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광민] {갈라디아서} 1-2장은 후대에 가필/위조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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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철학

[© 최광민] {갈라디아서} 1-2장은 후대에 가필/위조 되었을까?

草人! 2021. 12. 23. 12:53
작성

© 草人 최광민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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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광민] {갈라디아서} 1-2장은 후대에 가필/위조 되었을까?

순서
  1. 시노페의 마르키온
  2. 하르낙의 가설
  3. 교부들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의 진술


{에페소서} 말미와 {갈라디아서} 초입 파피루스 사본, AD 2세기 중/후반


# 시노페의 마르키온

혹자는 소아시아에서 그노시스적 이단을 창시한 AD 2세기 초반 시노페의 마르키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바울서신인  {갈라디아서}에는 제 1장에 등장하는 바울의 제 1차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가 발견되지 않으며 (따라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 역시), 또 제 2장에 등장하는 AD 48년의 예루살렘 방문이 "두번째" 방문이란 언급이 없으니, 제 1차 방문 일화는 사실이 아니며 해당 부분은 후대의 가필/조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설명에 앞서, 이단자 마르키온파가 사용한 {신약성서} 텍스트를 이런 주장들의 "증거"로 내세우기 전에 마르키온파의 그노시스적 교리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그는 고대로부터 성서의 텍스트 원문을 그의 교리에 따라 과감하게 "삭제"해 편집한 것으로 일관적으로 알려졌다. 





마르키온은 영/육 이원론의 그노시스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독교로부터 유대교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려고 했다. 따라서 예수의 아버지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저급한 물질적 우주"의 창조자일 수가 없었다. 그가 한 작업은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은 전혀 다른 신이며, 기독교는 유대교의 연속선 상에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유대교의 전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고 본 예수의 사도들을 배제하고, 오직 바울 만이 "진리"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았다. 유대교적 요소가 많은 {마태오 복음서}나 {마르코 복음서}는 통으로 배제되고, 대신 바울의 오랜 동역자였던 루가가 이방인을 주요 독자로 쓴 {루가의 복음서}를 편집한 소위 {마르키온 복음서}와 표준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라오디게아서}를 포함한 10편의 바울의 서신들 만을 정경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마르키온은 자신의 교리와 상충되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했다. 특별히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는 신과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지 예수의 사도들이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있는 {갈라디아서}는 마르키온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신학적 주장을 뒷받침할 최고의 변증서로 여겨졌다. 

이레네우스의 {이단반박} 1권 27장에서 인용한다. 

2. Marcion of Pontus succeeded him, and developed his doctrine. In so doing, he advanced the most daring blasphemy against Him who is proclaimed as God by the law and the prophets, declaring Him to be the author of evils, to take delight in war, to be infirm of purpose, and even to be contrary to Himself....

폰투스의 마르키온은 그 (=케르도)를 계승해서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마르키온은 모세율법과 예언자들이 신으로 선포한 분을 대적하는 가장 가공할 만한 신성모독으로 나아갔는데, 그는 그 분을 모든 악의 원인이자 전쟁을 즐기고 의지가 박약하며, 심지어 스스로에게 모순되는 존재라고 선언한 것이다.....

.....Besides this, he mutilates the Gospel which is according to Luke, removing all that is written respecting the generation of the Lord, and setting aside a great deal of the teaching of the Lord, in which the Lord is recorded as most dearly confessing that the Maker of this universe is His Father. He likewise persuaded his disciples that he himself was more worthy of credit than are those apostles who have handed down the Gospel to us, furnishing them not with the Gospel, but merely a fragment of it. 

[중략[.... 이외에도 그는 {루가의 복음서}를 난도질했는데, 주님의 족보와 관련된 부분을 삭제하고 우주의 창조자가 그의 아버지라고 진실로 고백하는 내용을 담은 주님의 가르침 상당부분을 삭제했다. 

In like manner, too, he dismembered the Epistles of Paul, removing all that is said by the apostle respecting that God who made the world, to the effect that He is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also those passages from the prophetical writings which the apostle quotes, in order to teach us that they announced beforehand the coming of the Lord.

