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최광민 2001-09-17
제목
[© 최광민]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 하지만 감히 회개하라고 하진 마세요
(번역: 최광민)
순서
- 9/11 사태 1주일 경과
-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 하지만 감히 회개하라고 하진 마세요 (번역: 최광민)
원문 : God Bless America, But Don't You Dare Tell Us To Repent!
작가 : Rev. James White (2001년 9월 15일)
작가 : Rev. James White (2001년 9월 15일)
번역 : 최광민
# 9/11 사태 후 1주일
2001년 9월 11일 후 인터넷을 써핑하면서 9/11 사태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하던 중,
우연히 미국의 한 목사가 쓴 글을 발견했다. 그런데 왠걸. 이 목사는 겁도 없이
북한이나 이란이나 이라크가 아닌 미국을 "사악(evil)"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
목사는 아리조나의 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제임스 화이트란 이름의 침례교단
목사이자 기독교 변증가로서, 그의 홈페이지를 보면 매우 보수적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쾌한 인물인 듯하다 (http://aomin.org/James.html). 그는 다른
종교, 특별히 타종교, 이단 및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공개토론을 통한 기독교
변증활동을 벌이는 듯 하다.
이 제임스 화이트 목사는 이른바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교리적으로 본다면 그는 매우 강경한 근본주의자다. 하지만 흔한 오해와는 달리, 미국의 근본주의에는 정치와 결합된 형태의 정치적 우파의 근본주의 단 한가지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주의는 "어느 수준까지의 근본"을 말하느냐에 따라서 종교와 국가가 가지는 관계를 보는 입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어떤 그룹의 근본주의자들은 오히려 비애국적으로 호도되기도 하며, "근본"의 정도에 따라서는 절대적 국가관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있어 국가의 가치는 상대적이고 그들의 종교적/윤리적 잣대에 따라 달라진다. (나 역시 국가나 민족을 그 자체로서 절대시 하지 않는다.)
이 제임스 화이트 목사는 이른바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 교리적으로 본다면 그는 매우 강경한 근본주의자다. 하지만 흔한 오해와는 달리, 미국의 근본주의에는 정치와 결합된 형태의 정치적 우파의 근본주의 단 한가지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주의는 "어느 수준까지의 근본"을 말하느냐에 따라서 종교와 국가가 가지는 관계를 보는 입장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어떤 그룹의 근본주의자들은 오히려 비애국적으로 호도되기도 하며, "근본"의 정도에 따라서는 절대적 국가관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있어 국가의 가치는 상대적이고 그들의 종교적/윤리적 잣대에 따라 달라진다. (나 역시 국가나 민족을 그 자체로서 절대시 하지 않는다.)
화이트 목사가 쓴 글의 전문을 번역해 보겠다.
원문 : God Bless America, But Don't You Dare Tell Us To Repent!
원문 : Rev. James White (2001년 9월 15일) http://vintage.aomin.org/Religiosity.html
번역 : 최광민
America's New Religiosity:
미국의 새로운 종교관:
God Bless America, But Don't You Dare Tell Us To Repent!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하지만 감히 회개하라고 하진 하세요!
Christians are unpopular folks today. I mean by that, anyone who takes seriously biblical truth and biblical principles will find himself on the sharp end of angry stares if we dare speak the truth in the midst of today's national crisis.
기독교도들은 요새 별로 인기없는 존재들이다. 성서의 진리와 원칙에 진지한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9/11이란 국가적 위기의 와중에서 올바른 말을 할
경우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되리란 뜻이다. / 번역 : 최광민
To what do I refer? America has all of a sudden gotten very religious.
There are vigils and candlelight prayer services on every corner. People who
hadn't said “God” except in profanity for years are all of a sudden very
pious and reflective. Radio personalities who were focused upon tax cuts or
some other political issue on Monday, September 10th are now mulling over
the role of “evil” in our world. The past week has turned the landscape
upside down in many ways, to be sure.
이 무슨 말인가? 미국은 갑자기 온통 종교적 열광에 빠져버렸다. 이제
저녁기도와 촛불예배가 미국 전역에 등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비속어를 쓸 때나
"신(God)"이란 단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신앙과 신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2001년 9월 10일 월요일까지만해도 세금감면과 다른 정치적 논쟁들을
떠들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이젠 우리 세계의 '사악'한 존재들에 대해
외쳐댄다. 과연 지난 주는 이 사회를 여러모로 변모시킨 계기였다.
