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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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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예수 vs. 천체: 예수는 점성학/천문학을 모티프로 했을까?
순서
- 방문자 ("판플들") 포럼 질문에 대한 답변
- 천체를 모티프로 한 종교: 미트라스교
- 예수와 물고기자리
- 예수의 상징 중 하나인 "익투스"는 물고기 자리를 표현한 것인가?
- 예수는 물고기 자리의 시대를 열었나?
- 오병이어의 기적은 천문현상을 신화로 바꾼 것이다?
-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고 히브리어로 말하면 천궁도가 된다 그말인 즉슨 예수는 천문과 관련이 있다?
- 예수와 태양 / 황도12궁
- 예수는 새로운 태양신이다
- 성경에 나오는 "나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등을 이용해 예수=태양인가?
- 예수가 죽은것은 동지에 태양이 3일간 떠 있을 때 사수자리가 태양을 죽인것을 의인화 한 것이다?(사수자리의 활 부분이 태양을 향하고 있었는가?)
-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은 물에 비춰진 태양광을 의인화 한 것이다?
-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것은 태양과 관련이 있다?
- 예수 성화에 있는 십자모양의 후광은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 켈트 십자가는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 야훼는 북극성 -수는 북두칠성이며,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생명나무 12그루는 황도12궁과 은하수와 관련이 있으며, 생명수는 신의 보좌인 북극성에서 흘러나온다?
- 12제자와 황도12궁의 관련성?
- 예수와 오리온
-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에 대한 비유 중 오른손에 입곱 별을 들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 "요한은 밤하늘을 보았고 요한의 기준에서 오른쪽은 오리온 자리 기준에서 왼쪽이고 오리온 의 왼쪽은 7개의 별을 들고 있고 또한 많은 것이 맞아 떨어지므로 예수는 오리온자리다?
- 기독교에서 오직 예수만 말하는 이유는 플레이아메데스?안드로메다?가 천국인데 그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오리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 오리온 자리의 벨트를 의미하는 별 3개는 동박박사이다?
- 예수는 금성이다?
- 맺음말
# 방문자 ("판플들") 포럼 질문에 대한 답변
기왕이면 그 싸이트에서 주장하는 바와 본인이 이해하시는 바를 함께 적어주시면 좋았겠지만, 일단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천체를 모티프로 하는 종교의 예: 미트라스교
우선 분명히 정리해 둘 점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데, 성서는
"천체의 징조를 읽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기 보다는 (1) 천체를 신으로 섬기거나
(2) 하늘의 "징조"를 "히브리인들의 신 야훼"가 아닌 신들이 보낸 것으로 보는
것을 금지했다고 봐야한다.
가령,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눈을 하늘로 향하여 해와 달과 별 등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를 보고 그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만천하 다른 민족들에게(나) 주어 섬기게 하신 것들이다."라고 경고했고, 한편, 소선지서 {요엘}에서 야훼는 "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 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 라고 말한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하고 또 {사도행전}에서의 베드로 역시 위의 {요엘}을 인용한다. 즉, 유대교/기독교에서 천체현상을 '징조'로 해석할 수는 있다.
{창세기} 1장의 제 4일 차 창조 중 야훼는 하늘에 "빛들/천체들"을 두어 낮과 밤을 나누면서, (1) "징조" (אוֹת) 및 (2)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천체현상은 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메시지" 혹은 "징조"를 주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징조"는 매우 드믈게 일어나는 "신의 개입"에 해당하는데, 반면 바빌로니아 등의 고대점성술에서는 "주기적인 천체현상"에도 신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이런 지식은 히브리인의 종교적 사고로 본다면 "징조"가 아니라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하기 위한" 지식에 해당한다.
가령, 모세는 {신명기} 4장에서 "눈을 하늘로 향하여 해와 달과 별 등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를 보고 그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만천하 다른 민족들에게(나) 주어 섬기게 하신 것들이다."라고 경고했고, 한편, 소선지서 {요엘}에서 야훼는 "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 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 라고 말한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하고 또 {사도행전}에서의 베드로 역시 위의 {요엘}을 인용한다. 즉, 유대교/기독교에서 천체현상을 '징조'로 해석할 수는 있다.
{창세기} 1장의 제 4일 차 창조 중 야훼는 하늘에 "빛들/천체들"을 두어 낮과 밤을 나누면서, (1) "징조" (אוֹת) 및 (2)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천체현상은 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메시지" 혹은 "징조"를 주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징조"는 매우 드믈게 일어나는 "신의 개입"에 해당하는데, 반면 바빌로니아 등의 고대점성술에서는 "주기적인 천체현상"에도 신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종교적으로 해석했다. 이런 지식은 히브리인의 종교적 사고로 본다면 "징조"가 아니라 "계절과 날과 해를 구분하기 위한" 지식에 해당한다.
{히브리 성서}, 즉 {구약성서}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저자들에 의해 씌여진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천체와 관련된 정보가 극히 적다. 해와
달을 제외하고는 행성 가운데 오직 토성과 금성 정도가 총 3번 그 이름으로
언급될 뿐이고, 황도12궁으로 여겨지는 대상이 단 1번, 그리고 아마도
오리온(?)이 4번, 플레이아데스, 히아데스 (혹은 큰곰자리?) 등의 별자리/성단,
그리고 시리우스, 알데바란, 아크투르스 등이 통합 2번 정도 언급될 뿐이다. 그냥
천체로서 중립적 의미이거나, 혹은 이교도의 종교를 비난할 때 사용되었다.
예수는 태양 등의 천체를 상징하는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는 태양신교의 변형이란 식의 주장은 약 200년 전에 서구에서 이집트 고고학이 등장하면서 "예수=호루스" 형식으로 크게 유행했고, 20세기에는 점성술 및 뉴에이지, {시대정신}류의 음모론적 (유사)비교종교학 -- 카피캣 이론가 -- 쪽에서 이를 크게 부풀려 유포했다. 그러니까 꽤 현대의 산물인 셈이다.
심지어 이 종교는 AD 1-3세기 당시 기독교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 기독교 역시 미트라스교 처럼 어떤 천체현상을 "종교적 비의"로 재해석해 그 교리의 핵심으로 삼은 그런 종교일까?
§ 예수 vs 물고기자리
# [질문] 예수의 상징중 하나인 "익투스"는 물고기자리를 표현한 것인가?
[답변] 최광민
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 "물고기자리"란 단어의 원뜻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이없다.
순 우리말 "물고기자리"는 단수 처럼 들리지만, 사실 원 단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어 Ἰχθύες, 라틴어 Pisces, 한자어 쌍어궁(雙魚宮) 이 말하는 것은 "물고기들", 즉 "두 마리의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지중해 권의 모든 지역에서 그들은 "두 마리"의 물고기, 즉 "이크투에스 Ἰχθύες (복수)를 보았다.
예수가 "이크투에스 Ἰχθύες (복수)" 가운데 한 물고기인 "이크투스 ἰχθύς (단수)"라면 또 한마리의 물고기는 어디로 간걸까?
아래 글 "# 물고기자리 (쌍어궁)은 예수를 상징한다?" 항목에서 설명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153.html
최광민
# [질문] 예수는 물고기 자리의 시대를 열었나?
[답변] 최광민
이것 역시 점성가들의 "트릭"을 이해한다면 상당히 어이없다. 짦게 정리하자면, 저런 "점성학적 시대"의 시작과 끝은 점성가들 원하는대로 150년 내외에서 맘대로 늘렸다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질문] 오병이어의 기적은 천문현상을 신화로 바꾼 것이다?
# [질문]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고 히브리어로 말하면 천궁도가 된다 그말인 즉슨 예수는 천문과 관련이 있다?
"오병이어 기적은 황도12궁에서 마주 보는 두 별자리를 묘사한 것이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꽤 흥미로운 설명이다. 어쩌면 자유주의 기독교 쪽에서 이 기적을
설명할 때 많이 사용하는 무미건조한 "도시락 공유 사건" 식의 설명에 비하면
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비롭다.
참고로 "도시락 공유 사건"이란 이런 식의 설명을 말한다. 로마카톨릭교회의 정진적 추기경의 버전은 이렇다.
우선, (1) "물고기자리"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고, (2) 황도12궁 상에서 물고기자리와 처녀자리"가 마주 보고 있으며, (3) 처녀자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밭일하는 처녀로 연상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4) 베들레헴의 아람어 어원은 "빵의 집"인 것도 사실이며, (5) {복음서}는 그 베들레헴에서 '처녀' 마리아가 훗날 '이크투스 = 물고기'로 표현된 예수를 낳았다고 진술한다.
아, 놀랍도록 아귀가 맞는 논리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1과 #2를 통해 "오병이어"가 황도12궁에서 마주보는 별자리를 모티프로 한 것이란 주장이 제대로 설명되려면 다음의 질문 역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최광민
# [질문] 예수가 죽은 것은 동지에 태양이 3일간 떠 있을 때 사수자리가 태양을 죽인것을 의인화 한 것이다? (사수자리의 활 부분이 태양을 향하고 있었는가?)
[답변] 최광민
우선 이 질문부터 던져보자.
이렇게나 천문과 점성학을 깊이 이해했던 복음서 저자들은 도대체 왜 예수를 "동지"가 아니라 석달이나 지난 "춘분" 무렵에 죽은 걸로 "설정"한걸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동지를 전후한 태양의 고도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왜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동지 쪽에 한번에 몰아넣지 않은 것인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에 대한 여러 논란이 고대로 부터 있었지만) 최소한 예수의 죽음이 춘분 무렵인 유월절이었다는 점을 수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예수는 "동지 무렵"에 "모종의 화살 (치명적 모함?)"을 맞고 간신히 버티다 "석달 후에 죽은 것"이라 해석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뉴에이지 점성가들 조차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지라, 일단 올해 동지 무렵의 사수자리와 태양의 배치도를 보도록 하자. 시간과 장소는 2021년 12월 21일 오후 4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방이다.
사수자리 (궁수자리)에서 활을 쏘고 있는 켄타우로스 케이론의 화살촉이 향하는 방향에 주목해 보자. Skysafari 5 Pro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한다.
보면 알겠지만, 사수자리 (궁수자리) 켄타우로스가 겨누는 화살촉 끝은
태양에서 살짝 빗나가 있고, 태양은 화살 바로 앞쪽에 있지도 않고 약간
위쪽에 있다.
그럼 예수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AD 30년 혹은 33년 예루살렘으로 가서 화살촉과 태양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3년 차이는 천체위치 상 큰 차이가 없으니, AD 33년 동지날 일몰 무렵으로 가보겠다. 역시 예루살렘이다.
자, 그럼 태양이 동지날 일몰 때 과연 화살을 맞고 죽나 확인해 보자.
잠깐.
켄타우로스 케이론이 겨누는 화살은 도대체 어딜 향하고 있는기? 켄타우로스가 태양을 쏘긴 커녕, 태양이 켄타우로스를 뒤에서 쫓는 형국 아닌가?
AD 2021년과 AD 33년의 하늘에서 보다시피, 태양은 수 백년에 걸쳐 조금씩 사수자리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당시나 그 전후 몇 백년 사이에도 사수자리의 켄타우로스가 "태양을 활로 겨누는" 일은 없었다. 거꾸로 태양이 켄타우로스를 수 백년 간 쫒아다녔다.
