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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Kwangmin Choi, 2005-11-0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양심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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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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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
- Just Don't Do it
# 양심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동명영화 {그린마일}.
The Green Mile (1999)
이 소설/영화를 감상하는 포인트는 여러가지다. 스티븐 킹 류의 다소 허황된 판타지물이라고도 볼 수 있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라고 일침을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 (그리고 소설)의 감상포인트는 그 소설/영화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를 잡아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 메시지는 "양심 앞에 선 개인의 결정의지"다.
무고한 사형수 존 코피를 몰래 탈옥시키려고 할때 소설/영화 속의 화자인 교도관이자 사형집행인이 존에게 묻는 아래 대사에 이 소설/영화의 메시지는 모두 압축되어 들어있다.
소설/영화 속에서 곧 코피의 사형집행인이 될 교도관은 존 코피에게 묻는다.
언젠가 변호사이신 대학써클 선배께서 '법조적 양심'을 이렇게 설명하신 적이 있다.
이 문장의 핵심은 아마도
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문장이지만, 나의 양심은 (그리고 윤리적 상식은) "만일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법조적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법관은 도덕적 양심에 따라 법복을 벗는 것이 낫다"라고 자꾸 고쳐 말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법리적 양심'이라는 이 논리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법리적' 면죄부를 주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소설/영화 속에서 곧 코피의 사형집행인이 될 교도관은 존 코피에게 묻는다.
"What am I going to say if I end up standing in front of God the father Almighty and he ask me to explain why I did it? That it was my job? my job?"
"심판의 날, 전능한 신께서 나더러 그때 왜 무고한 사람을 죽였는지 한번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해? '제 직업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답하란 말이야? / 번역: 최광민
--- Stephen King {Green Mile}, Chapter 6 : Coffey on the Mile
언젠가 변호사이신 대학써클 선배께서 '법조적 양심'을 이렇게 설명하신 적이 있다.
"... 헌법에 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란 것은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는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 개인의 소신, 철학, 인생관과 같은 의미 또는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쓰이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공정성, 합리성에 기한 법해석을 직무로 하는 자의 법조적 양심, 소위 객관적 법리적 양심이라는 것으로서, 만일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법조적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법관은 법리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문장의 핵심은 아마도
"만일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법조적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법관은 법조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문장이지만, 나의 양심은 (그리고 윤리적 상식은) "만일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법조적 양심이 충돌하는 경우, 법관은 도덕적 양심에 따라 법복을 벗는 것이 낫다"라고 자꾸 고쳐 말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법리적 양심'이라는 이 논리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법리적' 면죄부를 주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잘못된 법인 줄 알면서 그 법에 따라 사람들을 잡아들인 검사나, 도덕적 양심에 꺼리면서도 잘못된 법을 법조문의 논리에 따라 집행한 판사에게 법리상 죄를 묻기는 힘들다. 전쟁 중에 작전지역의 양민을 살해하도록 장교로부터 명령받아 실행한 사병들은 "복무신조에 따라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한마디로 자신들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한다. 인종청소 같은 반인륜적 행위가 아닌 한 군 법정 역시 사병들에게는 (대체로) 죄를 묻지 않는다. 군법 상 하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가 세뇌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도록 우리가 세뇌된 것은 아닐까?
이럴 경우, 소위 '법(조)적 양심'은 '양심'이란 꼬리표를 달았을 뿐, 실제로는 법에 우선하는 상식적 윤리를 피하기 위한 한낱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형법이든, 민법이든, 군형법이든 그것은 신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법들은 인간에 의한 법일 뿐이다. {그린마일} 속에 언급된 신이 교도관에게 행동에 대한 설명을 요청할 때, 그 요청은 그가 살아있을때 적용되던 법조항을 캐묻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 양심을 설명해 보라는 것일테다. 물론 정의로운 신이 없다면, 혹은 (카르마 시스템와 유사한) 사후의 상벌보상체계가 없다면 이런 생각자체가 어짜피 다 공염불이겠지만.
개인적 양심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양심과 다른 사람의 양심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보편적인 형태의 양심, 혹은 도덕적 규준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저 단순하게 판단한다. 법은 모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일 수도 없고, 모든 것이어서도 안된다.
법보다 양심이 우선한다.
