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어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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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철학

[© 최광민] 어떤 사랑

草人! 2021. 12. 4. 15:39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11-12-07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 최광민] 어떤 사랑


# 사랑 0


주얼리, {니가 참 좋아}

온종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틈만 나면 니가 생각나
언제부터 내 안에 살았니 
참 많이 웃게 돼 너 때문에

어느새 너의 모든 것들이 편해지나봐
부드러운 미소도 나지막한 목소리도

YOU 아직은 얘기할 수 없지만
나 있잖아 니가 정말 좋아

사랑이라 말하긴 어설플지 몰라도
아주 솔직히 그냥 니가 참 좋아

친구들 속에 너와 함께일 때면  
조심스레 행복해지고
어쩌다가 니 옆에 앉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드는 걸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괜스레 발끝만 보게 되고

조금씩 내 마음이 너에게 가고 있는 걸
이 세상에 두사람 너랑 나만 몰랐나봐

YOU 얼마나 잘 할지는 몰라도
나 니 곁에 서고 싶어 정말

하루하루 점점 더 커져가는 이 느낌
다른 말보다 그냥 니가 참 좋아

손잡을 때는 어떨까 
우리 둘이 입맞춘다면

YOU 아직은 얘기할 수 없지만
나 있잖아 니가 정말 좋아

사랑이라 말하긴 어설플지 몰라도
아주 솔직히 그냥 니가 참 좋아

"니가 좋다" 는 감정에, 깊은 해석 따위는 필요없다. "깊지" 않다해서, 그것이 또 나쁜 것도 아니다.




# 사랑 1

바울이 코린토스의 기독교도들에게 보낸 한 편지에 등장하는 "사랑"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아가페, agape'에서 번역된 말이며, 라틴어 '카리타스, Caritas'와 다시 여기서 파생된 영어 '채리티, charity'가 여기에 대응한다. 물론 이 단어는 관용적으로 남녀의 사랑까지를 포함할 수도 있으므로, 이 편지의 내용을 담은 곡이 결혼식 축가로 사용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더 큰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 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또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줄 지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들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영원할 것이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읍니다.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모두 버렸듯,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불완전하게 알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그때에는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 편지에 등장하는 "아가페"는 나긋나긋한 솜사탕과 같은 낭만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영문 모르는 "격정의 폭주" 역시 아니란 점이다. {신약성서} 속에서 '아가페'는 자신에 대한 부단한 성찰과 상대에 대한 따뜻한 신뢰와 절망에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예수가, 베드로가, 요한이, 그리고 바울이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의 용례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희생,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는 장렬함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부드럽고 잔잔한 동시에 또한 강인하고 뜨거운 것이며, 가벼운 감정의 노리개가 되기에는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벅차고, 너무나 뭉클한 것이며, 또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한국어 개역개정, {요한복음} 13장

그런데 예수는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랑하라"는 "명령/계명"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15장에서 이어 설명했다.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예수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되는 조건은 그의 명령, 즉 "서로 사랑하라"란 "명령"이었다.

그러므로 사랑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또한 그를 사랑하려는
"의지"가 아니겠는가?




# 사랑 2

2010년, 로마카톨릭 교황이자 "로마 주교"인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영국국교회 수장 "캔터베리 주교" Rowan Williams를 방문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왔을 때, 캔터베리 측은 영국 르네상스 작곡가 토마스 탈리스의 {If ye love me keep my commandment}을 선곡했다.

그 가사는 {요한복음서}에서 왔다.

If ye love me, keep my commandments,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bide with you for ever, ev’n the spirit of truth.

너희가(=제자들)가 나(=예수)를 사랑한다면, 내 명령/계명을 지켜라.
(그러면) 나는 내 아버지께 구할 것이고,
아버지는 너희에게 또 다른 위로자 (=성령)을 보낼 것이다.
그(=위로자)는 너희와 영원히 함께할 진리의 영이다.

이 선곡은 여러모로 아주 신중히 고려된 것 같다.