물론 화살이 겨누던 자리 지평선의 근접위치로 해가 지긴 한다. 하지만 이 경우, 해가 지기 전까진 사수자리에 있는 별들은 하늘이 밝아 맨눈으로 전혀 볼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보통 고대인들은 "일몰 시의 징조"가 아니라 "일출 직전에 뜨는 별"의 위치와 "일출 시 태양"의 위치가 같거나 근접하거나, 혹은 근접시간인 경우에 대해 점성술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를 heliacal rising 이라고 한다.
나더러 이런 "점성학적" 신화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난 예수의 십자가형이 있던 유월절 무렵의 AD 33년 춘분 전후에 일몰 시 태양이 어떤 별자리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겠다. 십자가형이 있던 그 때 "태양"은 "물고기 자리"와 함께 진다 !!!!!!
{마르코/마가 복음서}에서 물 위를 걸은 인물은 예수 만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서}의 일화 역시 예수만 등장한다.
# [질문]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것은 태양과 관련이 있다?
[답변] 최광민
우선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울러 "포도주"와 예수의 "피"에 관련된 "주장"들에 대해서는 아래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최광민
[질문] 예수 성화에 있는 십자모양의 후광은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답변] 최광민
이런 식의 흔한 아마추어적 접근법은 (1) 종교의 본질과 (2) 그 표현방식을 뒤섞어 논증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표현방식"과 "표현되는 것"이 꼭 같은 걸 말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사람들은 흔히 놓친다.
가령,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이 예수를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처럼 묘사했다고 해서, 예수가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였던 건 아니다. 김기창은 그냥 "한국화 화법"과 "구도"를 예수의 일대기에 "적용"했을 뿐이다. 이 그림을 보고, 기독교와 유교가 한 뿌리라고 주장할 정신나간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다. (믿는 건 자유니 그런 사람이 전혀 없으리라곤 보장 못하겠다.)
당시 지중해의 종교 가운데, 기독교 처럼 텍스트 기반인 종교는 유대교 말곤 딱히 없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란 종교는 (심지어 이슬람교에서도 공언하듯) 원래 '시각적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에 바탕을 둔 종교이고, 그 교리 역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로 정형화되어 있다. 기독교에 성화 등 '보조 이미지'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기독교는 경전에 근거해 그 핵심교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신 또는 성인들의 도상적 표현에서 머리나 몸 뒤에 "후광"효과를 표현하는 방식은 예수 이전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로마 등지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이다. 이 후광이 굳이 "태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대개 특정 인물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효과에 가깝다.
기독교 미술에서의 그런 표현방식 역시 당시의 미술양식에서 가져왔을 뿐이다. (요새도 그렇지만) 당시 종교적 도상을 제작하던 화공들이 100% 기독교도였다고 보기도 힘들고, 후대에 성화상 제작에 주력하던 수도사들도 그런 표현기법들을 다 주위에서 배웠을 테니, 초기 기독교의 미술적 표현이 다른 종교의 표현물과 유사한 것이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다.
게다가 사실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나 성인들이 후광을 두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3-4세기 이후다. 이미 기독교의 기본교리가 완성된 지 한참 후의 일이란 뜻이다. 그러니 설령 예수의 성화가 (1) 당시의 표현방식에 따라 후광을 둘렀다 해서 그걸로 기독교의 '근본교리'가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건 상당한 도약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셈.
기독교 미술사에서 물고기나 어린 양 같은 상징이 아닌 "인간로서의 예수"의 도상이 등장하는 건 AD 3-4세기 무렵이다. 가령, 아래 도상은 로마의 코모딜라의 카타콤에서 발견된 예수의 도상으로, 예수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있고 "알파와 오메가"라고 적혀 있으며 머리 뒤론 후광이 다. 이 후광은 태양이니 황도12궁이니 하는 천문학/점성학적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그냥 "후광"이다.
같은 무렵 모자이크화에는 당시에 훨씬 보편적이던 '카이Χ-로 Ρ' 상징이 예수의 머리 뒤에 배치되어 있다. '카이-로'란 크리스토스 ΧΡΙΣΤΟΣ의 그리스어 단어 앞글자 두개를 따서 조합한 것이다. 당시는 "십자가" 보다도 '카이-로'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기독교의 상징이었다. 극악범 처형에 사용된 형틀이기 때문에 일종의 타부시 되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후에나 본격적인 상징으로 등장한다.
아일랜드 수도원의 8/9세기 작품인 {켈스의 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삽화를
보면 AD 8/9세기의 삽화인데도 아예 후광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상하지
않은가? "켈트 십자가"가 태양과 황도12궁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무색하게도, 바로 켈트인들의 후예가 제작한 채색삽화 속의 예수는 후광도
없이 그냥 무성한 금발머리만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제로 하는 {에스겔}과 "장차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제로 하는 {요한계시록}의 해당 테마는 매우 흡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우선 에스겔의 새 성전을 둘러싼 외벽은 정방형이다. 야훼는 배분될 영토의 정중앙에 정방형의 성소를 성별해 떼어둘 것을 명령한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역시 정방형이다. 네모 반듯한 모양에 각 면에 3개씩의 문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북극성과 황도12궁을 보고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이라면, 수 백년 전 에스겔도 북극성과 황도12궁을 보고 새 성전에 대한 저런 묘사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에스겔과 요한의 묘사가 저렇게 유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에스겔의 묘사는 천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에스겔} 47장과 48장의 새 성전과 이스라엘 지역의 "지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의 진술과 몹시 흡사한 요한의 묘사가 에스겔의 모티프와 전혀 상관없는 황도12궁을 묘사한 것으로 보긴 곤란해진다.
{에스겔}서의 상당히 세부적인 묘사에 기초해 '새 성전'의 형태를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이 정방형의 외벽을 가지고 후방으로 지성소가 배치된 구조물을 그릴 수 있다.
묘사가 자세하지 않아 재구성이 어려운 '새 예루살렘'은 에스겔의 성전과 유사한 구조체일 수도, 정육면체일 수도, 혹은 피라밋 구조체를 염두해서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에스겔의 '새 성전'과 같은 배치를 요한이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아래 그림은 각뿔 형태로 추정한 것이다.
아무튼 에스겔과 요한 모두 외벽이 "정방형" 구조인 구조체를 묘사했다. 특별히 요한의 경우, '새 예루살렘'의 정방형 외벽엔 3개씩의 문이 있다고 했다. 이를 도상화 해보자. 만약 정방형 구조를 각 면당 3개씩 규균등하게 분할하게 되면 모서리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 요한이 묘사하고자 한게 황도12궁이라면, 도대체 왜 요한은 원형의 '새 예루살렘'이 아닌 정방형 구조체를 언급한 것인가?
다음은 '신과 어린 양의 보좌'와 '생명수의 강'에 대해 살펴보자.
에스겔이 본 그 강물은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우측에서 땅 밑으로 들어가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간 후 동쪽 문의 오른쪽을 통해 솟아 나왔다. 혹시 이게 '은하수'에 대한 것일까? 그렇게 보긴 곤란하다. 강물은 이를 수원으로 해서 '아라바 바다', 즉 사해를 향해 동남쪽으로 흐른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에는 따로 성전이 없다. 신과 그 어린 양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과 어린 양의 보좌들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새 예루살렘" 도성의 가운데를 관통해 흘러간다. 역시 '한 방향'이라고 보는게 적절할 것이다.
그럼 신의 보좌는 "북극성"이란 주장?
어두운 곳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밤 중에 북극성을 찾은 후 그 주변부터 시작해서 은하수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찾아보자. "북극성이 신의 보좌이고 북극성 주변의 북두칠성이 어린 양의 보좌"라 쳤을 때, 그럼 은하수는 어디에 있는가?
아래는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북위 37도의 에게해 파트모스섬에서 봤을 법한
북쪽 하늘의 모습이다. 편의상 하늘에서 은하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한
여름 AD 100년 북위 37도 북극성 주변을 시뮬레이션 해봤다.
아래는 AD 100년 7월 18일 자정 무렵의 북천이다. 여기서 Zenith는 천구와 관측자의 머리 위가 만나는 점이고, NCP는 북극성이 있는 지점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천구 상의 실제 "북극"이다. 회색으로 표시된 것은 은하수 및 그 경계면이다.
은하수가 흐르는 방향을 보기 위해 좀 더 광각으로 잡아보자.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은하수도 동에서 떠서 서로 지기 때문에, 자정부터 5시간이 지난 새벽 동트기 전의 북극성 주변과 은하수 위치를 보자.
{에스겔}의 성전 문지방, {요한계시록}의 신과 어린 양의 보좌는 생명수의 "수원지"다. 하지만 북극성은 은하수 근처에는 있어도 은하수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아울러 그 끝점에 있지도 않다. 요한은 과연 저런 배치를 보고 북극성을 신의 보좌라고 이해했을까?
예수는 태양 등의 천체를 상징하는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는 태양신교의 변형이란 식의 주장은 약 200년 전에 서구에서 이집트 고고학이 등장하면서 "예수=호루스" 형식으로 크게 유행했고, 20세기에는 점성술 및 뉴에이지, {시대정신}류의 음모론적 (유사)비교종교학 -- 카피캣 이론가 -- 쪽에서 이를 크게 부풀려 유포했다. 그러니까 꽤 현대의 산물인 셈이다.
물론 점성학적 모티프가 교의의 핵심을 이루는 종교는 인류 역사에 여럿 있다.
로마 일대에서 유행했던 미트라스교의 비의 가운데서도 핵심인
"황소살해" 모티프가 바로 고대천문학-점성학을 차용한 대표적 예로 여겨진다.
- [© 최광민] 예수 vs. 미트라/미트라스 #04: 수난과 자기희생을 통한 인류의 구원?
- http://kwangmin.blogspot.com/2011/12/vs-5.html
심지어 이 종교는 AD 1-3세기 당시 기독교와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 기독교 역시 미트라스교 처럼 어떤 천체현상을 "종교적 비의"로 재해석해 그 교리의 핵심으로 삼은 그런 종교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보긴 힘들다.
한가지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사를 봐도 쉽게 감을 잡을 수 있다. 기독교 역사
전반부 300년 동안 많은 이단들이 명멸했는데, 이 가운데서 다양한 분파의
그노시스 (영지주의)파들이 기독교를 "우주적" 스케일에서 재해석하려고 했다.
가령, 모든 "{구약성서} 및 {구약성서}의 신 야훼를 포함한 모든 유대교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바울의 특정 문서들에 근거해 AD 2세기 초 소아시아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거세된 혹은 "순수한" 기독교를 재구성하려고 했던
시노페의 마르키온의 추종자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숫자에 따른 비의라던지
점성학적 이론을 도입해 황도12궁에 따라 천계를 나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고, 또 다른 그룹은 거기에 특정한 신, 영, 악마를 배치하기도
했다.
그노시스들의 이런 유주적 스케일의 코스믹 판타지는 아래 글 제 6장을
읽어보길 권한다.
- [© 최광민] 예수 vs. 예수 #07: 삼위일체 개념은 과연 발렌티누스의 창작물일까?
