of the universal Faith? The answer is sure. He will prefer the healthiness of the whole body to the morbid and corrupt limb. But what if some novel contagion try to infect the whole Church, and not merely a tiny part of it? Then he will take care to cleave to antiquity, which cannot now be led astray by any deceit of novelty. What if in antiquity itself two or three men, or it may be a city, or even a whole province be detected in error? Then he will take the greatest care to prefer the decrees of the ancient General Councils, if there are such, to the irresponsible ignorance of a few men. But what if some error arises regarding which nothing of this sort is to be found? Then he must do his best to compare the opinions of the Fathers and inquire their meaning, provided always that, though they belonged to diverse times and places, they yet continued in the faith and communion of the one Catholic Church; and let them be teachers approved and outstanding. And whatever he shall find to have been held, approved and taught, not by one or two only but by all equally and with one consent, openly, frequently, and persistently, let him take this as to be held by him without the slightest hesitation --- Vincent of Lerin, {the Commonitorium} CH4, A.D. 434 [ed. Moxon, Cambridge Patristic Texts]

    (4) 그럼 만약 교회의 일부가 보편적 믿음에서 이탈할 때, 보편교회의 기독교도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답은 분명하다. 그는 생기를 잃고 부패한 팔다리 보다는 전체 몸의 건강을 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감염이 생겨 전체로 침투해 들어오려 한다면, 그게 작은 부분이 아니라면? 그 경우 그는 어떤 새로운 발명에 속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고대성의 원리'에 따라 단절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대성의 원리'로 보더라도 두세 사람 혹은 한 도시, 혹은 한 지방 전체에서 오류가 감지된 경우라면? 그 경우라면, 몇 사람의 무책임한 무지에 기대기 보다는 고대의 보편적인 공회의가 있을 경우 거기서 내려진 선포를 우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오류가 시작된 것이라면? 이때 교부들의 견해들이 설령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펼쳐졌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의 보편교회 안에서 신앙을 가지고 교류한 것이라면, 그 견해들을 비교하고 그 의미을 연구하여 그들을 승인된 뛰어난 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전체가 동등하게 모두 동의하고 공개적으로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켜지고 인정되고 가르쳐져 온 것이라면, 그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것을 선택해야 한다.
    / 번역: 최광민

    빈켄티우스는 이 정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몇몇 극단적 주장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평가된다.

    동/서방교회는 AD 431년의 에페소스 공회의에 이은 AD 529년 오란게 공회의를 통해 펠라기우스파 및 준-펠라기우스파를 공식적으로 정죄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공식교리로 인정했다. 그러나 공회의의 내용과는 별도로 대체로 라틴교회는 일반적으로 다소 간의 준-펠라기우스주의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이해해 왔고, 장차 종교개혁 무렵의 로마카톨릭교회는 거의 준-펠라기우스 주의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마카톨릭교회가 펠라기우스 주의를 따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죄론을 가르치는 한 펠라기우스주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동방의 정교회는 서방과는 달리 예정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신학을 견지해 왔다. 정교회의 이해에 따르자면, 원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처럼 아담의 후손에게 "유전"되어지는 어떤 '실체적'인 무엇이라기 보다는, 아담의 죄에 의해 인류가 낮은 단계로 타락하게 된 '결과'로서 이해한다. 즉,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지칭한다고 본다.

    보다 철저한 후기 아우구스티누스 주의를 재천명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이었다. 반-종교개혁 성향의 로마카톨릭측의 트렌트 공회의의 결의에 따라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의 신인협력을 강조하는 준-펠라기우스주의는 로마카톨릭 교회의 공식교리가 되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가운데도 준-펠라기우스주의를 도입하는 그룹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신학자는 네덜란드의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다. 이 견해는 ‘아르미니우스 주의’로 통칭된다. 이 문제는 프로테스탄트 신학 가운데 여전히 논쟁 중이다.




    # 5세기에서 8세기까지의 중간 역사

    아우구스티누스가 북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로 있으면서 마니교, 펠라기우스, 노바투스파 등의 이단과 논쟁을 벌이고, 한편 {삼위일체론}과 {신국론} 등 전체 그리스도교 조직신학의 기초가 되는 문헌들을 저술하고 있을 무렵인 5세기 초반, 이미 로마제국의 정치적 실권은 로마가 아닌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해 있었고, 이탈리아, 갈리아, 이베리아, 북아프리카는 이미 게르만 이동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임종할 무렵 히포에는 이미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Vandal)족이 쳐들어와 성벽을 포위하고 있었고, 이후로 북아프리카의 로마문명은 쇠락하게 된다.

    게르만의 용병대장 출신 오도아케르(Odoacer)가 AD 476년 당시 서로마 제국의 수도이던 이탈리아 북부 라베나(Ravenna)를 함락시킨 후 계속해 이어지는 게르만족의 전면적 이동에 따라 고대 서로마의 치리지역이 게르만족에 의해 장악당하게 되고, 이 지역의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며 제국 변방인 이베리아 반도와 프랑스 남부인 갈리아 지방, 그리고 멀리 브리타니아와 아일랜드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그리스/로마의 고전고대 문명은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른 게르만족과는 달리 삼위일체를 신봉하는 원-카톨릭 (이때는 아직 동서교회가 분리되기 이전이므로 모두 "원-카톨릭" 혹은 그냥 "카톨릭"이라 칭하겠다) 을 받아들인 프랑크 왕국은 메로빙거 왕조의 집권을 지지함으로써 갈리아 지방에 지배력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카톨릭이 우세이던 이 지역의 정치적 지원을 얻어낸다. 메로빙거 왕조가 끝나고 카롤링거 왕조가 들어서자, 성상파괴령 (iconoclast)등으로 인해 라틴교회와 대립하던 동로마를 견제하고 동시에 이슬람의 침공을 막기위해, 로마주교/교황은 AD 800년 프랑크 왕국의 샤를/카알 카롤링거를 서로마 제국 황제로 대관하고 프랑크 왕국을 끊어진 서로마 제국의 정통 후계자임을 천명하게 된다. 이 사람이 샤를마뉴(Charlemagne) 혹은 라틴명으로 카롤루스 마그누스 (Carolus Magnus)다. 이로써 라틴교회는 동로마 황제의 정치적, 그리고 동로마 교회의 종교적 간섭에서 독립하게 된다.