/ 번역 : 최광민
Lest anyone think this new religiosity is a reason for rejoicing for
Christians, it most surely is not. Oh yes, we are hearing old Christian
hymns being sung. Ostensibly Christian churches were full this past Lord's
day. But there is no such thing as “partial Christianity,” nor is there any
such thing as a Christianity that stands side by side with Islam, or
Judaism, or Buddhism, and says, “We worship one God under many names.” And
surely, there is no Christianity that does not speak of repentance from sin.
The new religiosity of America has two basic foundational pillars: there is
one God, unknown, but addressable under any variety of religious epithets,
who has revealed absolutely nothing of objective value regarding His will
regarding worship or human behavior; and second, this God has no wrath;
knows nothing of sin or judgment; and hence, any person who dares to say
that God would punish a person, or a nation, is a glowing heretic to the new
American religiosity.
만약 이런 종교적 변모가 기독교도들에게 호재가 아닌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난 확실히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겠다. 물론 도처에서 오래된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텅 비었던 교회들이 지난 일요일 사람들로 가득차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토막 난 기독교거나 혹은 이슬람교 - 유대교 - 불교 - 기독교 등의 종교들이 "신의 이름은 달라도 결국 한 신을 믿는다"는 식으로 믿는 형태의 종교관일 뿐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기독교는 거기에 없다. 오늘날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은 두개의 기둥 위에 서있다. 한 입장은 종교적 자유주의로서, 신은 미지의 존재요 어느 종교를 통해서나 이 신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신은 자신을 신앙하는 방식이나 자신의 의지에 대한 어떤 절대적이고 객관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의 입장에서의 이 신은 좀체 분노하지도 않고, 죄나 심판에 대해 상관조차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군가 '개인이나 혹은 나라를 심판하는 신'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 새로운 미국적 종교관은 그를 '이단'으로 규정할 것이다. / 번역 : 최광민
The problem is easily seen: Christians believe, fundamentally, of necessity, that there is one true God. This true God is not Allah. This true God is not Krishna. This true God is not the god of Joseph Smith or Buddha or the Sikhs or the Bahais. Our God went to great lengths to differentiate Himself from all the gods of the peoples and religions that surrounded His ancient people, and that for a purpose He Himself proclaimed: He seeks true worship, worship based upon a knowledge of who He is in reality, based upon His revelation to man. He does not grant to man the freedom to make images of Him, to worship Him in a manner that pleases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God is particular about His worship. His worship is intimately, vitally connected to truth. Without truth, there is no worship of the Christian God.
문제는 분명하다. 사실 기독교도들은 기본적으로, 필연적으로, 오직 한 신을 믿는다. 그 신은 알라가 아니다. 크리슈나도 아니다. 그 신은 조셉 스미드가 가르친 (몰몬교의) 신도 아니고, 붓다도 아니고, 시크교나 바하이교의 신도 아니다. 기독교도의 신은 고대 히브리인들을 둘러싼 민족과 종교의 신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신은 올바른 숭배에 아울러 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계시에 바탕을 둔 올바른 신앙을 원한다. 신앙이란 그 신앙이 신을 어떤 존재로 숭배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신앙은 늘 진리와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올바른 기독교적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독교도의 신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다. / 번역 : 최광민
And the truth revealed by the Christian God in the Scriptures is without question when it comes to the matter of His law, sin, rebellion, punishment, wrath, and judgment. One of the most amazing things to observe is the willingness shown by “evangelicals” to jump right onto the “we shall never utter a word about wrath or sin or punishment” bandwagon. Is the remnant so small that almost no voices will be raised to cry out against this foolishness? To withhold the truth about sin and judgment out of fear of man's opinions and feelings is to make the cross of Jesus Christ a travesty! There is no cross, there is no sacrifice, where there is no sin, no offense that demands forgiveness be wrought through His perfect sacrifice! The person who refrains from speaking of sin and judgment to “win” a person over is doing so through unfaithfulness to the very gospel itself! And to what has such a person been won over? Where is the gospel when there is no sin to be forgiven at Calvary?