만약 내가 굳게 믿고 살았던 그 무엇이 사실은 틀린 것이었다고 장차 신이 알려준다면, 잘못을 사실로 믿고 살았던 내겐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러리라고 특별히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스스로 변호의 기회는 주어질 것이고 그 변호가 정당하다면 다소 간의 용서는 있으리라고는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모든 행동은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며, 나는 내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늘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 Just Don't Do it
드라마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한 에피소드 (Season1, Ep.33)에서 아다마 사령관은 1300여의 생존자를 수용한 민간인 우주선이 싸일론에게 나포된 것으로 간주해 파괴하도록 편대장인 아들 리에게 명령하고, 아들은 머뭇거리다 결국 명령에 따른다.
개인적 양심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양심과 다른 사람의 양심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보편적인 형태의 양심, 혹은 도덕적 규준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저 단순하게 판단한다. 법은 모든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일 수도 없고, 모든 것이어서도 안된다.
법보다 양심이 우선한다.
12 ὅσοι γὰρ ἀνόμως ἥμαρτον, ἀνόμως καὶ ἀπολοῦνται· καὶ ὅσοι ἐν νόμῳ ἥμαρτον, διὰ νόμου κριθήσονται·13 οὐ γὰρ οἱ ἀκροαταὶ νόμου δίκαιοι παρὰ [τῶ] θεῶ, ἀλλ᾽ οἱ ποιηταὶ νόμου δικαιωθήσονται.14 ὅταν γὰρ ἔθνη τὰ μὴ νόμον ἔχοντα φύσει τὰ τοῦ νόμου ποιῶσιν, οὖτοι νόμον μὴ ἔχοντες ἑαυτοῖς εἰσιν νόμος·15 οἵτινες ἐνδείκνυνται τὸ ἔργον τοῦ νόμου γραπτὸν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αὐτῶν, συμμαρτυρούσης αὐτῶν τῆς συνειδήσεως καὶ μεταξὺ ἀλλήλων τῶν λογισμῶν κατηγορούντων ἢ καὶ ἀπολογουμένων,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 바울, {로마서} 2장 / 한국어 새번역
만약 내가 굳게 믿고 살았던 그 무엇이 사실은 틀린 것이었다고 장차 신이 알려준다면, 잘못을 사실로 믿고 살았던 내겐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을까? 나는 그러리라고 특별히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스스로 변호의 기회는 주어질 것이고 그 변호가 정당하다면 다소 간의 용서는 있으리라고는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모든 행동은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며, 나는 내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늘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 Just Don't Do it
드라마 {배틀스타 갈락티카}의 한 에피소드 (Season1, Ep.33)에서 아다마 사령관은 1300여의 생존자를 수용한 민간인 우주선이 싸일론에게 나포된 것으로 간주해 파괴하도록 편대장인 아들 리에게 명령하고, 아들은 머뭇거리다 결국 명령에 따른다.
Battlestar Galactica, Season 1 (source: Wikimedia Commons)
아버지는 작전수행 후 죄책감에 빠진 아들에게 위로차 말을 건넨다.
[Adama] I gave you the order. It was my responsibility
[아다마] | 명령을 내린 건 나다. 그러니 내 책임이다.
아들은 답한다.
[Lee] I pulled the trigger. That's mine.
[리] 방아쇠를 당긴 건 접니다. 따라서 제 책임입니다.
이 지점에서 아버지는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여기 자신은 "법리적" 양심에 따라 떳떳하며, 또 주어진 근거에 의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지난 행동에 한점 부끄럼없다고 말하는 독재시절의 공안검사가 있다고 하자. 여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군인 최고의 미덕이며 따라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적과의 내통 의심이가는 민간인을 전쟁 중 살상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한 '성실한' 사병이 있다고 하자. 실제로 그는 한 치의 의심없이 그렇게 믿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그의 행동은 '개인적인 윤리적 양심'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양심은 개인에게 개별적인 자의적 의식이 아니고 또한 자위적 의식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고려할 때 비로소 양심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양심이란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부분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맡겨진 일에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그들의 "진정성" 역시 전혀 면죄부가 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행동의 '진정성'은 물론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 행동의 옳고그름의 사실여부는 소위 "진정성"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진정성을 가지는" 혹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에 - 특별히 '옳은 일'에 - 최선을 다하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돌팔이 의사는,
자신이 성심껏 돌보는 친구를 죽이는 법이다.
Just Don't Do It.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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