- http://kwangmin.blogspot.com/2015/07/vs-7.html
그런 분파들이 유행하던 당시에 천체가 주요 모티프인 종교들이 역시 유행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복음서}나 {요한계시록}
등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심지어 정경 {신약성서} 군 중에서
"천문학"적 모티프가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이 작성된 지역인
소아시아 지역은 바로 마르키온의 세력이 가장 강력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 그노시스의 이런 교리들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비판을 가했던 초기
기독교 교부들 가운데 하나인 AD 2세기의 갈리아 루그드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는 바로 그 지역 출신으로 젊은 시절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포스를
친견한 인물이었고, 그의 방대한 {이단반박}에 조차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승인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전통적으로 여겨저온
"사도 요한" 혹은 그와 동명이인으로 간주되는 "장로 요한" 혹은 제 3자,
그리고 이 저자가 쓴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유통되던 아주 초창기부터 접했던
이레네우스가 현대 뉴에이지 쪽에서 주장하는 그런 엄청난 내용 (가령,
예수=오리온 자리 등등)을 책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고로, 이레네우스는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예수의 사도 요한"으로
적시했다.
또 로마 사제 히폴리투스, 살라미스 주교 에피파니우스 등 기타 많은 기독교
교부들이 예리하게 하나씩 비판해 남긴 백과사전식 저작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지만, 그들의 비판 속에 등장하는 이단설 가운데, 현대 카피캣 이론가나
뉴에이지 쪽에서 주장하는 그런 내용은 등장하질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복음서}나 {요한계시록}가 현재 형태로 갖춰진게 AD 2세기 말이라고 늦춰
잡는다 치더라도, 바로 이들 문서에 이토록 심오한 점성학/천문학적 단서를
끼워 넣었다는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살던 시대와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바로
이 문건들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온갖 복잡하고 정교한 우주적 이론을 세웠던
당시의 그노시스들이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심지어 4권의
{복음서}나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적시한 AD 2세기 초반의 유스티노스나
중/후반의 이레네우스 그리고 다른 교부들이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들도 몰랐던 이런 내용이 거의 2000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해독"된 것일까?즉, 이 런 주장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 알려졌던 내용이 아닌
현대의 견강부회적 "발명"이란 뜻이다.
솔직히 누구라도 황도12궁에서 유대교/기독교/예수/주변인물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지어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 양자리 (백양궁) = 어린 양 예수?
- 황소자리 (금우궁) = 유대교의 속죄제물로 상징된 예수?
- 쌍둥이자리 (쌍아궁) = 예수의 신성과 인성? 예수와 사도 토마스 (도마) 디디모스 (쌍동이)?
- 게자리 (거해궁) = 성령의 전신갑주?
- 사자자리 (사자궁) = 유다 가문/왕국의 상징, 다윗의 자손 예수?
- 처녀자리 (처녀궁) = 동정녀 마리아?
- 천칭자리 (천칭궁) =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재림주 예수?
- 전갈자리 (전갈궁) = "죽음아, 너의 독침은 어디 있느냐? (바울)", 오리온 (예수)를 죽이기 위해 보내진 전갈?
- 사수자리 (인마궁) = 전갈 (악마, 죽음)을 겨누는 켄타우로스 케이론 (예수?)
- 염소자리 (마갈궁) = 대속제일 (욤 키푸르) 속죄물인 희생염소와 아자젤 염소? = 대속제물 예수?
- 물병자리 (보병궁) = 물항아리에서 포도주로 바꾼 기적? 수난주간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따라 가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한 "물항아리을 지고가는 사람"?
- 물고기자리 (쌍어궁) = 이크투스 물고기 예수? 사람을 낚는 어부?
예수가 아닌 내 이야기를 집어 넣어도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뽑아낼 수 있을 듯
하다.
§ 예수 vs 물고기자리
# [질문] 예수의 상징중 하나인 "익투스"는 물고기자리를 표현한 것인가?
[답변] 최광민
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 "물고기자리"란 단어의 원뜻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이없다.
순 우리말 "물고기자리"는 단수 처럼 들리지만, 사실 원 단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어 Ἰχθύες, 라틴어 Pisces, 한자어 쌍어궁(雙魚宮) 이 말하는 것은 "물고기들", 즉 "두 마리의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지중해 권의 모든 지역에서 그들은 "두 마리"의 물고기, 즉 "이크투에스 Ἰχθύες (복수)를 보았다.
예수가 "이크투에스 Ἰχθύες (복수)" 가운데 한 물고기인 "이크투스 ἰχθύς (단수)"라면 또 한마리의 물고기는 어디로 간걸까?
아래 글 "# 물고기자리 (쌍어궁)은 예수를 상징한다?" 항목에서 설명했다.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153.html
최광민
# [질문] 예수는 물고기 자리의 시대를 열었나?
[답변] 최광민
이것 역시 점성가들의 "트릭"을 이해한다면 상당히 어이없다. 짦게 정리하자면, 저런 "점성학적 시대"의 시작과 끝은 점성가들 원하는대로 150년 내외에서 맘대로 늘렸다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글에서 "# 물고기자리 (쌍어궁)은 예수를 상징한다?" 항목의 독서를
권한다.
최광민
- [© 최광민] 예수 vs 피타고라스: 물고기, 베시카 피시스, 153
-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153.html
최광민
# [질문] 오병이어의 기적은 천문현상을 신화로 바꾼 것이다?
# [질문]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고 히브리어로 말하면 천궁도가 된다 그말인 즉슨 예수는 천문과 관련이 있다?
[답변] 최광민
이 주장은 두개의 독립된 해석이 부적절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위 "5병2어"과 그와 유사한 기적담에 대한 {복음서}의 진술을 먼저
읽어보자.
- [© 최광민] 예수 vs. 붓다 #6: {복음서}의 [오병이어] 일화는 {불경}에서 표절되었을까?
- https://kwangmin.blogspot.com/2014/11/vs-6_1.html
참고로 "도시락 공유 사건"이란 이런 식의 설명을 말한다. 로마카톨릭교회의 정진적 추기경의 버전은 이렇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대표자인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서울 명동성당의 정진석 추기경은 2008년 12월 29일 서울 명동성당 집무실에서 가진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보도되었다. “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다름 아닌 꼭꼭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신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도시락을 나누게 하신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 [백성호,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중앙일보, 2009. 1. 2.]
판단은 각자의 몫.
다시 별자리로 돌아가 보자.
우선, (1) "물고기자리"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고, (2) 황도12궁 상에서 물고기자리와 처녀자리"가 마주 보고 있으며, (3) 처녀자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밭일하는 처녀로 연상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4) 베들레헴의 아람어 어원은 "빵의 집"인 것도 사실이며, (5) {복음서}는 그 베들레헴에서 '처녀' 마리아가 훗날 '이크투스 = 물고기'로 표현된 예수를 낳았다고 진술한다.
아, 놀랍도록 아귀가 맞는 논리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1과 #2를 통해 "오병이어"가 황도12궁에서 마주보는 별자리를 모티프로 한 것이란 주장이 제대로 설명되려면 다음의 질문 역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 물고기자리의 '두 마리 물고기 (=2어)'는 그렇다 치고, 처녀자리의 '다섯개의 빵 (=5병)'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처녀자리 어디서 숫자 5가 유도된 것일까? 5000천 명 이상을 먹였다는 내용의 '5천'은 어떤 천문학적 모티프에서 유도된 것일까?
- 물고기자리의 물고기 2마리가 중요한 천문학적/종교적 모티프였다면, {복음서}의 약간 결이 다른 기적인 '7개의 빵과 물고기 "몇 ὀλίγος" 마리로 4천 명 이상을 먹인 기적' 에서는 왜 물고기 숫자가 "둘"로 명시있지 않은가? 처녀자리 어디서 숫자 '7'의 모티프가 등장한 것인가? 마태(오)는 그의 복음서에서 두 기적을 각각 독립적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그는 이 두 '천문학적 단서'에 대해 일관적인 해석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암시는 전혀없다.
- 혹시 5(빵) + 7(빵) = 황도12궁 ?
- 그럼 왜 5와 7은 무슨 근거로 나누었단 말일까?
- 왜 반반이 아닌가?
- 5나 7란 수가 중요한 수비학적 모티프라면, 왜 5개의 빵이야기는 4개 복음서 모두에 등장하는 반면, 7개 빵 이야기는 {마태오/마태 복음서}와 {마르코/마가 복음서}에만 등장할까?
- 그나저나 "마주보는 별자리" 둘의 의미를 결합했단 말인가? 보통 고대 점성학에서 마주 보는 두 별자리는 반대의 속성을 담는다.
아울러 '처녀자리'와 마주보는 '물고기자리'를 결합해 '예수의 탄생'을
설명하려는 것이라면, 아래의 질문 역시 설명되어야 한다.
- 처녀자리가 밭일/곡식과 관계 있고, 여기서 처녀 마리아 => 베들레헴/빵의 집 => '이크투스' 예수 탄생이 연결된다면, 도대체 이번엔 왜 또 물고기가 '한 마리'인가? 놀랍게도 위 주장에서는 "물고기 자리"에서 "한 마리" 물고기인 "이크투스 ἰχθύς" 즉, "신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번에는 또 제대로 "두 마리"의 물고기가 된다.
- {복음서}의 저자들이 황도12궁과 관련된 점성학을 염두에 두고 해당 일화들을 은밀하게 삽입한 것이라면, 도대체 그들은 왜 같은 별자리를 놓고 다른 수의 물고기를 본단 말일까? (아마추어 점성가들이라서?)
- 역시 왜 마주보는 황도12궁의 별자리가 '예수의 탄생'이란 '단일사건'을 상징하기 위해 결합되는가? 오히려 처녀자리 이전의 '사자자리 (=유다왕국)'와 '처녀자리'를 결합하는게 더 그럴듯 하다.
답할 수 있을까?
게다가 {복음서} 가운데 네번째 복음서인 {요한 복음서}는 이 기적의
"의미"와 예수의 "의도"에 대해서 적고 있다. 즉, 기적에 등장한 "빵"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나온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광야를 헤맬때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이며, 자신이 곧 그 '만나'란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빵"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만 "물고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의 물고기가
기적의 중요한 모티프라면, 혹시라도 점성학적으로 중요한 모티프라면, 왜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까?
최광민
§ 예수 vs 태양 / 황도12궁
# [질문] 예수는 새로운 태양신이다?
# [질문] 예수는 새로운 태양신이다?
[답변] 최광민
"비교종교/신화"의 여러 글에서 이런 속설에 대해 비판했지만, 하나만
고른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 [© 최광민] 예수 vs. 미트라/미트라스 #02: 일요일은 미트라/미트라스의 날일까?