토마스 탈리스는 영국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직후부터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여왕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와 영국국교회를 위해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는 영국국교회로 개종하지 않고 다른 궁정 작곡가인 William Byrd와 함께 로마카톨릭에 끝까지 남았다. 위에 언급된 군주 중 매리 1세만이 로마카톨릭이었다. 따라서 평생 로마교회에 대한 지조를 지킨 음악가의 작품을 선곡한 것은 방문한 "로마주교"에 대한 각별한 배려라고 하겠다.

한편, 로마 "주교"의 방문을 환영하며 캔터베리 "주교"는 로마교회와 영국교회가 동등하다고 암시적으로 강조하는 한편, 영국국교회 역사에서 몹시 껄끄러운 인물이자 아킬레스건인 존 헨리 뉴먼 추기경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그것은 베네딕토 16세의 영국 방문 목적이 버밍햄에서 뉴먼의 시복식을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http://www.archbishopofcanterbury.org/articles.php/946/the-fraternal-visit-of-pope-benedict-xvi-to-archbishop-rowan-williams

Address to a Meeting of Anglican and Roman Catholic Diocesan Bishops of England, Scotland and Wales on the occasion of The Fraternal Visit of His Holiness Pope Benedict XVI, Great Hall, Lambeth Palace, 17 September 2010

Your Holiness, brother bishops,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It is a particular pleasure that on this historic occasion we are able to come together as bishops of the Roman Catholic and Anglican churches in this country to greet you, Your Holiness, during a visit which we all hope will be of significance both to the Church of Christ and to British society.  Your consistent and penetrating analysis of the state of European society in general has been a major contribution to public debate on the relations between Church and culture, and we gratefully acknowledge our debt in this respect.

Our task as bishops is to preach the Gospel and shepherd the flock of Christ; and this includes the responsibility not only to feed but also to protect it from harm. Today, this involves a readiness to respond to the various trends in our cultural environment that seek to present Christian faith as both an obstacle to human freedom and a scandal to human intellect. We need to be clear that the Gospel of the new creation in Jesus Christ is the door through which we enter into true liberty and true understanding: we are made free to be human as God intends us to be human; we are given the illumination that helps us see one another and all created things in the light of divine love and intelligence. As you said in your Inaugural Mass in 2005, recalling your predecessor's first words as pope, Christ takes away nothing "that pertains to human freedom or dignity or to the building of a just society.  ...  If we let Christ into our lives we lose absolutely nothing of what makes life free, beautiful and great.  Only in his friendship is the great potential of human existence revealed." [Inaugural Homily, Rome, 24 April 2005]

Our presence together as British bishops here today is a sign of the way in which, in this country, we see our task as one and indivisible.  The International Anglican-Roman Catholic Commission on Unity and Mission has set before us all the vital importance of our common calling as bishops to be agents of mission.  Our fervent prayer is that this visit will give us fresh energy and vision for working together in this context in the name of what a great Roman Catholic thinker of the last century called 'true humanism' – a passionate commitment to the dignity of all human beings,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life, and to a resistance to every tyranny that threatens to stifle or deny the place of the transcendent in human affairs.

We do not as churches seek political power or control, or the dominance of Christian faith in the public sphere;  but the opportunity to testify, to argue, sometimes to protest, sometimes to affirm – to play our part in the public debates of our societies.  And we shall, of course, be effective not when we have mustered enough political leverage to get our way but when we have persuaded our neighbours that the life of faith is a life well lived and joyfully lived.

In other words, we shall be effective defenders or proclaimers of our faith when we can show what a holy life looks like, a life in which the joy of God is transparently present. And this means that our ministry together as bishops across the still-surviving boundaries of our confessions is not only a search for how we best act together in the public arena;  it is a quest together for holiness and transparency to God, a search for ways in which we may help each other to grow in the life of the Holy Spirit. As you have said, Your Holiness, "a joint fundamental testimony of faith ought to be given before a world which is torn by doubts and shaken by fears."  ['Luther and the Unity of the Churches', 1983]

In 1845, when John Henry Newman finally decided that he must follow his conscience and seek his future in serving God in communion with the See of Rome, one of his most intimate Anglican friends and allies, the priest Edward Bouverie Pusey, whose memory the Church of England marked in its liturgical calendar yesterday, wrote a moving meditation on this "parting of friends" in which he said of the separation between Anglicans and Roman Catholics:  "it is what is unholy on both sides that keeps us apart".