    한편 AD 781년 영국 출신 수도사 알퀴누스 (Alcuin)는 로마를 방문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던 중 카롤루스를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을 통해 프랑크 왕국의 수도인 아헨 (Aarchen) 궁정에 카롤루스가 설치한 궁정학교의 감독으로 가게된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라틴교회는 당대에 이미 상당히 쇠락해서 사제 중에 문맹이 상당수 있었다. 알퀴누스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받아들인 다른 게르만족에 대한 카롤루스의 정복전쟁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해주는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개발하는 한편, 로마제국의 외곽이던 (당시에 세상의 끝이라 여겨지던) 영국의 수도원에서 보존되어 교육되어온 교회의 가르침을 대륙으로 재수입하고 종교와 문화 각 방면의 부활을 도모한다. 이것을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로마에서 영국으로 이식된 기독교는 이제 영국에서 대륙으로 재이식된 형색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 한동안 라틴교회는 앵글로-색슨의 영향으로 채색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알퀴누스가 교육받은 내용에 초/중반기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지만 말년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게르만 이동을 겪으면서 많은 문헌들이 소실되었고, 당시에는 모든 문서가 필사본이라서 수도원마다 서로 다른 장서목록을 보유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대문서의 전문 대신 요약된 초록들로 고대 사상가들의 생각을 가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점차적으로 아헨의 궁정학교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가던 알퀸학파는 은총의 개념을 점차 강화해가고 있었던 (그리고 ‘예정’의 의미를 강조해가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말년의 사상에 그다지 신경을 쓰고있지 않았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은 아리우스파를 신봉하던 다른 게르만족을 ‘선교’의 명분으로 정복해 온 샤를마뉴의 이데올로기적 명분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구원받을 자가 예정되어 있다면 샤를마뉴가 굳이 정복사업을 벌여 개종시키지 않아도 神이 알아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년의 아우구스티누스가 희석되고 초/중반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으로 무장한 알퀸과 알퀸의 제자들이 장악한 신학적 분위기 속에서, 독일 지역 오르바이스 (Orbais)의 수도원에서 말년의 아우구스티누스의 문헌을 재발굴한 수도사 고트샬크가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의 전면에 등장했다.




    # 고트샬크와 에리(우)게나의 논쟁

    AD 9세기 초반, 삭소니아 백작의 아들로 태어난 수도사 고트샬크 (Gottschalk of Orbais, AD 808-867)는 어린 시절 당시 관행에 따라 부모의 대리속죄물로서 풀다(Fulda)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바쳐졌다. 나이가 차 수도원을 떠날 권리를 행사하고자 당시 수도원장이던 라바누스 마우루스(Ravanus Maurus)에게 청원하지만 거절당한 후 오히려 강제로 수도사가 되어 풀다에서 오르바이스로 옮겨진다.

    이렇게 억지 수도사를 하는 동안 고트샬크는 오르바이스 수도원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년에 기록한 문헌들을 흥미있게 연구하게 되었고, 이 속에서 후대에 이중예정 (Double complete predestination) 이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 후기 예정론의 관점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 적은 것과 같이, 신이 구원받을 자와 저주받을 자를 아예 태초부터 예정해 두었다는 관점이다. 이 견해는  AD 848년 마인쯔에서 소집된 공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다.

    한편 수도원장 라바누스 마우루스는 앵글로-색슨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알퀸의 제자였다.그는 고트샬크의 이단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크 왕국의 수도 아헨 궁정에서는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신학교장인 아일랜드 출신의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Johannes Scottus Erigena)를 파견하게 된다. 그런데 조사관으로 파견된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게나는 당시 서방 신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라틴교회에게 생소했던 신-플라톤주의적 그리스 신학으로 무장한 에리게나는, 신의 단일성을 화두 삼아 고트샬크의 중복예정을 비판한 동시에 더 나아가 사후의 지옥이라는 장소적 개념까지 부정해 버렸다. 즉,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의 후회가 곧 그의 지옥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펼치는데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이에 이어지는 신학적 논증들로 인해 에리게나 역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 루터교단: 단일예정

    "단일예정론"은 1580년 독일 루터교단이 루터 사후 부터 그때까지 정립된 교단의 각종 신조들의 정리해 채택한 표준 교리서인 {콘코르디아 Concordia}를 따른 루터교단의 표준설명이다.

    하지만 원래 마르틴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에 대한 논박을 담은 저작인 {의지의 속박 The Bondage of the Will}에서 노예의지론 "이중예정론"을 펼쳤다. 그것은 루터에게 있어 신의 "의지"는 구원 뿐 아니라 세계의 현상과 질서를 설명하는 절대적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약화"되었을 뿐이기에 인간에겐 아직도 윤리적 선택을 할 자유의지가 유효하다고 본 반면, 루터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이미 손상되었고 이 손상된 자유의지를 가지고는 구원의 길을 선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아니,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생각하는 형식의 '자유의지' 혹은 '자유선택' 이라 불리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간파하고 이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인간의 '선택'은 늘 어떤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선택이기에, 이 조건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들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순 없기 때문이다. 즉,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자유"란 엄밀히는 환상에 불과한 셈이다.

    에라스무스를 반박하면서 루터는 {의지의 속박}에서 이렇게 말했다.

    I will here bring this little book to an end, though I am prepared if need be to carry the debate farther. However, I think quite enough has been done here to satisfy the godly and anyone who is willing to admit the truth without being obstinate. For if we believe it to be true that God foreknows and predestines all things, that he can neither be mistaken in his foreknowledge nor hindered in his predestination, and that nothing takes place but as he wills it (as reason itself is forced to admit), then on the testimony of reason itself there can't be any free choice in man or angel or any creature. --- The Bondage of the Will, Luther's Works, Vol 33.