-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_7724.html
최광민
# [질문] 예수가 죽은 것은 동지에 태양이 3일간 떠 있을 때 사수자리가 태양을 죽인것을 의인화 한 것이다? (사수자리의 활 부분이 태양을 향하고 있었는가?)
[답변] 최광민
이렇게나 천문과 점성학을 깊이 이해했던 복음서 저자들은 도대체 왜 예수를 "동지"가 아니라 석달이나 지난 "춘분" 무렵에 죽은 걸로 "설정"한걸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동지를 전후한 태양의 고도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왜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동지 쪽에 한번에 몰아넣지 않은 것인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에 대한 여러 논란이 고대로 부터 있었지만) 최소한 예수의 죽음이 춘분 무렵인 유월절이었다는 점을 수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최광민] 예수 vs. 예수 #11: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동방박사의 별
- https://kwangmin.blogspot.com/2015/07/vs-11.html
아니면, 예수는 "동지 무렵"에 "모종의 화살 (치명적 모함?)"을 맞고 간신히 버티다 "석달 후에 죽은 것"이라 해석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뉴에이지 점성가들 조차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를 들어보지 못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지라, 일단 올해 동지 무렵의 사수자리와 태양의 배치도를 보도록 하자. 시간과 장소는 2021년 12월 21일 오후 4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방이다.
사수자리 (궁수자리)에서 활을 쏘고 있는 켄타우로스 케이론의 화살촉이 향하는 방향에 주목해 보자. Skysafari 5 Pro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뮬레이션 한다.
SkySafari 5 Pro
그럼 예수가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AD 30년 혹은 33년 예루살렘으로 가서 화살촉과 태양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 3년 차이는 천체위치 상 큰 차이가 없으니, AD 33년 동지날 일몰 무렵으로 가보겠다. 역시 예루살렘이다.
자, 그럼 태양이 동지날 일몰 때 과연 화살을 맞고 죽나 확인해 보자.
SkySafari 5 Pro
켄타우로스 케이론이 겨누는 화살은 도대체 어딜 향하고 있는기? 켄타우로스가 태양을 쏘긴 커녕, 태양이 켄타우로스를 뒤에서 쫓는 형국 아닌가?
SkySafari 5 Pro
AD 2021년과 AD 33년의 하늘에서 보다시피, 태양은 수 백년에 걸쳐 조금씩 사수자리 앞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당시나 그 전후 몇 백년 사이에도 사수자리의 켄타우로스가 "태양을 활로 겨누는" 일은 없었다. 거꾸로 태양이 켄타우로스를 수 백년 간 쫒아다녔다.
물론 화살이 겨누던 자리 지평선의 근접위치로 해가 지긴 한다. 하지만 이 경우, 해가 지기 전까진 사수자리에 있는 별들은 하늘이 밝아 맨눈으로 전혀 볼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보통 고대인들은 "일몰 시의 징조"가 아니라 "일출 직전에 뜨는 별"의 위치와 "일출 시 태양"의 위치가 같거나 근접하거나, 혹은 근접시간인 경우에 대해 점성술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를 heliacal rising 이라고 한다.
나더러 이런 "점성학적" 신화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난 예수의 십자가형이 있던 유월절 무렵의 AD 33년 춘분 전후에 일몰 시 태양이 어떤 별자리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겠다. 십자가형이 있던 그 때 "태양"은 "물고기 자리"와 함께 진다 !!!!!!
물론 그럼 "부활"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인이어야 할 "물고기 예수"가 왜 "물고기 두마리"인 쌍어궁과 함께 지는지는
또 설명이 힘들겠지만 말이다.
최광민
# [질문]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은 물에 비춰진 태양광을 의인화 한 것이다?
[답변] 최광민
그나저나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원거리에서 반사광으로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처럼 보이려면 상당히 잔잔한 반사면이 필요할 텐데, {마르코/마가 복음서}에 따르자면, "대략 밤의 제 4경", 즉 그리스어로 "περὶ τετάρτην φυλακὴν", 즉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 경, 그것도 풍랑이 치는 매끈하지도 않은 호수 수면 위를 태양광이 그건 식으로 비출 수 있을까? 차라리 그냥 "전설"이라고 치부하는게 더 설득력 있을 듯 하다.
일단 텍스트를 읽어보자.
{마태 복음서}에서 물 위를 걸은 것은 우선 예수이며, 그 다음은 베드로인데, 예수는 물에 빠진 베드로를 데리고 함께 배에 오른다.
최광민
# [질문]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은 물에 비춰진 태양광을 의인화 한 것이다?
[답변] 최광민
아마도 제럴드 메이시의 이론인 호루스/오안네스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예전에 쓴 글을 권한다.
- [©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9: 물 위를 걸은 호루스?
- http://kwangmin.blogspot.com/2012/11/vs-9.html
그나저나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원거리에서 반사광으로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것처럼 보이려면 상당히 잔잔한 반사면이 필요할 텐데, {마르코/마가 복음서}에 따르자면, "대략 밤의 제 4경", 즉 그리스어로 "περὶ τετάρτην φυλακὴν", 즉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 경, 그것도 풍랑이 치는 매끈하지도 않은 호수 수면 위를 태양광이 그건 식으로 비출 수 있을까? 차라리 그냥 "전설"이라고 치부하는게 더 설득력 있을 듯 하다.
일단 텍스트를 읽어보자.
{마태 복음서}에서 물 위를 걸은 것은 우선 예수이며, 그 다음은 베드로인데, 예수는 물에 빠진 베드로를 데리고 함께 배에 오른다.
23 καὶ ἀπολύσας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τ᾽ ἰδίαν προσεύξασθαι. ὀψίας δὲ γενομένης μόνος ἦν ἐκεῖ. 24 τὸ δὲ πλοῖον ἤδη σταδίους πολλοὺς ἀπὸ τῆς γῆς ἀπεῖχεν, βασανιζόμενον ὑπὸ τῶν κυμάτων, ἦν γὰρ ἐναντίος ὁ ἄνεμος. 25 τετάρτῃ δὲ φυλακῇ τῆς νυκτὸς ἦλθεν πρὸς αὐτοὺς περιπατῶν ἐπὶ τὴν θάλασσαν. 26 οἱ δὲ μαθηταὶ ἰδόντες αὐτὸν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περιπατοῦντα ἐταράχθησαν λέγοντες ὅτι φάντασμά ἐστιν, καὶ ἀπὸ τοῦ φόβου ἔκραξαν. 27 εὐθὺς δὲ ἐλάλησεν [ὁ ἰησοῦς] αὐτοῖς λέγων, θαρσεῖτε, 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28 ἀποκριθεὶς δὲ αὐτῶ ὁ πέτρος εἶπεν, κύριε, εἰ σὺ εἶ, κέλευσόν με ἐλθεῖν πρὸς σὲ ἐπὶ τὰ ὕδατα· 29 ὁ δὲ εἶπεν, ἐλθέ. καὶ καταβὰς ἀπὸ τοῦ πλοίου [ὁ] πέτρος περιεπάτησεν ἐπὶ τὰ ὕδατα καὶ ἦλθεν πρὸς τὸν ἰησοῦν. 30 βλέπων δὲ τὸν ἄνεμον [ἰσχυρὸν] ἐφοβήθη, καὶ ἀρξάμενος καταποντίζεσθαι ἔκραξεν λέγων, κύριε, σῶσόν με. 31 εὐθέως δὲ ὁ ἰησοῦς ἐκτείνας τὴν χεῖρα ἐπελάβετο αὐτοῦ καὶ λέγει αὐτῶ, ὀλιγόπιστε, εἰς τί ἐδίστασας; 32 καὶ ἀναβάντων αὐτῶν εἰς τὸ πλοῖον ἐκόπασεν ὁ ἄνεμος. 33 οἱ δὲ ἐν τῶ πλοίῳ προσεκύνησαν αὐτῶ λέγοντες, ἀληθῶς θεοῦ υἱὸς εἶ.
[오병이어 기적 후 / 필자 주] 22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23. 무리를 헤쳐 보내신 뒤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이미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홀로 거기에 계셨다. 24. 제자들이 탄 배는, 그 사이에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25.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26. 제자들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 하였다. 그들은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27.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셨다. 28.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니, 29. 예수께서 "오너라" 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30.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자,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 하셨다. 32.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 33.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어서 경배드리고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였다.--- 마태복음, {표준새번역 (개정)} 14장)
{마르코/마가 복음서}에서 물 위를 걸은 인물은 예수 만이 기록되어 있다.
46 καὶ ἀποταξάμενος αὐτοῖς ἀπῆλθεν εἰς τὸ ὄρος προσεύξασθαι. 47 καὶ ὀψίας γενομένης ἦν τὸ πλοῖον ἐν μέσῳ τῆς θαλάσσης, καὶ αὐτὸς μόνος ἐπὶ τῆς γῆς. 48 καὶ ἰδὼν αὐτοὺς βασανιζομένους ἐν τῶ ἐλαύνειν, ἦν γὰρ ὁ ἄνεμος ἐναντίος αὐτοῖς, περὶ τετάρτην φυλακὴν τῆς νυκτὸς ἔρχεται πρὸς αὐτοὺς περιπατῶν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καὶ ἤθελεν παρελθεῖν αὐτούς. 49 οἱ δὲ ἰδόντες αὐτὸν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περιπατοῦντα ἔδοξαν ὅτι φάντασμά ἐστιν, καὶ ἀνέκραξαν· 50 πάντες γὰρ αὐτὸν εἶδον καὶ ἐταράχθησαν. ὁ δὲ εὐθὺς ἐλάλησεν μετ᾽ αὐτῶν,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θαρσεῖτε, 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51 καὶ ἀνέβη πρὸς αὐτοὺς εἰς τὸ πλοῖον, καὶ ἐκόπασεν ὁ ἄνεμος. καὶ λίαν [ἐκ περισσοῦ] ἐν ἑαυτοῖς ἐξίσταντο, 52 οὐ γὰρ συνῆκαν ἐπὶ τοῖς ἄρτοις, ἀλλ᾽ ἦν αὐτῶν ἡ καρδία πεπωρωμένη.
[오병이어 기적 후 / 필자 주] 그들을 보내시고 나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께서는 혼자 육지에 계셨다.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고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네시쯤이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그를 강보고 모두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시며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마음이 무디어서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도 아직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 공동번역 {마르코 복음서} 6장 46-52
{요한복음서}의 일화 역시 예수만 등장한다.
16 ὡς δὲ ὀψία ἐγένετο κατέβησαν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ἐπὶ τὴν θάλασσαν, 17 καὶ ἐμβάντες εἰς πλοῖον ἤρχοντο πέραν τῆς θαλάσσης εἰς καφαρναούμ. καὶ σκοτία ἤδη ἐγεγόνει καὶ οὔπω ἐληλύθει πρὸς αὐτοὺς ὁ ἰησοῦς, 18 ἥ τε θάλασσα ἀνέμου μεγάλου πνέοντος διεγείρετο. 19 ἐληλακότες οὗν ὡς σταδίους εἴκοσι πέντε ἢ τριάκοντα θεωροῦσιν τὸν ἰησοῦν περιπατοῦντα 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καὶ ἐγγὺς τοῦ πλοίου γινόμενον, καὶ ἐφοβήθησαν. 20 ὁ δὲ λέγει αὐτοῖς, 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 21 ἤθελον οὗν λαβεῖν αὐτὸν εἰς τὸ πλοῖον, 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τὸ πλοῖον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ἰς ἣν ὑπῆγον.
