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예수 vs. 아우구스투스 #1: 최후의 만찬 vs 도데카테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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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철학

[© 최광민] 예수 vs. 아우구스투스 #1: 최후의 만찬 vs 도데카테오스

草人! 2021. 8. 4. 06:29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1-11-1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제목: 예수 vs 아우구스투스 #1: 최후의 만찬 vs 도데카테오스(12신의 만찬)?

순서
  1. 아우구스투스의 만찬, "도데카테오스"
  2. 예수의 "최후의 만찬"
  3. 유대교의 유월절 만찬, "페삭 세데르"

아래는 내 블로그를 링크한 어떤 위키의 한 내용이다. "혹자"가 내 블로그다. 아래 붉게 하이라이트 한 부분은 나의 이전 몇몇 포스팅에 대한 평가인데,  꽤 "부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링크: angelhalowiki

혹자는 위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한다.(http://kwangmin.egloos.com) 참고로, 이 이글루스의 주인은 학자가 아니라, 그냥 인터넷에서 인터넷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좀 재야의 끼가 보인다. 기독교와 이데아론의 관계를 무시한다던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던가, 엘과 엘로힘의 관계를 부정한다던가. 이데아론에서 파생된 그노시즘과 기독교의 연관성을 부정한다던가. 외경을 위경이라 무시하며, 정경 제일주의를 부르짖는다던가. 외경도 기독교에게있어서는 중요한 물건이며, 가경과 다르게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위의 평가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내가 기독교 "철학"과 플라톤"철학"의 "개념적 유사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받아들이며, 
  •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엘과 엘로힘의 관계에 대해 부정하지도 않으며, 
  • 기독교와 그노시즘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부인하지도 않으며, 
  •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정의에 따라 정경(Canon), 외경(Apocrypha)/제2정경(Deuterocannon), 그리고 위경(Pseudodephigraph)를 정확히 분리해서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건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아래는 위의 위키에 진술된 소위 "아우구스투스의 만찬"에 대한 부분이다. 완전히 역사적 사실을 착각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위의 참조 링크의 주장은 예수 신화가 완전히 단독적인 신화로서 만들어져있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후의 만찬'이 '황제의 만찬'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알겠지만, 기독교는 로마권 내에서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당시에 로마 문화권은 다신교 문화권이어서, 타민족과의 교류가 많았는데, 이것을 가지고 계속 기독교는 독자적인 문화임 ㅉㅉ하 고 투덜거리는 건 현 신화학자들과 종교학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대부분의 신화는 각 문화권과 정치권과 연계되어 탄생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신화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기독교는 여기저기 배척 받다보니, 세례자 요한을 편입시켜 만데안들의 힘을 빌려 보려고 한다거나, 황제의 만찬에서 영향을 받아 최후의 만찬과 같은 일화를 삽입시킨다나 하는 등의 모습을 성서 내에서 보여 주고 있다.

여태까지 이런 주장이 올라오지 않는 것은 기독교 문화는 독자적이다.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참조 링크를 확인해보라. 예수의 신화의 독자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최후의 만찬이 황제의 만찬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화적 요소라는 것은 밝히고 있지 않다. 황제의 만찬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인 아우구스투스 시대부터 존재했던 로마의 문화였다.[20]

이 가운데 만데안에 대해서는 독립된 글로 다루기로 하겠다.


그럼 우선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으로 들어가 보겠다. 만약 위에 언급된 황제의 만찬이 이 "아우구스투스의 연회"를 뜻하는 것이라면 아래의 글로 충분히 설명되리라 생각한다.


1. 아우구스투스의 만찬, "도데카테오스"

AD 1 세기 말에서 2세기 초반에 활동한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ca. 69/75 – 130년 경)는, 로마의 사실상의 초대 황제로 보아야 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에사르부터 도미티아누스까지 12명의 황제의 전기를 집필했다. 로마의 기사계급인 그는 때때로는 황제들에게 아첨하지만 동시에 황제들의 인간적 결격사유도 누락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사후에 신 (Divus, 주의: Deus가 아님)으로 추서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 대해 기록할 때, 아우구스투스의 약점에 대해서 적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래는 그에 대한 기록 가운데 하나다.