    이제 이 작은 책자를 마무지 지을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논쟁을 더 진전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경건한 자들 그리고 고집 부리지 않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은 모든 것을 예지하고 예정한다는 점, 신의 예지에는 착오가 없고 그의 예정에는 방해가 있을 수 없으며, (이성에 이를 인정할 수 없듯) 신이 뜻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진리로 믿는다면, 이성 자체가 증거하는 바와 같이 사람이나 천사나 그 어떤 피조물에게 자유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 마르틴 루터, {의지의 속박} / 번역: 최광민

    ... But if God is robbed of the power and wisdom to elect, what will he be but the false idol, chance, at whose nod everything happens at random? And in the end it will come to this, that men are saved and damned without God’s knowledge, since he has not determined by his certain election who are to be saved and who damned, ...   --- The Bondage of the Will, Luther's Works, Vol 33.

    그러나 신에게 선택하는 능력과 지혜가 없다면 그는 머리 한번 끄덕여 모든게 무작위로 일어나게 하는 거짓 우상이나 우연의 존재가 될 뿐 아니겠는가?  (이 경우 / 필자 주) 신이 구원받을 사함과 저주받을 사람을 자신의 확실한 선택으로 결정하지 않기에, 결국 인간은 신의 지식이 없이도 구원 받거나 혹은 저주받게 될 것이다.  --- 마르틴 루터, {의지의 속박} / 번역: 최광민

    1546년 루터 사후, 다양한 신학적 성향을 가지게 된 루터교단의 신학자들은 마르틴 루터의 "이중예정"에 대한 관점을 완화해서 "단일예정론"으로 표준입장을 정했다. 이 설명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루터교단의 표준설명에 따르면 (1)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 죽었고 (2) 신 (성부)는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하며, (3) 구원받을 자들을 그의 의지로 선택한다. 이때 (4) 모든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아닌데, 아담/하와로 인한 원죄로 모든 인간은 이미 저주 아래 있기에 신의 은혜로 '선택'되지 않은 인간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신이 그들을 '구원받지 못할 인간들로' 예정해서가 아니라 이미 원죄로 인해 손상된 채로 남아있는 그들의 자유의지 때문이다. 

    이 설명에 대한 자연스런 질문은, "무얼 근거로 신은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는가?"가 될 것이다. 

    루터는 이를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즉, 이 문제에 관한 한 신은 숨겨진 신 (Deus Absconditus)이며, 인간은 신의 판단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이 선택에 관한 인간의 논쟁은 인간에게 무의미할 뿐더러, 아울러 허용되어 있지도 않다.



    # 칼뱅주의: 이중예정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종교개혁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 맞서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것은 아우구스티누스파 수도회 출신의 마르틴 루터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을 가장 예리하게 몰고나간 신학자는 스위스 개혁교회의 지도자 쟝 칼뱅이었다. 일반적으로 스위스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프로테스탄트 그룹들은 일반적으로 TULIP이라는 5대신조에 따른 칼뱅주의를 받아들인다.

    TULIP은 아래와 같다.
    • T - Total Depravity (전적타락)
    • U -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 L - Limited Atonement (제한적 속죄)
    • I - Irresistible Grace (거부할 수 없는 은혜)
    • P - Perseverance of the Saints (구원의 보존/견인)

    그러나 TULIP은 칼뱅 자신이라기 보다는 칼뱅의 견해를 다듬어 칼뱅주의를 완성한 테오도루스 베자가 완성시킨 견해이다. 논란은 있지만 사실상 칼뱅 자신은 Infralasarianism이라고 불리는 견해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반면, 베자의 TULIP은 Supralasarianism이라고 불린다.

    Infralapsarianism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정리될 수 있다.

    1. Create (창조)
    2. Permit Fall (인류의 타락을 허용)
    3. Elect some, pass over the rest (구원받을 자는 선택, 저주받을 자는 미정)
    4. Provide salvation for elect (선택한 자들에게만 한정된 구원 준비)
    5. Call elect to salvation (선택한 자들을 부름)

    한편 , 테오도루스 베자(Theodorus Beza)의 Supralasarianism 는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Elect some, reprobate rest (구원받을 자와 저주받을 자를 각각 선택)
    2. Create (창조)
    3. Permit Fall (인류의 타락을 허용)
    4. Provide salvation for elect (선택된 자에만 한정된 구원 준비)
    5. Call elect to salvation (선택한 자를 부름)

    두 견해 사이에는 아래의 두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개인이 태어나기 전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Infralasarianism과 Supralasarianism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Supralasarianism의 경우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중완전예정(Double complete predestination)의 입장을 더 취한다. 그것은 신이 천지를 창조하기 이 전부터 이미 신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구원받을 인류와 저주받을 인류를 신이 각각 예정해 두었다는 견해다. (infralasarianism의 경우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인간은 신이 그를 저주받을 자로 정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타락에 의한 원죄와 스스로의 죄로 인해 스스로 저주아래 놓이게 된다는 차이가 있다.)

    또 한가지의 결정적인 차이는 예정의 시점이다. infralasarianism은 예정의 시점이 아담의 타락 이후인 반면, supralasarianism의 경우 인류의 창조 이전에 이미 예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supralasarianism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타락 역시 신의 계획 속에 들어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타락한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 선택을 통한 구원을 통해 신은 자신의 절대적 의지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 이 신학적 견해의 핵심이다. 칼뱅주의는 이런 神의 절대적 의지를 절대적 주권/Absolute sovereignity라 부른다. 이를 통해 칼뱅과 베자는 신의 절대적 의지의 자유를 변호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칼뱅주의는 개혁교회, 장로파 교회, 그리고 침례교회 일부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는 16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신학자로 라이덴대학의 신학교수를 지냈다. 1581년에서 1586년 간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당시 칼뱅을 이어 스위스 개혁교회를 이끄는 테오도루스 베자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베자와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신학적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철학적 견해의 차이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와 베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은 없었던 듯 하다. 그 이유는 그가 1586년 네덜란드의 교구목사로 떠날때 베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 측에 좋은 추천장을 써주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서의 목회 중 그는 (예정론 논쟁에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로마서}의 해석을 두고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주류를 구성하던 베자의 노선을 따르는 정통파/강경파 칼뱅주의자(supralasarianism)들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603년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 자리로 옮기게 되었고, 거기서 정통 칼뱅주의자들과 더 큰 마찰을 빚기 시작했으며, 당시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국가의 감독 아래 있었으므로 마침내 국가가 개입하여 이단시비 조사가 진행되던 중 1609년 병사했다.