...[오병이어 기적 후 / 필자 주]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의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았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사나워졌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서, 십여 리쯤 갔을 때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셔들였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복음} 6장 16-21절
최광민
# [질문]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것은 태양과 관련이 있다?
[답변] 최광민
우선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 [© 최광민] 예수 vs. 예수 #11: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동방박사의 별
발췌하면,
"....한편, 디오니소스는 탄생일은 최소한 두가지다: 한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의 실체를 본 세멜레가 불타버릴 때 태아상태로 구출된 디오니소는 제우스 허벅지에 꿰매져 있다가 태어난다. 이 탄생축제는 포도수확이 있던 9월에 기념되었다. 두번째 탄생축제는 지중해 일대에서 '레나이아' 축제로 불리던 것으로, 9월 무렵에 담근 포도주가 출하되는 1월에 있었다. 이 뿐 아니라 고대사회의 모든 디오니소스 축제는 태양이라기보다는 포도의 재배주기 및 포도주의 출하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물론 농사주기가 태양의 주기를 따르긴 하지만, 태양의 천문학적인 의미와 연결짓는 건 무리다..." --- 최광민, {크리스마스의 기원과 동방박사의 별}
아울러 "포도주"와 예수의 "피"에 관련된 "주장"들에 대해서는 아래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 [© 최광민] 예수 vs. 디오니소스 #5: 포도주 기적?
- [© 최광민] 예수 vs. 미트라/미트라스 #05: 미트라스교의 성찬과 세례?
최광민
[질문] 예수 성화에 있는 십자모양의 후광은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답변] 최광민
이런 식의 흔한 아마추어적 접근법은 (1) 종교의 본질과 (2) 그 표현방식을 뒤섞어 논증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표현방식"과 "표현되는 것"이 꼭 같은 걸 말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사람들은 흔히 놓친다.
가령,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이 예수를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처럼 묘사했다고 해서, 예수가 성리학을 배운 사대부였던 건 아니다. 김기창은 그냥 "한국화 화법"과 "구도"를 예수의 일대기에 "적용"했을 뿐이다. 이 그림을 보고, 기독교와 유교가 한 뿌리라고 주장할 정신나간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다. (믿는 건 자유니 그런 사람이 전혀 없으리라곤 보장 못하겠다.)
운보 김기창, {예루살렘 입성}
당시 지중해의 종교 가운데, 기독교 처럼 텍스트 기반인 종교는 유대교 말곤 딱히 없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란 종교는 (심지어 이슬람교에서도 공언하듯) 원래 '시각적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에 바탕을 둔 종교이고, 그 교리 역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로 정형화되어 있다. 기독교에 성화 등 '보조 이미지'가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기독교는 경전에 근거해 그 핵심교리를 완성하고 있었다.
신 또는 성인들의 도상적 표현에서 머리나 몸 뒤에 "후광"효과를 표현하는 방식은 예수 이전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로마 등지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이다. 이 후광이 굳이 "태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대개 특정 인물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효과에 가깝다.
기독교 미술에서의 그런 표현방식 역시 당시의 미술양식에서 가져왔을 뿐이다. (요새도 그렇지만) 당시 종교적 도상을 제작하던 화공들이 100% 기독교도였다고 보기도 힘들고, 후대에 성화상 제작에 주력하던 수도사들도 그런 표현기법들을 다 주위에서 배웠을 테니, 초기 기독교의 미술적 표현이 다른 종교의 표현물과 유사한 것이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당연하다.
게다가 사실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나 성인들이 후광을 두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3-4세기 이후다. 이미 기독교의 기본교리가 완성된 지 한참 후의 일이란 뜻이다. 그러니 설령 예수의 성화가 (1) 당시의 표현방식에 따라 후광을 둘렀다 해서 그걸로 기독교의 '근본교리'가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건 상당한 도약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셈.
기독교 미술사에서 물고기나 어린 양 같은 상징이 아닌 "인간로서의 예수"의 도상이 등장하는 건 AD 3-4세기 무렵이다. 가령, 아래 도상은 로마의 코모딜라의 카타콤에서 발견된 예수의 도상으로, 예수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있고 "알파와 오메가"라고 적혀 있으며 머리 뒤론 후광이 다. 이 후광은 태양이니 황도12궁이니 하는 천문학/점성학적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그냥 "후광"이다.
AD 4세기 Mural painting from the catacomb of Commodilla.
같은 무렵 모자이크화에는 당시에 훨씬 보편적이던 '카이Χ-로 Ρ' 상징이 예수의 머리 뒤에 배치되어 있다. '카이-로'란 크리스토스 ΧΡΙΣΤΟΣ의 그리스어 단어 앞글자 두개를 따서 조합한 것이다. 당시는 "십자가" 보다도 '카이-로'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기독교의 상징이었다. 극악범 처형에 사용된 형틀이기 때문에 일종의 타부시 되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후에나 본격적인 상징으로 등장한다.
Mosaic Floor, England, 4th Century
정격화된 비잔틴 이콘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이집트 시나이의 성
카트리나 수도원에 보존된 AD 6세기의 이콘인 {크리스토스 판토크라토르
Χριστὸς Παντοκράτωρ}가 있다. 후광 안에 십자도상이 들어가 있지만, 그
안에 태양이나 황도12궁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 이유는? 후광 주변을
수많은 작은 점을 찍어 장식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각 구간에 같은
크기와 같은 수의 점들을 찍었다. 따라서 이 후광은 태양도 황도12궁도
아니다.
AD 8세기 프랑스의 채색삽화 복음서인 {군도히누스 복음서} 속 예수 역시 십자후광을 두르고 있지만, 그 십자후광은 단순히 점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 태양이나 혹은 황도12궁, 혹은 기타 천체로 여겨질 단서가 하나도 없다. 저게 황도12궁을 상징하려면 점도 12개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예수를 둘러싼 네개의 원은 4권의 {복음서} 저자들 4인을 상징하는데, 거기에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점으로 장식되어 있다.
AD 8세기 프랑스의 채색삽화 복음서인 {군도히누스 복음서} 속 예수 역시 십자후광을 두르고 있지만, 그 십자후광은 단순히 점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 태양이나 혹은 황도12궁, 혹은 기타 천체로 여겨질 단서가 하나도 없다. 저게 황도12궁을 상징하려면 점도 12개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예수를 둘러싼 네개의 원은 4권의 {복음서} 저자들 4인을 상징하는데, 거기에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점으로 장식되어 있다.
Christ in Majesty, Illuminated Parchment Gospels of Gundohinus, 754,Municipal Library, Autun, France.
The Arrest of Christ, The Book of Kells, around 800, The Library of Trinity College, Dublin, Ireland.Book of Kells, Folio 32v, Christ Enthroned.
AD 9세기 로마 파락세데스 교회의 모자이크를 보자. 십자후광을 머리에
두르고는 있지만, 특별히 천체를 암시하고 있지 않다. 사실 다른 성인들이
두른 후광이나 예수의 후광이나 같다. 다만 예수의 후광이 더 크고, 다른
이들과의 구별을 위해 '십자'가 추가된 것 뿐이다.
과연 속설들이 주장하듯, 예수의 후광은 "예수는 태양"이라거나 혹은 "예수는 황도12궁의 주인"이란 거창한 비의를 담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신과 성인들을 꾸미는 "통상적 장식"인 걸까?
최광민
# [질문] 켈트 십자가는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켈트 십자가가 기독교 이전 켈트족 사이에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식의 주장이 많이 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소위 '켈트 십자가 (high cross)'란 형태의 유물은 대개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전파된 "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물론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AD 5세기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주교 패트릭과 관련된 설명들에 따르면 두가지 가능한 기원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1) 성 패트릭 혹은 성 데클란이 켈트족들 섬기던 태양도상 (원) 앞에 십자가를 배치하여 그리스도가 태양신을 압도한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는 설명, (2) 혹은 역시 "원"으로 표상된 달의 여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위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설명.
내가 보기엔 이 또한 일종의 도시전설에 가까와 보인다. 켈트 십자가는 당시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기독교 지역에서 사용이 증가하고 있던 "십자후광" 도상을 기반으로 켈트인들의 미적감각에 맞춰 발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게다가 "태양"이라면 또 몰라도 "황도12궁"을 암시하는 상징들이 도상 자체에 등장하지 않는다.
최광민
이 주장은 "생명수의 강"이 "은하수"고, 생명수의 강가에 자라는 생명나무 "12그루"는 "황도12궁"이란 주장을 하고 싶은 듯 하다.
몹시 "아름다운" 해석이다! 그러나 한번 검증해 보자.
우선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의 종말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부터 읽어보자. {요한계시록} 21-22장의 진술이다. 중요한 모티프는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하겠다.
과연 요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았을 때, 그는
북극성 주변의 은하수와 황도12궁을 보고 묘사한 것일까?
너무 성급히 '우주론적 해석'으로 달려가지 전에, 우선 {요한계시록}의 이 묵시록적 모티프와 유사한 상징패턴을 보이고 있는 {구약성서}의 예언서 {에스겔/에제키엘} 부터 비교해서 읽어보자.
사실 {요한계시록}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제 22장의 이 구절은 히브리 예언서 {에스겔/에제키엘}의 역시 대단원을 구성하는 제 47장의 모티프에서 상당부분 온 것이다. {에스겔}의 후반부는 장차 회복된 이스라엘의 새 성전의 청사진과 영토분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과연 속설들이 주장하듯, 예수의 후광은 "예수는 태양"이라거나 혹은 "예수는 황도12궁의 주인"이란 거창한 비의를 담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신과 성인들을 꾸미는 "통상적 장식"인 걸까?
판단은 각자의 몫.
최광민
# [질문] 켈트 십자가는 황도대를 나타낸 것이다?
[답변] 최광민
"켈트 십자가가 기독교 이전 켈트족 사이에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다"는 식의 주장이 많이 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소위 '켈트 십자가 (high cross)'란 형태의 유물은 대개 기독교가 아일랜드에 전파된 "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물론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AD 5세기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주교 패트릭과 관련된 설명들에 따르면 두가지 가능한 기원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1) 성 패트릭 혹은 성 데클란이 켈트족들 섬기던 태양도상 (원) 앞에 십자가를 배치하여 그리스도가 태양신을 압도한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는 설명, (2) 혹은 역시 "원"으로 표상된 달의 여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위를 보여주려고 했다는 설명.
내가 보기엔 이 또한 일종의 도시전설에 가까와 보인다. 켈트 십자가는 당시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기독교 지역에서 사용이 증가하고 있던 "십자후광" 도상을 기반으로 켈트인들의 미적감각에 맞춰 발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게다가 "태양"이라면 또 몰라도 "황도12궁"을 암시하는 상징들이 도상 자체에 등장하지 않는다.
최광민
# [질문] 야훼는 북극성이고, 예수는 북두칠성이며, 생명수는
신의 보좌인 "북극성"에서 흘러나온다?
# [질문]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생명나무 12그루는 황도12궁과
은하수와 관련이 있다?
[답변] 최광민
이 주장은 "생명수의 강"이 "은하수"고, 생명수의 강가에 자라는 생명나무 "12그루"는 "황도12궁"이란 주장을 하고 싶은 듯 하다.
몹시 "아름다운" 해석이다! 그러나 한번 검증해 보자.