{De Vita Caesarum, 12 황제의 생애} - [Divus Augustus, 아우구스투스 편]   LXX.
https://archive.org/details/suetonius01suet
There was besides a private dinner of his, commonly called that of the "twelve gods," which was the subject of gossip. At this the guests appeared in the guise of gods and goddesses, while he himself was made up to represent Apollo, as was charged not merely in letters of Antonius, who spitefully gives the names of all the guests, but also in these anonymous lines, which everyone knows:


...아우구스투스가 개인적으로 주관한 저녁만찬은 흔히 "12신들 / 도데카테오스"라고 불렸는데, 이 파티는 구설수의 대상이 되었다. 이 파티에 참가한 손님들은 신과 여신으로 분장했고, 아우구스투스 본인은 아폴로 역할을 맡았다. 이 일들에 대한 비난은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경멸하며 열거한 안토니우스의 편지 뿐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익명의 글을 통해서도 비난되었다. --- 번역: 최광민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 대한 당대의 비판여론 가운데 한가지는 아우구스투스가 벌이던 화려한 사적 향연/만찬이다. 그리스어 별칭으로 "Dodekatheos (12신들)"라 불리던 이 파티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초대한 손님들은 올림포스의 12신으로 분장하는데, 평소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던 아우구스투스 스스로는 (자기 가문의 수호신인) 아폴론으로 분장하고 12명의 파티 참석자는 음탕하고 우스꽝스럽게 신들을 연기했다.

As soon as that table of rascals had secured a choragus [the choragus at Athens had charge of the costuming and stage setting of plays], and Mallia [according to some, the choragus; others regard it as the name of a place] saw six gods and six goddesses, while Caesar impiously plays the false role of Apollo and feasts amid novel debaucheries of the gods; then all the deities turned their faces from the earth and Jupiter himself fled from his golden throne.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파티벽은 젊은 시절부터 이어졌는데, 이 문제는 로마의 상당한 스캔들이 되어 옥타비아누스의 숙적이기도 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비롯해 일반 로마인들의 비난을 샀다. 수에토니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집필 당시까지도 전해지는 로마인들의 비난을 적었다.

아래와 같다.

The scandal of this banquet was the greater because of dearth and famine in the land at the time, and on the following day there was an outcry that the gods had eaten all the grain and that Caesar was in truth Apollo, but Apollo the Tormentor, a surname under which the god was worshipped in one part of the city.

이 연회와 관련된 스캔들은 심각한 것이었다. 기근과 기아로 고통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날, 신들이 땅의 모든 곡식을 먹어치웠고, 황제는 진정 아폴로라는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아폴로"이기는 하되, 도시 다른 곳에서 숭배되던 "아폴로 토르멘토르 (=고통의 아폴로)"라는 것이었다... --- 번역: 최광민

수에토니우스는 이 비밀향연이 큰 스캔들이 되었던 또 다른 이유로, 당시에 기근이 들어서 로마가 식량난에 시달리던 와중이었던 점을 들었다. 아울러 아우구스투스는 고급가구와 코린토스 특산 청동제품에 대한 수집벽까지 가지고 있었다.

He was criticized too as over fond of costly furniture and Corinthian bronzes and as given to gaming. Indeed, as early as the time of the proscriptions there was written on his statue--- "In silver once my father dealt, now in Corinthians I" [Corinthiarius: coined in jest on the analogy of argentarius: used in inscriptions of slaves in charge of the vasa Corinthia], since it was believed that he caused some men to be entered in the list of the proscribed because of their Corinthian vases. Later, during the Sicilian war, this epigram was current: "After he has twice been beaten at sea and lost his ships, he plays at dice all the time, in the hope of winning one victory."

LXXI. Of these charges or slanders (whichever we may call them) he easily refuted that for unnatural vice by the purity of his life at the time and afterwards; so too the odium of extravagance by the fact that when he took Alexandria, he kept none of the furniture of the palace for himself except a single agate cup, and presently melted down all the golden vessels intended for everyday use.