    아르미니우스가 분명히 베자의 supralasarianism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은 그의 사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엄청나게 동요시켰고, 교리논쟁으로 빚어진 분쟁은 내전 일보직전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동안 총회를 허가하지 않던 정부는 기존의 입장을 풀고 1618년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조사하기 위한 총회를 Dordrecht에서 열게 되었다. 이를 Synod of Dort라 한다. 이 총회에 영국을 비롯한 (지금과 달리 당시 영국국교회는 칼뱅주의를 따르고 있었다.) 전 유럽의 칼뱅주의자들이 한 곳에 모여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두고 토론했다.

    당시 칼뱅주의자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1611년에 개최된 로마카톨릭측의 반-종교개혁적 공회의인 트렌트 공회의가 준-펠라기우스적라 여겨진 형태의 예정론을 로마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로 채택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보았을때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로마카톨릭의 견해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도르트 총회는 무기명으로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이단으로 결의하고 그의 견해를 반박하는 5가지 요점을 모아 TULIP을 정통칼뱅주의로 선언했다. 한편 다음 세기로 넘어가면서 영국국교회는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17세기 영국국교회의 사제/목사로서 사후에 감리교회의 주창자로 추앙된 존 웨슬리는 다소 변형된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를 수용하게 되었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칼뱅주의, 특히 supralasarianism과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의 견해와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혼동하면 안된다. 펠라기우스주의는 기본적으로 원죄의 부정에 그 핵심이 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는 원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Create (창조)
    • Permit Fall (인류의 타락을 허용)
    • Provide salvation for all (모든 인류에게 충분한 구원 마련)
    • Call all to salvation (모든 인류를 부름)
    • Elect those who believe (믿는 자를 구원함)

    처음 두개의 관점은 칼뱅의 infralasarianism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세번째에서 다섯번째의 논제는 정통 칼뱅주의와 전혀 다르다. 우선 신은 이중예정하지 않는다. 신은 선택된 자만이 아닌 "모든" 인류를 부르고, 선택된 자 만이 아닌 "모든" 믿는 자는 모두 구원한다. 따라서 예정된 자만이 구원된다는 관점을 견지하는 칼뱅주의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것이다.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칼뱅주의에는 최소한 구원에 관한 한,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배재되어 있다. 칼뱅주의는 인류가 "전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신에게 돌아갈 어떤 자유의지도 남아있지 않다는 후기 아우구스티누스 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신을 믿고 거부하고는 신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의 "무조건적 선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은혜가 된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한번 구원을 예정한 신은 그 사람을 "끝까지 구원"하게 된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이다. 칼뱅주의의 이 견해는 아래에 기술한 TULIP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 T - Total Depravity (전적타락)
    • U -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 L - Limited Atonement (제한적 속죄)
    • I - Irresistible Grace (거부할 수 없는 은혜)
    • P - Perseverance of the Saints (구원의 보존/견인)

    하지만 아르미니우스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인류는 타락했지만 신에게 돌아갈 수 있으며 이때 신은 그에게 자유의지를 회복시켜 준다. 이 회복된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간은 다시 타락할 수 있고 혹은 신의 도움을 받는 계속된 성화 (sanctification)의 과정을 통해 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 즉, 자유의지가 회복된 후부터의 책임은 인간 본인에게 있다.

    칼뱅주의자들은 이 견해를 거부할 것이다. 만약 한번 구원받은 사람이 다시 타락한다면 (즉 구원을 잃는다면) 신의 영원한 예정은 불완전하거나 틀린 것이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럴 경우 구원은 신의 전적인 은혜라는 관점을 희석시키고 인간의 공덕을 개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일갈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인 영국국교회 사제로서 훗날 감리교단 창설의 뿌리가 되는 존 웨슬리는 아르미니우스의 예정론에 대체로 동조했지만, 몇가지 점에서 아르미니우스의 원래 신학과 이견을 보였다. 가령, 웨슬리는 "참" 기독교인도 배교할 수 있고 또 그 결과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보긴 했지만, (1) 신자가 다시 죄를 짓는 것 자체가 구원을 잃는 이유라고는 보지 않았고, 대신 지은 죄를 고백하지 않는 것과 명시적으로 배교를 천명하는 것이 구원을 영원히 상실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와는 달리 이 조차도 '최종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학은 '참 기독교인의 성화'라는 보다 실천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존 웨슬리의 유명한 설교인 {A Call to Backsliders}에서 인용한다.

    (4.) Secondly. It is a common thing for those who are thus sanctified, to believe they cannot fall; to suppose themselves "pillars in the temple of God, that shall go out no more." Nevertheless, we have seen some of the strongest of them, after a time, moved from their steadfastness. Sometimes suddenly, but oftener by slow degrees, they have yielded to temptation; and pride, or anger, or foolish desires have again sprung up in their hearts. Nay, sometimes they have utterly lost the life of God, and sin hath regained dominion over them.

    (5.) Yet, Thirdly, several of these, after being thoroughly sensible of their fall, and deeply ashamed before God, have been again filled with his love, and not only perfected therein, but stablished, strengthened, and settled. They have received the blessing they had before with abundant increase. Nay, it is remarkable, that many who had fallen either from justifying or from sanctifying grace, and so deeply fallen that they could hardly be ranked among the servants of God, have been restored, (but seldom till they had been shaken, as it were, over the mouth of hell,) and that very frequently in an instant, to all that they had lost. They have, at once, recovered both a consciousness of his favour, and the experience of the pure love of God. In one moment they received anew both remission of sins, and a lot among them that were sanctified. 