우선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의 종말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부터 읽어보자. {요한계시록} 21-22장의 진술이다. 중요한 모티프는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하겠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략]
그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고,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거기에는 열두 대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열두 대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고,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대문은 동쪽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주춧돌이 열두 개가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에게 말하던 그 천사는, 그 도성과 그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으로 된 자막대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도성은 네 모가 반듯하여, 가로와 세로가 같았습니다. 그가 자막대기로 그 도성을 재어 보니,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서로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습니다. 또 그가 성벽을 재어 보니, 사람의 치수로 백사십사 규빗이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치수이기도 합니다.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성벽의 주춧돌들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첫째 주춧돌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비취옥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또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그 대문들이 각각 진주 한 개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시의 넓은 거리는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계시록} 21장
너무 성급히 '우주론적 해석'으로 달려가지 전에, 우선 {요한계시록}의 이 묵시록적 모티프와 유사한 상징패턴을 보이고 있는 {구약성서}의 예언서 {에스겔/에제키엘} 부터 비교해서 읽어보자.
사실 {요한계시록}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제 22장의 이 구절은 히브리 예언서 {에스겔/에제키엘}의 역시 대단원을 구성하는 제 47장의 모티프에서 상당부분 온 것이다. {에스겔}의 후반부는 장차 회복된 이스라엘의 새 성전의 청사진과 영토분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가 포로로 잡혀온 지 이십오 년째가 되는 해, 예루살렘 도성이 함락된 지 십사 년째가 되는 해의 첫째 달, 그 달 십일 바로 그 날에,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아, 나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셨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 속에서 나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다가 아주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셨는데, 그 산의 남쪽에는 성읍 비슷한 건축물이 있었다. 그가 나를 그 곳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 곳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놋쇠와 같이 빛나는 모습이었고, 그의 손에는 삼으로 꼰 줄과 측량하는 막대기가 있었다. 그는 대문에 서 있었다. 그 때에 그 사람이 내게 말하였다. "사람아,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모든 것을 네 눈으로 잘 보고, 네 귀로 잘 듣고, 네 마음에 새겨 두어라. 이것을 네게 보여 주려고, 너를 이 곳으로 데려 왔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알려 주어라." 성전 바깥에는 사방으로 담이 있었다. 그 사람의 손에는 측량하는 장대가 있었는데, 그 장대의 길이는,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 되는 자로 여섯 자였다. 그가 그 담을 측량하였는데,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가 한 장대였다. --- 한국어 새번역, {에스겔} 40장
"너희가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어 유산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주께 예물로 바쳐야 한다. 그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자요, 너비는 이만 자가 되어야 한다. 이 구역 전체는 사방으로 어디나 거룩하다. 그 한가운데 성소로 배정된 땅은, 길이가 오백 자요 너비도 오백 자로서, 사방으로 네모 반듯 하여야 하고, 그 둘레에는 사방으로 너비가 쉰 자인 빈 터를 두어야 한다. 재어 놓은 전체 구역의 한가운데, 너희는 길이가 이만 오천 자요 너비가 만 자 되는 땅을 재어 놓고, 그 한가운데는 성소 곧 가장 거룩한 곳이 되게 하여라. --- 한국어 새번역, {에스겔} 40장
그 (=신)가 나를 데리고 다시 성전 문으로 갔는데, 보니, 성전 정면이 동쪽을 향하여 있었는데,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오른쪽에서 밑으로 흘러 내려가서,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갔다. 또 그가 나를 데리고 북쪽 문을 지나서, 바깥으로 나와, 담을 돌아서, 동쪽으로 난 문에 이르렀는데, 보니, 그 물이 동쪽 문의 오른쪽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그가 줄자를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 보라고 하기에, 건너 보니, 물이 발목에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 보라고 하기에, 건너 보니,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 보라고 하기에, 건너 보니,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그가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는 물이 내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쳐서나 건널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물은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사람아, 네가 이것을 자세히 보았느냐?" 그런 다음에, 그가 나를 강가로 다시 올라오게 하였다. 내가 돌아올 때에는,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그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해의 진펄과 개펄은 깨끗하게 고쳐지지 않고, 계속 소금에 절어 있을 것이다. 그 강가에는 이쪽이나 저쪽 언덕에 똑같이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 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그 열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쓸 것이다." --- 한국어 새번역 {에스겔} 47장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제로 하는 {에스겔}과 "장차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제로 하는 {요한계시록}의 해당 테마는 매우 흡사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우선 에스겔의 새 성전을 둘러싼 외벽은 정방형이다. 야훼는 배분될 영토의 정중앙에 정방형의 성소를 성별해 떼어둘 것을 명령한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역시 정방형이다. 네모 반듯한 모양에 각 면에 3개씩의 문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북극성과 황도12궁을 보고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이라면, 수 백년 전 에스겔도 북극성과 황도12궁을 보고 새 성전에 대한 저런 묘사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에스겔과 요한의 묘사가 저렇게 유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에스겔의 묘사는 천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에스겔} 47장과 48장의 새 성전과 이스라엘 지역의 "지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스겔의 진술과 몹시 흡사한 요한의 묘사가 에스겔의 모티프와 전혀 상관없는 황도12궁을 묘사한 것으로 보긴 곤란해진다.
{에스겔}서의 상당히 세부적인 묘사에 기초해 '새 성전'의 형태를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이 정방형의 외벽을 가지고 후방으로 지성소가 배치된 구조물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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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가 자세하지 않아 재구성이 어려운 '새 예루살렘'은 에스겔의 성전과 유사한 구조체일 수도, 정육면체일 수도, 혹은 피라밋 구조체를 염두해서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에스겔의 '새 성전'과 같은 배치를 요한이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아래 그림은 각뿔 형태로 추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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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에스겔과 요한 모두 외벽이 "정방형" 구조인 구조체를 묘사했다. 특별히 요한의 경우, '새 예루살렘'의 정방형 외벽엔 3개씩의 문이 있다고 했다. 이를 도상화 해보자. 만약 정방형 구조를 각 면당 3개씩 규균등하게 분할하게 되면 모서리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 요한이 묘사하고자 한게 황도12궁이라면, 도대체 왜 요한은 원형의 '새 예루살렘'이 아닌 정방형 구조체를 언급한 것인가?
다음은 '신과 어린 양의 보좌'와 '생명수의 강'에 대해 살펴보자.
에스겔이 본 그 강물은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솟아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의 우측에서 땅 밑으로 들어가 제단의 남쪽으로 지나간 후 동쪽 문의 오른쪽을 통해 솟아 나왔다. 혹시 이게 '은하수'에 대한 것일까? 그렇게 보긴 곤란하다. 강물은 이를 수원으로 해서 '아라바 바다', 즉 사해를 향해 동남쪽으로 흐른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에는 따로 성전이 없다. 신과 그 어린 양이 바로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과 어린 양의 보좌들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새 예루살렘" 도성의 가운데를 관통해 흘러간다. 역시 '한 방향'이라고 보는게 적절할 것이다.
그럼 신의 보좌는 "북극성"이란 주장?
어두운 곳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밤 중에 북극성을 찾은 후 그 주변부터 시작해서 은하수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찾아보자. "북극성이 신의 보좌이고 북극성 주변의 북두칠성이 어린 양의 보좌"라 쳤을 때, 그럼 은하수는 어디에 있는가?
아래는 AD 100년 7월 18일 자정 무렵의 북천이다. 여기서 Zenith는 천구와 관측자의 머리 위가 만나는 점이고, NCP는 북극성이 있는 지점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천구 상의 실제 "북극"이다. 회색으로 표시된 것은 은하수 및 그 경계면이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파트모스의 요한" 혹은 다른 "요한"이 정말로
북쪽 하늘을 보고 {요한계시록} 22장을 기록했다면, 바로 이것이 그
하늘이다.
자, "은하수 (생명수?)"는 "북극성 (신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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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은하수도 동에서 떠서 서로 지기 때문에, 자정부터 5시간이 지난 새벽 동트기 전의 북극성 주변과 은하수 위치를 보자.
자, 과연 "은하수 (생명수?)"는 "북극성 (신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가?
{에스겔}의 성전 문지방, {요한계시록}의 신과 어린 양의 보좌는 생명수의 "수원지"다. 하지만 북극성은 은하수 근처에는 있어도 은하수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아울러 그 끝점에 있지도 않다. 요한은 과연 저런 배치를 보고 북극성을 신의 보좌라고 이해했을까?
그럼 위 주장에서 "어린 양의 보좌는 북두칠성"이란 주장은?
아래 북극성 (Polaris) 곁의 북두칠성의 위치, 그리고 은하수의 위치를
확인하자. 북두칠성이 {요한계시록}의 '예수/어린 양의 보좌'라면, 그
'보좌'는 '성부의 보좌 = 북두칠성' 바로 우편에 있어야 한다. 그럼
'생명수'인 은하수는 '성부의 보좌'인 북극성과 '성자/예수의 보좌'인
북두칠성에서 '흘러나오'는가?
;;
은하수는 황도12궁과 같은 축에 있지 않다는 점도 설명해야 겠다. 태양이
지나는 황도면 (ecliptic plane)은 은하계 축 (galatic plane)과는 60도
기울어져 있다. 즉, 황도12궁은 저렇게 기울어져 있고, 태양은 황도면을 통해
1년 동안 움직이기 때문에 태양이 머무는 성좌의 마주하는 별자리만 밤
시간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계절마다 다른 구성을 만나게
된다.
요한이 황도12궁과 북극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란 진술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보좌에 앉은 신 (북극성)이 빛을 비추는가?
그런데 밤에 나가서 북극성과 은하수의 뜨고 지는 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해당 계절에 볼 수 있는 황도12궁 별자리들이 간밤에 뜨고
지는 것을 알 것이다. 지평선 아래 있는 별자리들엔 신이 빛을 비추지
않는다고 봐야 하는건가? 게다가 '새 예루살렘'이 '해와 상관없다면',
도대체 요한은 왜 '해와 밀접한' 황도12궁을 '새 예루살렘'과
연관지었겠는가?
다름으론 '생명수의 강'이 '은하수'란 주장과 '생명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에스겔이 묘사한 나무들과 요한이 묘사한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가를 따라 양쪽에 무성히 자라는 다수의 과일나무들이었고, (1)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2) 그 잎이 약재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다시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어보자.
원문 상에서 보면, 신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낙원의 중앙을 관통하는
생명수의 강변 "여기 저기 ἐντεῦθε καὶ ἐκεῖθενν"에 생명나무가 있고,
그 나무들에서 계절마다 12종의 열매가 열린다.
원문 상으론 몇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생명나무"는 "단수"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여러 나무들을 "생명나무"란 그룹으로 묶어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해석이 옳은가? {에스겔}에 유사한 해석은 해석#2 또는 #3이다. 이 결론에 따라 "황도12궁 = 생명나무"설은 사활을 달리할 것이다.
최광민
# [질문] 12제자와 황도12궁의 관련성?
# [답변] 최광민
§ 예수 vs 오리온
# [질문]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에 대한 비유 중 오른손에 입곱 별을 들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 "요한은 밤하늘을 보았고 요한의 기준에서 오른쪽은 오리온 자리 기준에서 왼쪽이고 오리온의 왼쪽은 7개의 별을 들고 있고 또한 많은 것이 맞아 떨어지므로 예수는 오리온 자리이다" ?