성서 안에서 기독교의 신에 의해 계시된 그 신은, 분명히 그의 율법, 죄, 반역, 징벌, 진노, 그리고 심판이라는 맥락에 등장한다. 소위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신의 진노나 죄와 벌 같은 주제를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기꺼이 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들을 의식하여 죄와 심판의 문제를 곁으로 치워두는 행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과 같다. 만약 죄와 그에 요구되는 벌이 없다면, 십자가도, 그리고 희생도 필요없지 않은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죄와 심판을 말하기를 꺼리는 일은 바로 복음서 그 자체를 믿지 않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가? 골고타에서 용서된 죄가 없다면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인가? / 번역 : 최광민
But it is right here that the new American religiosity clamps its hands over its ears and refuses to hear. America wants God's blessing. America wants God to protect us from more horrific visions of airliners flying purposefully, relentlessly into our national monuments. We want God to be near us as we board our aircraft. We want Him to protect us from the horror of thinking about what it was like when the towers collapsed. We want Him to guide our military and allow us to flex our muscle and launch our missiles with impunity. We want a blessing God, a caring God, who simply panders to our wants and whims. This is the “God” of the new American religiosity.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이 귀를 막고 듣기를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바란다. 우리는 비행기를 탈 때 신이 우리 곁에 계시길, 납치된 여객기가 국가 상징물을 들이받는 그런 무서운 일들로부터 신께서 우리들을 보호해주길 바란다. 또한 신이 미국의 군대를 이끌어주고, 가차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그들의 근육이 행여나 뻐근해지지 않도록 돌봐주시기도 기원한다. 우리는 축복을 내리는 신, 돌봐주시는 신, 그저 우리의 욕망과 꿈을 들어주는 신을 원한다. 이것이 미국의 새로운 종교관이 받드는 "신"이다. / 번역 : 최광민
만약 이런 종교적 변모가 기독교도들에게 호재가 아닌가라고 내게 묻는다면, 난 확실히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겠다. 물론 도처에서 오래된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텅 비었던 교회들이 지난 일요일 사람들로 가득차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토막 난 기독교거나 혹은 이슬람교 - 유대교 - 불교 - 기독교 등의 종교들이 "신의 이름은 달라도 결국 한 신을 믿는다"는 식으로 믿는 형태의 종교관일 뿐이다. 회개를 촉구하는 기독교는 거기에 없다. 오늘날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은 두개의 기둥 위에 서있다. 한 입장은 종교적 자유주의로서, 신은 미지의 존재요 어느 종교를 통해서나 이 신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신은 자신을 신앙하는 방식이나 자신의 의지에 대한 어떤 절대적이고 객관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의 입장에서의 이 신은 좀체 분노하지도 않고, 죄나 심판에 대해 상관조차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군가 '개인이나 혹은 나라를 심판하는 신'에 대해 언급한다면 이 새로운 미국적 종교관은 그를 '이단'으로 규정할 것이다. / 번역 : 최광민
The problem is easily seen: Christians believe, fundamentally, of necessity, that there is one true God. This true God is not Allah. This true God is not Krishna. This true God is not the god of Joseph Smith or Buddha or the Sikhs or the Bahais. Our God went to great lengths to differentiate Himself from all the gods of the peoples and religions that surrounded His ancient people, and that for a purpose He Himself proclaimed: He seeks true worship, worship based upon a knowledge of who He is in reality, based upon His revelation to man. He does not grant to man the freedom to make images of Him, to worship Him in a manner that pleases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God is particular about His worship. His worship is intimately, vitally connected to truth. Without truth, there is no worship of the Christian God.
문제는 분명하다. 사실 기독교도들은 기본적으로, 필연적으로, 오직 한 신을 믿는다. 그 신은 알라가 아니다. 크리슈나도 아니다. 그 신은 조셉 스미드가 가르친 (몰몬교의) 신도 아니고, 붓다도 아니고, 시크교나 바하이교의 신도 아니다. 기독교도의 신은 고대 히브리인들을 둘러싼 민족과 종교의 신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신은 올바른 숭배에 아울러 신에 대한 바른 이해와 계시에 바탕을 둔 올바른 신앙을 원한다. 신앙이란 그 신앙이 신을 어떤 존재로 숭배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신앙은 늘 진리와 생생하게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올바른 기독교적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독교도의 신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다. / 번역 : 최광민
And the truth revealed by the Christian God in the Scriptures is without question when it comes to the matter of His law, sin, rebellion, punishment, wrath, and judgment. One of the most amazing things to observe is the willingness shown by “evangelicals” to jump right onto the “we shall never utter a word about wrath or sin or punishment” bandwagon. Is the remnant so small that almost no voices will be raised to cry out against this foolishness? To withhold the truth about sin and judgment out of fear of man's opinions and feelings is to make the cross of Jesus Christ a travesty! There is no cross, there is no sacrifice, where there is no sin, no offense that demands forgiveness be wrought through His perfect sacrifice! The person who refrains from speaking of sin and judgment to “win” a person over is doing so through unfaithfulness to the very gospel itself! And to what has such a person been won over? Where is the gospel when there is no sin to be forgiven at Calvary?