아우구스투스의 또 다른 문제는 (위의 파티벽과 관련된) 도박과 여자를 밝힌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젊은 처자를 공급하는 채홍사 역할에는 그의 심복 뿐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와 수십 년을 행복하게 해로한 그의 부인 리비아도 개입되어 있을 정도였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이다.

He could not dispose of the charge of lustfulness and they say that even in his later years he was fond of deflowering maidens, who were brought together for him from all quarters, even by his own wife. He did not in the least shrink from a reputation for gaming, and played frankly and openly for recreation, even when he was well on in years, not only in the month of December [when the freedom of the Saturnalia allowed it], but on other holidays as well, and on working days too......

로마의 만찬연회에 관한 책과 아우구스투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두 권의 책을 권한다.


Katherine M. D. Dunbabin, {The Roman Banquet: Images of Conviviality}


Anthony Everitt, {Augustus: The Life of Rome's First Emperor}

과연 남녀 12명이 참석한 아우구스투스의 퇴폐적인 이 가장만찬이 기독교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의 (약 13명이 참석한) "최후의 만찬"의 모티프가 되었을까?

{마태/마태오 복음서} 가운데서 이 장면을 인용해 보자.


2. 예수의 "최후의 만찬"

{마태오 복음서} 제 26장 17-30절, {공동번역}에서 인용한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장면은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한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어디에다 차렸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는 이렇게 일러주셨다. "성안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을 터이니 그 사람더러 '우리 선생님께서 자기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며 제자들과 함께 댁에서 과월절을 지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과월절 준비를 하였다. 20.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아 21. 같이 음식을 나누시면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몹시 걱정이 되어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사람이 바로 나를 배반할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죽음의 길로 가겠지만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화를 입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 25. 그 때에 예수를 배반한 유다도 나서서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 하고 묻자, 예수께서 "그것은 네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6.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27.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28.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29. 잘 들어두어라.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

이 장면에서 두 세대 전에 로마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즐기던 "도데카테오스"를 연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예수 이전부터 현대까지 유대인들이 유월절/과월절에 거행하는 페삭 세데르 (Pesach Seder) 식사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식은 고대의 원형으로부터 큰 변형없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3. 유대교의 유월절/과월절 만찬, "페삭 세데르"

페삭 세데르는 히브리력 니산월 14일에 거행되는 과월절/유월절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적 만찬이다. 이것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고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염원하는 일련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순서로 진행된다. 세데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음식은 (1) 네 잔의 포도주/즙, (2) 누룩을 뺀 빵 (맛짜), (3) 쓴 야채 (마로르) 등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Kadeish (축복과 첫번째 포도주잔)
  2. Ur'chatz (손 씻기)
  3. Karpas (애피타이저)
  4. Yachatz (탁자에 세 겹으로 쌓은 세개의 빵(matzah) 중에 가운데 것을 쪼갬)
  5. Magid (하가다 / 이집트 탈출기 이야기 및 두번째 컵)
  6. Rohtzah (손 씻기)
  7. Motzi (축복)
  8. Matzah (기도 후 빵(맛짜)을 먹음)
  9. Maror (쓴 채소를 먹음)
  10. Koreich (채소를 두개의 맛짜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듬)
  11. Shulchan Orech (식사)
  12. Tzafun (eating of the afikoman)
  13. Bareich (식사 후 축도) : Kos Shlishi (세번째 잔)
  14. Hallel (찬양 및 네번째 잔)
  15. Nirtzah (기도 및 폐회)

물론 복음서는 위의 순서를 모두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빵과 포도주 시식의 분리 및 축도, 그리고 폐회시 찬양을 부르고 해산하는 것 등 주요골격은 일치한다. 복음서의 작성자가 페삭 세데르를 염두하고 저 장면을 기록한 것을 의심할 이유는 그다지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를 유월절 희생양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복음서 작성자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그 모티프를 찾기위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멀리 갈 이유가 없다.

판단은 각자의 몫.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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