That should not surprise us: holiness is at its simplest fellowship with Christ; and when that fellowship with Christ is brought to maturity, so is our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s bishops, we are servants of the unity of Christ's people, Christ's one Body. And, meeting as we do as bishops of separated church communities, we must all feel that each of our own ministries is made less by the fact of our dividedness, a very real but imperfect communion. Perhaps we shall not quickly overcome the remaining obstacles to full, restored communion; but no obstacles stand in the way of our seeking, as a matter of joyful obedience to the Lord, more ways in which to build up one another in holiness by prayer and public celebration together, by closer friendship, and by growing together both in the challenging work of service for all whom Christ loves, and mission to all God has made.

May this historic visit be for all of us a special time of grace and of growth in our shared calling, as you, Your Holiness, bring us the word of the Gospel afresh.

© Rowan Williams 2010



19세기 영국국교회 내 고교회파 운동인 옥스포드 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영국국교회의 주교였던 뉴먼은, 1846년 비밀리에 바티칸을 방문해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고 나중에 영국추기경이 되었다. 당시 이 사건을 로마에 대한 투항으로 받아들인 영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아 뉴먼에게 크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고교회파의) 성공회가 자랑하는 고풍스런 예전과 제도가 사실상 옥스포드 운동의 결과물이니, 이는 다소 아이러니하다고나 할까?

각설하고,

"로마 주교"와 "캔터베리 주교"가 입장할 때 탈리스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성가대 앞에는 붉은 화환이 둘린 {the tomb of The Unknown Warrior,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이 아래에는 세계 제 1차대전이 종전하는 날 프랑스에서 건너 온 신원불명의 영국군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바닥에 묻힌 다른 고인들의 유해는 방문객의 발에 끊임없이 밟히지만, 오직 이 비문 아래 있는 사람들 만은 아무도 밟을 수 없다.

BENEATH THIS STONE RESTS THE BODY
OF A BRITISH WARRIOR
UNKNOWN BY NAME OR RANK
BROUGHT FROM FRANCE TO LIE AMONG
THE MOST ILLUSTRIOUS OF THE LAND
AND BURIED HERE ON ARMISTICE DAY
11 NOV: 1920, IN THE PRESENCE OF
HIS MAJESTY KING GEORGE V
HIS MINISTERS OF STATE
THE CHIEFS OF HIS FORCES
AND A VAST CONCOURSE OF THE NATION

THUS ARE COMMEMORATED THE MANY
MULTITUDES WHO DURING THE GREAT
WAR OF 1914 – 1918 GAVE THE MOST THAT
MAN CAN GIVE LIFE ITSELF
FOR GOD
FOR KING AND COUNTRY
FOR LOVED ONES HOME AND EMPIRE
FOR THE SACRED CAUSE OF JUSTICE AND
THE FREEDOM OF THE WORLD

THEY BURIED HIM AMONG THE KINGS BECAUSE HE
HAD DONE GOOD TOWARD GOD AND TOWARD
HIS HOUSE

그리고 비석을 둘러싸고 다음의 구절이 적혀있다.

위: THE LORD KNOWETH THEM THAT ARE HIS
왼쪽: UNKNOWN AND YET WELL KNOWN, DYING AND BEHOLD WE LIVE
아래: IN CHRIST SHALL ALL BE MADE ALIVE
오른쪽: GREATER LOVE HATH NO MAN THAN THIS

어쩌면, "독일" 출신이자 어린시절 (반 강제이긴 했지만) "히틀러 유겐트"였던 "로마"주교를 맞이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장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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