    (6.) But let not any man infer from this longsuffering of God, that he hath given any one a license to sin. Neither let any dare to continue in sin, because of these extraordinary instanced of divine mercy. This is the most desperate, the most irrational presumption, and leads to utter, irrecoverable destruction. In all my experience, I have not known one who fortified himself in sin by a presumption that God would save him at the last, that was not miserably disappointed, and suffered to die in his sins. To turn the grace of God into an encouragement to sin is the sure way to the nethermost hell!   

    --- John Wesley, Sermon #86 {A Call to Backsliders} / http://wesley.nnu.edu/john-wesley/the-sermons-of-john-wesley-1872-edition/sermon-86-a-call-to-backsliders/



    그렇다면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예정'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전술했던 아래의 {로마서} 문맥을 바탕으로 신은 한 사람이 미래에 신을 선택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미리 내다보고 예정하신 것이라고 설명하게 될 것이다. 즉, "예지를 통한 예정"이다. 그러므로 아르미니우스주의에서 예정과 예지의 관계는 "예지 예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반면, 칼뱅주의에서는 "예정 예지"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지식을 중간지식이라 부른다.

    "중간지식 (scientia media)"이란 원래 로마카톨릭 예수회 신학자인 페드로 데 폰세카와 루이스 데 몰리나가 발전시킨 신학개념이다. 이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라 전통적으로 이해되던 신 지식의 논리적 두 유형인 자연/필연적 지식 (scientia necessaria=신 자신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아는 지식으로 신과 독립적이고 불변, 가령 1+1 = 2)과 의지적 지식 (scientia voluntaria = 가능한 미래가 신의 의지 안에서 실체화되는 지식)에 덧붙여 이 둘 사이에 위치하는 제 3의 지식을 상정했다. 중간지식 개념에 따르면 구원을 자유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선택공간이 부여된다.  즉, 이 선택은 신 지식 바깥 영역에 있는 미래의 우연에 해당되며 (따라서 신과 독립적), 신은 이 중간지식의 공간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고 예지하고, 또 그에 따라 예정하게 된다 (따라서 신에게 종속적).

    보다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필연적 지식은 세상의 창조 이전에 의지적 지식에 앞선다. 신은 필연적 지식에 바탕해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이 창조되기 전,  전지전능한 창조주 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모든 피조물 (=인간)이 모든 가능한 경우의 선택에 있어서 자유롭게 취할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알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은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그의 의지와 가장 적합한 한 세계를 창조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한 인간의 "자유의지"로 "신을 선택"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을 할당한 것은 "신의 의지"다. 따라서 이 개념에는 "예정"와 "예지"가 서로 얽혀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한 인간이 자유의지로 취하는 한 선택은 사실은 세계의 구조 안에 이미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래 글을 읽어보자.

    ...(8:29) nam quos praescivit et praedestinavit conformes fieri imaginis Filii eius ut sit ipse primogenitus in multis fratribus (8:30) quos autem praedestinavit hos et vocavit et quos vocavit hos et iustificavit quos autem iustificavit illos et glorificavit...

    ...(8:29) 하느님은 미리 아신 사람들을 예정하여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정하셨고, 그래서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8:30) 하느님은 예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른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고, 의로운 자들을 영광스럽게 만드셨습니다....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에서 말하는 예정이 어떻게 다른지를 예화로 설명해 보겠다.

    우선 아래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항구의 선장이 마을의 젊은이들더러 즐기라며 돛단배를 한척 선물해 주고는, 바다를 즐기되 폭풍이 올때 바다 깊이 타고 나가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그 배는 폭풍을 견디기엔 충분하지 않은 배이기 때문. 그런데 젊은이들은 당부를 어기고 폭풍이 다가오는 바다로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 난파하게되고, 그들은 스스로 항구로 돌아올 수 없다. 이제 여기 폭풍치는 바다가 있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익사직전인데, 멀리서 구명선이 한 척 온다. 선장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 구명선을 직접 한 척 건조해 두었던 것인데, 이 비유에서 선장은 신, 돛단배는 아담, 젊은이는 인류, 구명선은 그리스도에 대응한다.

    여기서부터는 칼뱅주의적 관점과 아르미니우스의 관점이 조금 달라진다.

    대체적으로 칼뱅주의적 시각은 이렇다.

    구명선의 좌석수는 정해져 있고, 물에 빠진 모든 사람이 탈 충분한 공간이 없다. 각 좌석에는 선장이  직접 새긴 (그 근거를 구조자들은 구조당시에 잘 알 수는 없지만) 구해낼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선장은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구명튜브를 던진다. 힘이 없어서 뱃전으로 기어올라오지 못하면 잡아끌어서 배에 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배로 올라오면 사람들을 좌석에 밧줄로 꽁꽁 묶어서 배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게 한다. 나머지 표류자는 굳이 선장이 막지 않더라도 배에 오르려 하지 않다가 익사한다.

    대체로 아르미니우스주의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구명선은 물에 빠진 모든 사람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며, 배안의 구명투브도 모든 사람들을 건질 정도로 충분하다. 선장은 구명투브를 바다를 향해 무작위로 던진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구명선이 오기 전에 익사하지만, 누구든 구명투브를 잡는 사람은 구조될 수 있다. 선장은 사람들을 뱃가로 헤엄쳐온 사람을 물에서 끌어내 올리지만 이 구명선에는 개인에게 할당된 좌석은 따로 없다. 그래서 구명선 바닥을 꼭 붙잡고 선장과 함께 폭풍을 헤치고 항구로 돌아가야 한다. 혹 배멀미가 난다고,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며 제 의사로 바다로 다시 뛰어들겠다면 선장은 그들을 굳이 막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선장은 조난자 중 누가 튜브를 잡을 것이며 끝까지 배에 남게 될 것인지를 예지를 통해 미리 알고 있다.

    짧게 말해서, 칼뱅주의에서 말하는 예정은 자퇴/퇴학제도가 없는 입학정원제, 아르미니우스주의에서 말하는 예정은 자퇴/퇴학제도가 있는 졸업정원제라고 할 수 있다.




    # 칼뱅주의적 아르미니우스 주의, 혹은 아르미니우스주의적 칼뱅주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칼뱅주의 예정론이든 아르미니우스주의 예정론이든 구원이 오직 신의 "은혜"로부터 온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또한 두 견해에 따라 방식은 다르더라도 신이 "구원받을 자를 예정"한다는 점에서도 이견이 없다. 