[중략]... 이런 식으로 마르키온은 바울의 서신서도 난도질했는데,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설명한 부분, 따라서 그가 우리 주님의 아버지라고 쓴 부분, 그리고 우리 주님의 도래가 예언되어 있다고 그 사도 (=바울)이 인용한 (구약의) 예언서 구절들을 삭제했다.......  ---- 이레네우스, {이단반박} 제 1권 27장 / 번역: 최광민



마르키온의 {갈라디아서}에는 AD 37년 제 1차 예루살렘 방문 일화가 없다는 식의 주장은 아돌프 하르낙의 주장을 받아서 크리스토퍼 에반스가 재차 주장했는데, 이 설명은 정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가설이다. 게다가 이들의 주장은 "마르키온이 {갈라디아서}에서 해당 부분을 삭제했을 것이다"란 취지이지, {갈라디아서}에 원래 그 부분이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기독교 이단들의 교리를 정리하고 반박한 AD 2세기 말의 루그두눔 (리옹) 주교 이레네우스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그리고 AD 4세기의 살라미스 주교 에피파니우스는 마르키온파가 "변조"한 {신약성서} 문건들을 그들의 책에 인용의 형식으로 옮기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마르키온파가 그들의 교리에 맞춰 성서를 어떻게 변조 (주로 삭제) 했는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데 있었다.  

그런데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는 바울의 제 1차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에 해당하는 {갈라디아서} 1:18-24절에 대해 그들의 책들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 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 (1) 하르낙/에반스의 생각처럼 "마르키온파의 {갈라디아서}엔 이 부분이 없다" 혹은 "마르키온파가 해당 부분을 삭제했다"라고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 (2) "보편교회의 {갈라디아서}와 마르키온파의 {갈라디아서}의 해당부분이 다르지 않기에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에피파니우스가 해당 단락을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이해해야 할까? 

내용이 같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게 훨씬 타당한 해석이다. 




또, "이레네우스가 마르키온을 비판하면서 인용했던 라틴어 사본에는 갈라디아서 2장 1절 "14년 후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구절에서 "다시"가 빠져 있"으니 {갈라디아서} 제 1장의 예루살렘 방문은 허구이고, 제 2장의 방문이 바울의 첫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디선가 읽었다.

상당히 엉뚱한 주장이다. 

우선, 이레네우스의 5권짜리 {이단반박}은 원래 AD 180년 경에 그리스어로 씌여진 것이지만, 이후 라틴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는 점.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리스어로 된 사본은 파편적으로만 남아있고, 현재 가장 온전한 형식을 취하는 것은 라틴어 번역본이란 점을 먼제 명시해 두겠다. 즉, 현재 라틴어 본은 '번역'이란 점을 기억해 두자.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이단반박} 제 3권 13장에서 이레네우스 본인이 인용한 {갈라디아서} 2장을 라틴어 사본에서 직접 인용해 보겠다. 이 단락에서 이레네우스는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대립한 듯한 "마르키온 버전의 바울"을 반박하면서, 사도들과 바울이 같은 신과 같은 복음을 전파했다는 보편교회의 설명을 뒷받침 하려고 했다.

Quoniam autem his qui ad apostolos uocauerunt eum de quaestione acquieuit Paulus et ascendit ad eos cum Barnaba in Hierosolymam, non sine cause sed ut et ab ipsis libertas | gentilium confirmaretur, ipse ait in ea quae est ad Galatas epistola: Deinde post XIIII annos ascendi Hierosolymam cum Barnaba, adsumens et Titum.

그러나 바울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사도들을 만날 것을 요청받은데 동의하고 예루살렘에서 바르나바와 함께 사도들을 만났는데, 이것은 이방인들의 자유를 그들에게 승인 받기 위한 이유 때문이었다. 본인이 {갈리디아서}에 "14년 후,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티토스를 데리고 올라갔습니다"라고 썼다.

"다시"가 여기 없을까? 해당 라틴어를 번역해 보자.

Deinde post XIIII annos ascendi Hierosolymam cum Barnaba, adsumens et Titum.

Deinde (그 다음
) post (후) XIIII (십사) annos (년) ascendi (올라갔다) Hierosolymam (예루살렘으로) cum (함께) Barnaba (바르나바), adsumens (데리고) et (그리고) Titum (티토스)

다음으로 아래는 이에 대응하는 {갈라디아서}의 표준 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불가타} 원문이다. 이 라틴어 번역은 이레네우스 당시에서 2세기 후의 번역이라 단어와 문장구조가 약간 다르다.

ἔπειτα διὰ δεκατεσσάρων ἐτῶν πάλιν ἀνέβην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μετὰ βαρναβᾶ, συμπαραλαβὼν καὶ τίτον·

Deinde post annos quatuordecim, iterum ascendi Jerosolymam cum Barnaba, assumpto et Tito.

바로 여기 쓰인 그리스어 ἔπειτα, 라틴어 deinde는 "~그후", "그 다음" 이란 뜻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그 다음 14년 후"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일까? 

{갈라디아서} 제 1장을 고려해 볼때, 제 2장의 예루살렘 방문은 "첫번째 방문"에 이어 "14년 후"의 "두번째 방문"이라고 이해하는게 훨씬 타당하다. 따라서 그 앞장에 AD 37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난 이야기가 마르키온의 {갈라디아서}에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추정가능하다. 


草人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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