[답변] 최광민
일단 {요한계시록}의 해당 단락을 읽자. 강조할 부분을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한다.
오리온 자리의 별들을 한번 보자. 아주 깜깜한 곳이라면 7-8등성의 별까지 맨눈으로 관측 가능하다.
"처음 사랑을 버"렸기에 소아시아 7교회 가운데서 탈락될 수 있다는
유일한 예수의 경고를 받은 "에페소스"의 교회는 사실은 육안으론
가물가물한 별 플레이오네인 것이다 !!!!!
게다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7교회가 소아시아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지 지도를 한번 보자.
오리온의 방패/사자가죽에 위치한 오른쪽의 별들은 대략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자, 내가 이렇게 장난삼아 만든 이론도 상당히 그럴듯 하지 않은가? 최소한 오리온의 '사자가죽/방패' 보다야 훨씬 그럴듯 하다고 장담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사실....플레이아데스의 7별과 소아시아의 7교회의 위치는 완전이 일치하진 않는다.)
이런 류의 주장들이 내세우는 소위 근거들이란 대개 이런 식으로 덜컹거린다는 점을 기억하자.
# [질문] 기독교에서 오직 예수만 말하는 이유는 플레이아데스? 안드로메다?가 천국인데 그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오리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가 논증한 바와 같이 저 오리온이 {요한계시록}의 "그 예수"가 아니라면, "예수=오리온"이란 주장에 근거한 추가적인 어떤 주장도 무의미해지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성도를 보자.
오리온자리 - 황소자리 - 플레이아데스 성단 - 안드로메다 은하 M33"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란 기독교의 주장이 위의 천문도에서 왔다 치자. 그럼 "죄인"이던 "어디에서"부터 "예수/오리온"을 거쳐 천국 (플레이아데스나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걸까?
앞서 "플레이아데스 = 7교회" 같은 식으로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런 "별 볼일 있는" "신화", 혹은 "신화적 해석"들을 지어낼 수 있다.
# [질문] 오리온 자리의 벨트인 별 3개는 동박박사이다?
[답변] 최광민
예전에 설명했다.
최광민
# [질문] 예수는 금성이다?
{요한계시록}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다름으론 '생명수의 강'이 '은하수'란 주장과 '생명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에스겔이 묘사한 나무들과 요한이 묘사한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가를 따라 양쪽에 무성히 자라는 다수의 과일나무들이었고, (1)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고 (2) 그 잎이 약재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다시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어보자.
1καὶ ἔδειξέν μοι ποταμὸν ὕδατος ζωῆς λαμπρὸν ὡς κρύσταλλον, ἐκπορευόμενον ἐκ τοῦ θρόνου τοῦ Θεοῦ καὶ τοῦ Ἀρνίου. 2ἐν μέσῳ τῆς πλατείας αὐτῆς καὶ τοῦ ποταμοῦ ἐντεῦθεν καὶ ἐκεῖθεν ξύλον ζωῆς ποιοῦν καρποὺς δώδεκα, κατὰ μῆνα ἕκαστον ἀποδιδοῦν τὸν καρπὸν αὐτοῦ, καὶ τὰ φύλλα τοῦ ξύλου εἰς θεραπείαν τῶν ἐθνῶν. 3καὶ πᾶν κατάθεμα οὐκ ἔσται ἔτι. καὶ ὁ θρόνος τοῦ Θεοῦ καὶ τοῦ Ἀρνίου ἐν αὐτῇ ἔσται, καὶ οἱ δοῦλοι αὐτοῦ λατρεύσουσιν αὐτῷ, 4καὶ ὄψονται τὸ πρόσωπον αὐτοῦ, καὶ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πὶ τῶν μετώπων αὐτῶν. 5καὶ νὺξ οὐκ ἔσται ἔτι, καὶ οὐκ ἔχουσιν χρείαν φωτὸς λύχνου καὶ φωτὸς ἡλίου, ὅτι Κύριος ὁ Θεὸς φωτίσει ἐπ’ αὐτούς, καὶ βασιλεύσουσιν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그 천사는 또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 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 --- 한국어 공동번역 {요한의 묵시록} 22장
원문 상으론 몇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단 "생명나무"는 "단수"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여러 나무들을 "생명나무"란 그룹으로 묶어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 해석#1: 생명나무는 "한 그루"이고, 그 가지는 생명수의 강 양쪽에 넓게 뻗어 있다. 이 한 그루의 생명나무에서 계절마다 한 종류의 열매가 맺힌다.
- 해석#2: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양측을 따라 수가 특정되지 않은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한 나무는 계절에 따라 12 종의 과일을 맺는다.
- 해석#3: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양측을 따라 수가 특정되지 않은 여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각 나무는 계절에 따라 한가지 과일을 맺는다.
- 해석#4: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양측을 따라 총 12그루가 있고, 한 나무는 계절마다 각각 12종의 과일을 맺는다.
- 해석#5: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양측을 따라 총 12그루가 있고, 한 나무씩 한 계절마다 한 종류의 과일을 맺어 총 12종의 과일이 열린다.
어떤 해석이 옳은가? {에스겔}에 유사한 해석은 해석#2 또는 #3이다. 이 결론에 따라 "황도12궁 = 생명나무"설은 사활을 달리할 것이다.
최광민
# [질문] 12제자와 황도12궁의 관련성?
# [답변] 최광민
이전 글로 답변을 대신한다.
[© 최광민] 예수 vs. 미트라/미트라스 #03: 미트라스의 12제자?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12.html
[©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10: 호루스의 12사도/제자?
http://kwangmin.blogspot.com/2012/11/vs-10-12.html
[© 최광민] 예수 vs. 미트라/미트라스 #03: 미트라스의 12제자?
http://kwangmin.blogspot.com/2011/09/vs-12.html
[©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10: 호루스의 12사도/제자?
http://kwangmin.blogspot.com/2012/11/vs-10-12.html
§ 예수 vs 오리온
# [질문]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에 대한 비유 중 오른손에 입곱 별을 들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 "요한은 밤하늘을 보았고 요한의 기준에서 오른쪽은 오리온 자리 기준에서 왼쪽이고 오리온의 왼쪽은 7개의 별을 들고 있고 또한 많은 것이 맞아 떨어지므로 예수는 오리온 자리이다" ?
[답변] 최광민
일단 {요한계시록}의 해당 단락을 읽자. 강조할 부분을 붉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한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의 교회로 보내라."
그래서 나는 내게 들려 오는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일곱 금 촛대가 있는데, 그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또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그가 내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본 것과 지금의 일들과 이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은 이러하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심부름꾼 (=천사)이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계시록}
오리온 자리의 별들을 한번 보자. 아주 깜깜한 곳이라면 7-8등성의 별까지 맨눈으로 관측 가능하다.
예수 무렵의 로마 작가들인 키케로와 히기누스, 좌상단이 오리온/사냥꾼이
오른팔로 곤봉을 들고 있는 모습, 우측은 왼팔로 사자가죽 혹은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 리겔을 오리온의 왼쪽 다리로 해석했다.
위 주장에서 언급된 "일곱 별"에 해당하는 영역은 오리온의 사자가죽,
혹은 방패부분에 있는 별들에 해당한다. 키케로나 히기누스는 거기에서
7개가 아닌 5개의 별을 보았다. 각 별은 아래와 같이 대응한다.
- 카파 = 좌측 무릎
- 베타 = 우측 무릎
- 에타 = 좌측 발
- 람다 레포리스 = 우측 발
- 델타-엡실론-제타 = 허리띠
- 알파 = 왼쪽 어깨
- 뮤 = 왼쪽 팔
- 카이1-2 = 왼쪽 팔의 곤봉
- 감마 = 우측 어깨
- 오미크로2 = 오리온의 오른손
- 파이1-5의 다섯개 별: 사자가죽 (키케로) 혹은 방패 (히기누스)
- 람다 = 머리
아래는 이에 바탕해 요한 바이엘이 1603년에 출판한 성도
{우라노메트리아}의 오리온이다.
지구 방향에서 보면 아래와 같이 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리겔을 오리온의 "왼쪽 다리"라고 했으니까 그
설명대로라면 지상에서 보면 정면을 바라보게 그려진다.
{요한계시록}으로 다시 가보자
예수가 "오른손"에 사자가죽/방패에 해당하는 위치의 별들을 쥐고 있으려면, 그 예수는 (1) 요한 바이엘의 도판에서 처럼 요한에게 계속 등을 돌리고 있거나, (2) 팔을 X자로 뒤틀어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가 요한을 바라보고서 오른손에 저 별들을 쥐려면 요가 자체를 취해야 한단 뜻이 된다.
이번에는 예수가 오른 손에 쥔 7개의 별이 과연 오리온의 사자가죽/방패에 대응하는지 보자.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한다
또 다른 중세의 라틴 경구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뜻.
사실 나 같으면 오리온이 아니라 "플레이아데스의 7별"을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란 "신화"를 하나 만들어 내겠다. 그게 훨씬 더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고대에 "7별"을 이야기할 땐 누구나 (1) 북두칠성 아니면 (2)
플레이아데스를 연상했다. 그런데 플레이아데스는 7별이긴 한데, 그 중 한
별은 시상에 따라 맨눈으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일반인은 5/6등성 정도까지만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7별을 잘 보이는 순으로 나열하면 Alcyone=2.8 >
Atlas=3,64 > Electra=3.71 > Maia=3.88 > Merope=4.18 >
tygetta=4.32 > Pleione=5.09 인데, 이중 플레이오네는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2장을 기억하는가?
Johann Bayer’s 1603 star atlas Uranometria
오리온 허리띠의 방향을 보면 알겠지만 아래 요하네스
헤벨리우스의 이 성도는 좌우가 역전되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지구에서 바라 본 (geocentric) 모습이 아니라 천구에 투영된 (즉,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럼 지구
방향에서 보면 오리온이 정면을 응시하겠고, 방패/사자가죽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게 된다.
Johannes Hevelius, Prodromus Astronomia, volume III: Firmamentum Sobiescianum, sive Uranographia, table QQ: Orion, 1690.
{요한계시록}으로 다시 가보자
요한은 예수의 음성을 "뒤"에서 들었는데,
"자신을 향해 말하는" 예수를 보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예수의 "정면"을 봤고, 예수 역시 요한에게 (정면에서) 오른손을 얹었다. 그러니까 예수의 자세는 위의 요한 바이엘의 1603년
도판처럼 등을 돌리고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첫
장에서 예수와 요한은 각각 등을 돌리고 있다가 둘이 동시에 뒤돌아
보는 다소 코믹한 구도를 연출해야 한다.
따라서 요한이 하늘의 "오리온 별자리"를 본 것이라면, 위의 {Urania's
Mirror} 성도와 같은 자세이어야 한다. 그럼 저 도상에서
오리온/예수는 어느 손으로 소위 "일곱 별"을 쥐고 있어야 할까?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다. 그런데 예수 본인은 " τῆς (정관사) δεξιᾶς (오른손) μου (내) "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예수가 "오른손"에 사자가죽/방패에 해당하는 위치의 별들을 쥐고 있으려면, 그 예수는 (1) 요한 바이엘의 도판에서 처럼 요한에게 계속 등을 돌리고 있거나, (2) 팔을 X자로 뒤틀어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가 요한을 바라보고서 오른손에 저 별들을 쥐려면 요가 자체를 취해야 한단 뜻이 된다.