    사실 각자의 견해는 각자의 견해 안에서는 꽤 타당하게 완결된 구조를 가진다. TULIP에 따른 른 칼뱅주의적 예정론은 "신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가 최대로 강조된 것이고, 아르미니우스적 예정론은 "은혜의 영접과 성화"가 최대로 강조된 것이다.

    이 두 견해가 신자의 실제 삶에서 어떤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가? 

    칼뱅주의자들은 아르미니우스의 견해가 "신의 부름에 대한 인간의 부응"이란 개념 때문에 "오직 신의 은혜에 의한 구원"이란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훼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통상적인 "자력구원"을 가르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르미니우스의 "성화"는 자력구원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숙한 믿음을 온전히 지켜가는 것"에 가깝다. 

     반면, 아르미니우스주의 측에서는 칼뱅주의의 견해가 신자의 "성화"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진정한 칼뱅주의가 성화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아르미니우스주의에서의 성화는 신자의 한 평생까지 "끝까지 이루어 가야 할 것"이라면 칼뱅주의에서의 성화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이자 "표징"으로서의 뉘앙스가 있을 뿐이다.

    실제 삶에서 두 입장이 초래하는 결과는 사실상 동일하거나 혹은 동일해야 한다.



    문제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기형적으로 상호취합된 경우다. 이 경우 각 견해를 지탱한 논리가 붕괴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이해가 되어 버린다.

    우선 고전적 아르미니우스주의의 견해를 다시 살펴보자.

    • 예지에 기초한 조건적 선택 (Conditional Election)
    • 인간의 개인적 믿음에 의해 제한되어지는 보편구원(Universal Atonement)
    • 신의 은총이 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연적 무능력 (Natural Inability)
    • 선행적 은총 (Pervenient Grace) 
    • 조건적 견인(Conditional Perseverence)

    도르트 회의에서 이를 반박해 결의된 칼뱅주의 TULIP 을 이용해 설명해 보자. 

    •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 제한속죄 (Limited atonement),
    • 저항할수 없는 은혜 (Irresistible grace),
    • 성도의 (무조건적) 견인 (Persevemace of the Saints)

    그런데 이 둘이 이렇게 기형적으로 결합된다면? 

    • 부분타락
    • 인간의 능동선택에 따른 신의 조건적 선택
    • 보편구원
    • 저항할수 있는 은혜 (Resistible grace),
    • 성도의 (무조건적) 견인 (Perseveace of the Saints)

    다른 조합도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이런 식의 이해가 오늘날 일반신자들 머리 속에 각인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의 본성은 심각하게 타락하긴 했지만, 구원을 선택할 자유의지는 살아있다. 그래서 이 자유의지로 복음을 듣고 내 의지로 믿음을 결단할 수 있고, 그때 신은 믿는 자를 모두 구원하고자 은총을 베푼다. 그런데 역시 내 의지로 은총을 받을 수도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신은 자신의 의지로 은총에 참여한 자를 구원하고, 이때 이 사람의 구원을 끝까지 보장한다."

    이런 식의 이해는 소위 '복음주의'권에 강한데, 아마도 오늘날 이들 복음주의자들이 "대중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런 편한 이해는 대중에게 매력이 있다. (1) 칼뱅주의처럼 매섭게 인간의 완전한 본성적 타락을 힐난하지 않으면서 (2) 개인의 능동성을 강조하고 (3) 모든 이를 사랑하는 신의 사랑이 드러나며 (4) 개인 스스로 믿음을 결단하고 그것으로 (5)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곧 (6) 영원한 구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조합하게 되면 정말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본인의 의지로 믿은' 것이니 본인 자신이 동시에 '구원의 확신'을 확실히 보증하는 보증인이 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칼뱅주의의 "성도의 견인"이란 개념이 전가의 보도로 덧붙여지면, 온갖 나쁜 짓을 한/하는 자라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로서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는 한 구원으로 가는 티켓을 잃어버릴 일이 없는 완전한 안전장치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 "악한 신자" 문제

    신의 예정과 그 예정에 따른 신자와 불신자의 미래에 대한 정교한 신학적 이론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반인들이 정말 묻고자 하는 것은 이런 논쟁 혹은 논증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은 (1) 악인으로 살다가 죽은 "신자"와 (2) "선하게 살았지만 불신자" 였던 이들의 운명일 것이다. 

    첫번째 질문 ('악인으로 살다 죽은 신자')에 대한 답은 이미 '예정론' 안에 나름의 답이 있다. 즉, 우리는 그런 사람이 정말로 회개하고 회심한 것인지, 구원을 받은 것인지 모른다. 그건 신과 본인 만이 아는 문제다. 아니 본인 조차 스스로에게 속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신만 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한 답이다. 

    그가 '외형적'으로 살아온 삶과 행위 (가령, 실제론 악인인데 선행과 구제는 열심히 했다거나) 는 아마도 그의 구원 '가능성'을 가늠하는데는 지표로서 일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의 구원 여부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없다. 

    https://archive.org/details/theologiagermani00fran

    종교개혁 1년 전인 1515년 마르틴 루터가 편찬한 저자 미상의 {독일신학, Theologia Germanica}는 구원받은 자의 외적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신의 의지와 일치하는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 믿음과 행위가 연동되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독일신학} 28장

    CHAPTER XXVIII

    How, after a Union with the Divine Will, the inward Man standeth immoveable, the while the outward Man is moved hither and thither.

    Now, when this union truly cometh to pass and becometh established, the inward man standeth henceforward immoveable in this union; and God suffereth the outward man to be moved hither and thither, from this to that, of such things as are necessary and right. So that the outward man saith in sincerity "I have no will to be or not to be, to live or die, to know or not to know, to do or to leave undone and the like; but I am ready for all that is to be, or ought to be, and obedient thereunto, whether I have to do or to suffer." And thus the outward man hath no Wherefore or purpose, but only to do his part to further the Eternal Will. For it is perceived of a truth, that the inward man shall stand immoveable, and that it is needful for the outward man to be moved. And if the inward man have any Wherefore in the actions of the outward man, he saith only that such things must be and ought to be, as are ordained by the Eternal Will. And where God Himself dwelleth in the man, it is thus; as we plainly see in Christ. Moreover, where there is this union, which is the offspring of a Divine light and dwelleth in its beams, there is no spiritual pride or irreverent spirit, but boundless humility, and a lowly broken heart; also an honest blameless walk, justice, peace, content, and all that is of virtue must needs be there. Where they are not, there is no right union, as we have said. For just as neither this thing nor that can bring about or further this union, so there is nothing which hath power to frustrate or hinder it, save the man himself with his self-will, that doeth him this great wrong. Of this be well assured.

    독일신학 28장

    진실로 이런 神과 이런 합일이 이뤄진다면, 내적인간은 그 합일 속에서 동요하지 않을 것이고, 신은 오직 외적인 인간을 이리저리로 움직일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며 또한 그리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외적인간은 확신에 차 이렇게 말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행동하는 것가 행동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과 같은 모든 것은 내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필연적인 일을 하거나 혹은 견디어 낼 따름이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외적인간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 아니라, 오직 영원한 의지를 향한 자신의 몫만을 수행할 뿐이다. 내적인간이 아닌 외적인간이 움직이도록 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적인간이 외적인간의 행동 속에서 어떤 의도를 가진다면, 그것 역시 영원한 의지에 복종하는 필연에 따르는 것이다. 신 자신이 인간 안에 있을때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에게서 본다.

    이런 합일이 신의 빛 속에서 이루어질때, 거기엔 어떤 영적인 교만도, 허황된 의지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한없는 겸손과 철저하게 낮추어진 마음, 흠잡을 수 없는 정직과 정의, 평화, 만족, 그리고 덕성이라 불릴 모든 것이 있게된다. 이런 덕성들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합일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합일을 돕거나 이끌어낼 수 없듯, 어떤 것도 이 합일을 방해하고 교란시킬 수 없다. 이런 과오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 뿐이다. 이 사실을 깊이 숙지해야 한다.

    - 편집 : 마르틴 루터 / 영어에서 중역: 최광민

    이것이 마르틴 루터가 이해한 믿음과 행위의 관계라 봐도 그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 선한 불신자의 운명

    누가 보더라도 "극악한 불신자"가 "영원"토록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와할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일단 제외하자.

    하지만 "선한 불신자"들의 운명은 어찌 되는가? 다소 유치하지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도 지옥가요?"란 식으로 종종 표현되는 이 질문이 비신자들 아니 신자들에게 조차 민감한 이유는 한국에 기독교란 종교가 도입된 시점이 로마카톨릭을 포함해 200년을 조금 넘겼고, 사실 2-3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조상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선 심판을 다룰 때 구원받지 못할 - 즉, 성 밖에 있게 될 - 부류의 사람들을 "개들 (악당 혹은 남창 /동성애자)과 마술쟁이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을 사랑하고 행하는 자"로 예수 본인이 선언한다. 하지만 이 명백한 '악인' 리스트에 들지 않는 선한 사람도 있지는 않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최소한 개(!)도 아니고 마술을 추종하지도 음행하지도 살인하지도 우상숭배하지도 정직한 사람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신약성서} 중 바울의 서신에서는 인간 모두 완전히 타락해서 의인은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이미 선언했고, 또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선한 불신자'가 명시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할 근거는 크지 않다.

    그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말하려면, 몇가지 추가 가정이 필요하다. 가령, (1) (보통 기독교 교부들이 구원받았으리라 믿었던) 구약성서의 위인들이나 (2) 유대인이 아닌 선한 이방인들이 신의 은혜에 따른 모종의 방법으로 예수의 도래에 대해 알고 "믿었다"란 식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3) 설령 예수의 도래를 알고나 믿지 않았더라도 신은 예수를 통한 구원예정자 리스트에 그들을 포함시켰다라고 고려하는 방식이다.



    가령, 로마카톨릭에서 말하는 '족장들의 림보 limbus patrum'가 이와 비슷한 개념일 수 있는데, 이 림보는 모세 이전 인물이거나 모세의 율법으로 충분히 구워을 받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구원받게 된 사람들이 일시로 머문 저승으로 간주된다. "아브라함의 품"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은 예수가 부활하기 전 저승에 내려가 복음을 선포하여 하여 구원받게 한 것으로 교부들은 이해했다. 여기에 이방인이 포함되었다고 교부들이 생각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로마카톨릭의 "비공식" 림보에는 "영아들의 림보 limbus infantium"가 있다. 이 경우는 세례를 받지 못해 원죄를 가진 채로 죽었기에 머무는 저승의 장소로, 이 장소가 구원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저승의 변방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아마 소위 말하는 '선한 불신자'가 갈 곳이 배정된다면 이런 식의 공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림보는 정교회나 프로테스탄트 모두 거부한다. 이유는 역시 성서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도저도 아닐 때의 해결책은 아예 "영원한 형벌" 혹은 "지옥"이란 개념 자체를 깔끔히 날려버리는 것이다.

    즉, 부활과 최후의 심판 후, 구원받지 못할 "모든 사람"들 - 선한 불신자와 악한 (불)신자 - 전원이 타르타로스 (불못) 에 던져져 "멸절"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영원한 형벌"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소멸"되어 버린다. 이 경우 '선한 불신자의 영원한 형벌' 이라든지 '사랑의 신이 영원한 형벌을 용인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딜레마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해결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서 이 '멸절론'에 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진짜 악당들과 '선한 불신자'가 왜 동일하게 '멸절' 당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있을 수 있지만, 어짜피 '멸절'되면 영혼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니 멸절 당하는 측이 억울해 할 겨를도 없게 된다.

    문제는 '멸절론'이 고대로부터도 간간히 제기되었었더라도 2천 년간 한번도 동/서방교회가 이를 인정한 적이 없었고, 19세기 제7일안식교회/재림교회 계열과 여호와의 증인 등 측에서 공식교리로 채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림보나 멸절론을 대안으로 고려하지 않는 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최대치의 가능성은 "선한 불신자"는 구원의 대상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가 정말 극악한 악인과 동일한 식의 형벌을 받지 않을지는 모른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냥 바램이라고나 할까.