이번에는 예수가 오른 손에 쥔 7개의 별이 과연 오리온의 사자가죽/방패에 대응하는지 보자.
사자가죽/방패에 해당하는 부분엔 이런 저런 별들이 6등성까지 있다.은
지역에서 키케로나 히기누스는 5개의 별을 보았지만, 물론 더 어두운
별은 많다. 그럼 거기서 요한은 적당히 7개를 골라내서 "일곱
별"이라고 자의적으로 지칭한 걸까? 바로 이게 이 주장의 트릭이
아닐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요한계시록}의 저 예수가 오리온 별자리에 대응될
수 있다는 것일까? {요한계시록}의 화자인 예수를 오리온과 한번 맞춰
보자.
- 예수는 일곱 금 촛대 한 가운데 있었다.
- 오리온 자리를 둘러싼 어떤 별들? 플레이아데스?
- 플레이아데스 (=7자매)는 오리온을 둘러싸고 있지도 근처에 있지도 않음
-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 맨눈으론 거의 안보이는 바나드 루프?
-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 오리온의 허리띠가 왜 가슴띠로?
-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 육안으론 흔적 정도를 감지할 정도인 람다 오리오니스 성운?
- 눈은 불꽃과 같고,
- 람다 오리오니스 성운?
-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 사이프와 리겔?
-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 해석불가
- 또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 오리온의 사자가죽/방패에 해당하는 별은 도대체 몇개?
-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오고,
- 오리온의 칼은 입이 아니라 허리춤에 있음
-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 람다 오리오니스?
저 예수가 오리온으로 해석될 단서는 몇개나 될까? 아래는 장노출
사진에서 바나드 루프나 람다 오리오니스 같은 성운들이 포착된 사진.
https://www.go-astronomy.com/constellations.php?Name=Orion
하지만 카메라 단노출로 촬영해 보면 이보다 훨씬 초라하다. 게다가
실제 맨 눈으론 이것의 1/10도 보이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천리안이거나 갈릴레오 이전에 망원경과 카메라라도 만들었단
말일까?
https://eastexastronomy.blogspot.com/2010/08/orion.html
점들이 많을 땐 원하는 패턴을 마음대로 연결해 골라낼 수 있다. 가령,
내가 찍은 달 전체 사진에서 찾아낸 패턴들을 보도록 하자.
어렵지 않게 옥토끼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옥토끼를 찾았다.
© 최광민
Cognitum. est in cognoscente secundum modum cognoscentis
인식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다.
또 다른 중세의 라틴 경구는 이렇게 경고한다.
Quidquid recipitur ad modum recipientis recipitur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은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에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뜻.
사실 나 같으면 오리온이 아니라 "플레이아데스의 7별"을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란 "신화"를 하나 만들어 내겠다. 그게 훨씬 더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왜?
{요한계시록} 2장을 기억하는가?
"에베소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냈으며, 낙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계시록}
게다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7교회가 소아시아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지 지도를 한번 보자.
오리온의 방패/사자가죽에 위치한 오른쪽의 별들은 대략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그럼 이번에는 플레이아데스를 보자.
플레이데스의 7별은 저 7교회처럼 "뭉쳐있다". 소아시아 해상의
파트모스섬에서 "요한"이 소아시아 지역의 7교회를 대상으로 쓴
문건에서 7교회가 오리온의 별들 처럼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는 식의
지리상의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다.
자, 내가 이렇게 장난삼아 만든 이론도 상당히 그럴듯 하지 않은가? 최소한 오리온의 '사자가죽/방패' 보다야 훨씬 그럴듯 하다고 장담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사실....플레이아데스의 7별과 소아시아의 7교회의 위치는 완전이 일치하진 않는다.)
이런 류의 주장들이 내세우는 소위 근거들이란 대개 이런 식으로 덜컹거린다는 점을 기억하자.
# [질문] 기독교에서 오직 예수만 말하는 이유는 플레이아데스? 안드로메다?가 천국인데 그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오리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가 논증한 바와 같이 저 오리온이 {요한계시록}의 "그 예수"가 아니라면, "예수=오리온"이란 주장에 근거한 추가적인 어떤 주장도 무의미해지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성도를 보자.
천국 (플레이아데스?)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 (오리온?) 뿐이다??
오리온자리 - 황소자리 - 플레이아데스 성단 - 안드로메다 은하 M33"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란 기독교의 주장이 위의 천문도에서 왔다 치자. 그럼 "죄인"이던 "어디에서"부터 "예수/오리온"을 거쳐 천국 (플레이아데스나 안드로메다?)로 간다는 걸까?
플레이아데스에서 오리온 방향으로 선을 그으면 시리우스를 품고 있는
"개자리"가 나온다. 사실 이 '시리우스'는 지중해 권에서는 고대로
부터 "개 별"로 불렸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도 오리온의 '개'로
명시되어 있다.
그럼 이 의미는 "개 같은" 죄인은 예수 (=오리온)를 통해서만 구원 (=플레이아데스)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일까? 그러고 보니, 예수에게 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청하며 "가나안 여인"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 먹습니다" !!!
개 (인간? 신자?)에서 오리온 (예수?)을 거쳐 플레이아데스 (천국?)으로?
그럼 이 의미는 "개 같은" 죄인은 예수 (=오리온)를 통해서만 구원 (=플레이아데스)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일까? 그러고 보니, 예수에게 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청하며 "가나안 여인"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 먹습니다" !!!
그럼 플레이아데스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 (M33) 까지 가는데 "방해가
되는 황소자리나 "히아데스" 성단의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혹시.....
개/죄인 (시리우스) --> 예수 (오리온) --> 예수의 희생
(유대교의 황소 번제) --> 천국 (플레이아데스) ????
내가 지어냈지만 참 그럴 듯 한 설명이다. 문제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희생은 '어린 양'의 '희생제물'로 상징되지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걸로 표상되지는 않는다는 점.
내가 지어냈지만 참 그럴 듯 한 설명이다. 문제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희생은 '어린 양'의 '희생제물'로 상징되지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걸로 표상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럼 또 이렇게 바꿔볼까?
아, "황소자리 = 모세율법의 희생제물 = 유대교"이니 이건 "오직 예수를 따라 낙원을 가는데 방해가 되는 유일한 장애물은 유대교다!" 라고 해석해야 할까? 사실은 오리온과 '황소'가 직접 그리스 신화 상에서 연결되지는 않지만, 원래 저 두 별자리의 원조는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쉬와 길가메쉬가 때려죽이는 하늘의 황소"였다. (바로 그 수메르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왔다!!) 즉, 예수는 '길가메쉬'고 "예수/기독교는 모세+유대교를 때려잡는다"???
아, "황소자리 = 모세율법의 희생제물 = 유대교"이니 이건 "오직 예수를 따라 낙원을 가는데 방해가 되는 유일한 장애물은 유대교다!" 라고 해석해야 할까? 사실은 오리온과 '황소'가 직접 그리스 신화 상에서 연결되지는 않지만, 원래 저 두 별자리의 원조는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쉬와 길가메쉬가 때려죽이는 하늘의 황소"였다. (바로 그 수메르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왔다!!) 즉, 예수는 '길가메쉬'고 "예수/기독교는 모세+유대교를 때려잡는다"???
앞서 "플레이아데스 = 7교회" 같은 식으로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런 "별 볼일 있는" "신화", 혹은 "신화적 해석"들을 지어낼 수 있다.
솔직히 "별"로 어렵지도 않다.
최광민
최광민
# [질문] 오리온 자리의 벨트인 별 3개는 동박박사이다?
[답변] 최광민
예전에 설명했다.
- [© 최광민] 예수 vs. 호루스 #5: 호루스의 탄생을 알린 세 명의 왕/현자?
- http://kwangmin.blogspot.com/2012/01/vs-5.html
"천궁"은 3차원 구면이다. 저런게 하늘에 대고 일자로 줄을 긋는
식으로 고대 점성가/천문학자들이 천문을 읽지도 않았다. 그들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
# [질문] 예수는 금성이다?
{요한계시록}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ἐγὼ ἰησοῦς ἔπεμψα τὸν ἄγγελόν μου μαρτυρῆσαι ὑμῖν ταῦτα ἐπὶ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ἐγώ εἰμι ἡ ῥίζα καὶ τὸ γένος δαυίδ, ὁ ἀστὴρ ὁ λαμπρὸς ὁ πρωϊνός.
Ego Jesus misi angelum meum testificari vobis hæc in ecclesiis. Ego sum radix, et genus David, stella splendida et matutina.나 예수는 나의 천사를 너희에게 보내어, 교회들에 주는 이 모든 증언을 전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그의 자손이요, 빛나는 샛별이다." --- 한국어 새번역, {요한계시록} 22장
물론 원어에서 ὁ ἀστὴρ (별) ὁ λαμπρὸς (빛나는) ὁ πρωϊνός
(아침), 즉 '샛별'이다.
그래서?
"예수는 샛별이다"와 "샛별은 예수다"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문장이
아니다. 전자는 예수의 속성을 설명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진술이 점성학적으로, 혹은 "천문학"적으로 어떤 은밀한 암시라도
있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런 거창한 우주적 담론을 논하기 전에, 저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늘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아마도 천문에 호기심 많은
고대인이 이런 주장을 들었다면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 같다.
{요한계시록}의 예수가 천문학/점성학적 코드를 가졌다면,
그럼 예수는
- '태양'이라면서
- 그와는 천궁에서 따로 노는 '오리온'?
- 게다가 또 금성?
- 또 북두칠성?
- 그 오리온/예수의 허리는 동방박사라면서
- 그 오리온/예수의 허리 춤의 동방박사가 몸통인 예수에게 경배?
- ....
정말로 기독교의 경전이 작성되던 시기 {복음서}나 {요한계시록}을 작성한
저자들이 기독교 내부 그룹 내에서 저런 점성/천문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그런 천문적 단서들을 {복음서}나 {오한계시록}에 의도적으로
삽입했다면, 적어도 그 단서나 해석들끼리는 서로 상상부분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라. {요한계시록}만 보더라도 저런 "그럴 듯한 해석"들이
따로 놀지 않는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그럴 듯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개만
함께 놓고 봐도 서로 모순된다는 걸 금새 알게 된다. 물론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천문학 돌팔이였거나 편집증 환자, 혹은 집중장애환자 였다면 나름
설명될 수 있을 지도.
이런 비일관성은 이 계열 뉴에이지적 주장들에 꽤 흔하다. 그들의 소위 '증거'를
한번에 한개씩만 보면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몇가지를 함께 묶어서
보게되면 그 비일관성은 그들 자신의 논리 자체를 붕괴시킨다.
'황도12궁'과 관련된 이런 주장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현상은 1년 내내 늘 있는
"반복되는" 현상이란 점이다. 따라서 특별히 단선적 시간관을 가진
유대교/기독교에서, 또한 '종말론적 징조'란 맥락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의미'를 가지려면 '드믄 현상'들에 촛점을 두었어야 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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