    어짜피 구원의 문제는 신의 영역. 성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사안에 대해 가정과 추론을 들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성서적'일 지도 모르겠다. 




    # 맺음말

    예정론적 논설들의 문제(!)는 인간의 스케일에서 진행되는 실제적인 신앙과 삶의 문제를, "신의 관점"에서 무리해서 보려고 하는데서 오는 괴리에서 오는게 아닌가 싶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피조세계의 속성인 '시간'을 인간과 신에게 동시에 적용해서 동일한 시간축에서 신의 예정을 설명하는 경우다. 시간이 인간이 사는 이 피조세계의 속성일 경우 (이건 이미 AD 4세기 아리우스 논쟁 당시에도 정통파 측에서 개진했던 변증이다), 과거-현재-미래란 시간축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이해하는 '예정'과 이 시간축 밖에서 피조세계를 보는 신의 입장에서의 '예정'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인간에겐 시간축을 따르는 '구불구불한 구원의 도상'이 신의 눈으론 이미 확정된 '한 점'으로 수렴되어 보일 수도 있다. 

    핵심은? 

    우리는 신이 아니고, 신의 관점을 추측해 볼 수는 있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부분적이더라도 이해가 가능한 것은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시간축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인간의 논리로 해설하여 도그마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보기엔 실제 신앙에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 (혹은 나)의 구원을 위해 신이 계획한 정교한 "우주적 스케일"의 메카니즘을 '신의 관점'에서 알고 이해하는 것이 내 실제 삶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라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정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구원의 여부는 '확신'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 지 모르나 그 확신이 거짓 확신으로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신자의 삶에서 "예정론에 따른 구원의 확신 여부"는 불완전하고 어찌 보면 인간 수준의 이해로는 무의미까지 한 주제일지 모른다. 사실, '개인의 확신' 만큼이나 못믿을 게 없다.

    그 예정이 칼뱅주의적인 것이든 혹은 아르미니우스-웨슬리적인 것이든, 실제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신자의 실제 삶에 있어서 그런 신학적 논제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1) 바른 믿음을 지키며 (2) 정의롭고 선하게 끝까지 살아가는 것, 이 두가지 인간의 스케일에선 충분하지 않을까?

    1530년 마르틴 루터는 친구 (Jerome Weller) 가 구원의 확신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적어 보냈다.

    When the devil throws our sins up to us and declares we deserve death and hell, we ought to speak thus: ‘I admit I deserve death and hell. What of it? Does this mean I shall be sentenced to eternal damnation? By no means. For I know One who suffered and made satisfaction in my behalf. His name is Jesus Christ, the Son of God. Where he is, there I shall be also.

    악마가 우리가 지었던 죄들을 우리에게 던지며서 우리는 죽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선언할 때, 우리는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되네. "그래 나는 죽어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인정해. 그래서? 그렇다고 이게 우리가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란 걸 의미할까? 결코 아니지. 왜냐하면 나는 나를 대신해 고난받고 댓가를 치러준 분을 알고 있거든.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가 있는 곳에, 나도 있을 거야." 
     -- 번역: 최광민

    칼뱅은 그의 {기독교 교리요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But since Christ has been so imparted to you with all his benefits that all his things are made yours, that you are made a member of him, indeed one with him, his righteousness overwhelms your sins; his salvation wipes out your condemnation; with his worthiness he intercedes that your unworthiness may not come before God’s sight. Surely this is so: We ought not to separate Christ from ourselves or ourselves from him. Rather we ought to hold fast bravely with both hands to that fellowship by which he has bound himself to us (3.2.24).

    그의 구원은 당신의 모든 저주를 씻어내었다. 고귀한 그 분은 신 앞에 당신의 초라함이 드러날 때 이를 중재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에게서, 혹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서 분리해서는 않된다. 오히려 우리를 붙들어 주신 그분과의 연합을 두 손을 내밀어 당당히 붙들어야 한다. -- 번역: 최광민

    만족스러운 답변일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굳게 믿고 담담히 살아가는 것" - 이 단순한 것이야말로 인간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AD 1세기 중반, 소아시아를 마주보는 그리스 북부에 있던 필립피의 기독교도에게 보냈던 바울의 편지를 기억하자.

    Ὥστε ἀγαπητοί μου καθὼς πάντοτε ὑπηκούσατε μὴ ὡς ἐν τῇ παρουσίᾳ μου μόνον ἀλλὰ νῦν πολλῷ μᾶλλον ἐν τῇ ἀπουσίᾳ μου μετὰ φόβου καὶ τρόμου τὴν ἑαυτῶν σωτηρίαν κατεργάζεσθε·

    itaque carissimi mei sicut semper oboedistis non ut in praesentia mei tantum sed multo magis nunc in absentia mea cum metu et tremore vestram salutem operamini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Οὐχ ὅτι ἤδη ἔλαβον ἢ ἤδη τετελείωμαι διώκω δὲ εἰ καὶ καταλάβω ἐφ᾽ ᾧ καὶ κατελήφθην ὑπὸ τ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ἀδελφοί ἐγὼ ἐμαυτὸν οὐ λογίζομαι κατειληφέναι ἓν δέ τὰ μὲν ὀπίσω ἐπιλανθανόμενος τοῖς δὲ ἔμπροσθεν ἐπεκτεινόμενος κατὰ σκοπὸν διώκω εἰς τὸ βραβεῖον τῆς ἄνω κλήσεως τοῦ θεοῦ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non quod iam acceperim aut iam perfectus sim sequor autem si conprehendam in quo et conprehensus sum a Christo Iesu fratres ego me non arbitror conprehendisse unum autem quae quidem retro sunt obliviscens ad ea vero quae sunt in priora extendens me ad destinatum persequor ad bravium supernae vocationis Dei in Christo Iesu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AD 1세기의 기독교도에게 주는 충고로 이 말이 충분했다면, 지금도 역시 충분하지 않을까?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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