성서 안에서 기독교의 신에 의해 계시된 그 신은, 분명히 그의 율법, 죄, 반역, 징벌, 진노, 그리고 심판이라는 맥락에 등장한다. 소위 "복음주의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신의 진노나 죄와 벌 같은 주제를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기꺼이 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들을 의식하여 죄와 심판의 문제를 곁으로 치워두는 행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과 같다. 만약 죄와 그에 요구되는 벌이 없다면, 십자가도, 그리고 희생도 필요없지 않은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죄와 심판을 말하기를 꺼리는 일은 바로 복음서 그 자체를 믿지 않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가? 골고타에서 용서된 죄가 없다면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인가? / 번역 : 최광민
But it is right here that the new American religiosity clamps its hands over its ears and refuses to hear. America wants God's blessing. America wants God to protect us from more horrific visions of airliners flying purposefully, relentlessly into our national monuments. We want God to be near us as we board our aircraft. We want Him to protect us from the horror of thinking about what it was like when the towers collapsed. We want Him to guide our military and allow us to flex our muscle and launch our missiles with impunity. We want a blessing God, a caring God, who simply panders to our wants and whims. This is the “God” of the new American religiosity.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이 귀를 막고 듣기를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바란다. 우리는 비행기를 탈 때 신이 우리 곁에 계시길, 납치된 여객기가 국가 상징물을 들이받는 그런 무서운 일들로부터 신께서 우리들을 보호해주길 바란다. 또한 신이 미국의 군대를 이끌어주고, 가차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그들의 근육이 행여나 뻐근해지지 않도록 돌봐주시기도 기원한다. 우리는 축복을 내리는 신, 돌봐주시는 신, 그저 우리의 욕망과 꿈을 들어주는 신을 원한다. 이것이 미국의 새로운 종교관이 받드는 "신"이다. / 번역 : 최광민
But what America does not want is a God who is holy, who is just, and who
has revealed His will concerning how we, His creatures, are to live. America
is a land soaked in blood. We glory in violence. We are so selfish, so bound
in our avarice, fornication, and sexual lust, that we murder our own
offspring in the womb (or at birth as in partial-birth infanticide). Our
hands are covered in blood, and yet we think lighting a candle and lifting
them up while mumbling “God Bless America” is going to bring God's favor?
Listen to the words of God to another nation that likewise was “religious”
but refused to hear the word of repentance: “So when you spread out your
hands in prayer,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Yes, even though you multiply
prayers, I will not listen. Your hands are covered with blood.” (Isaiah
1:15)
그러나 우리 미국인들은 "거룩하고, 정의로우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의 피조물들에게 계시해 준 신"은 원치 않는다. 미국은 피로 물든 나라다. 우리는 늘 폭력을 찬양하고, 너무나 탐욕스러우며, 수많은 아기들을 어머니의 자궁에서 (혹은 출생 시 벌어지는 영아살해라는 형태로) 죽음으로 몰고가게 만드는 음란과 성적타락에 빠져있다. 우리 자신의 손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으면서도 고작 생각하기를, 촛불이나 켜들고 {신이여 아메리카를 축복하소서 God Bless America}나 웅얼거리면서 노래하면 신이 어여삐 보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표면적으로는 종교적이었지만 실제론 신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했던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성서의 구절을 들어볼텐가? - 너희가 손을 펴들고 기도한들 나는 외면할 것이며, 아무리 절절히 기도한들 나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손이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이사야 1:15). / 번역 : 최광민
Is America so arrogant, so utterly self-absorbed, so diseased by religious liberalism and philosophical subjectivism, that she thinks she can ignore all of history itself and demand from God blessings when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evils? Do we really need to be reminded that Planned Parenthood has killed more little children in our land in the week since the attacks than died in the attacks themselves? Are we so blind? Surely the scourge of abortion would be enough to warrant the unleashing of the wrath of God, but there is so much more!
미국이 얼마나 거만하고, 자기도취적이고, 철저히 종교적 자유주의와 철학적 주관주의에 빠져있길래, 우리 자신의 지난 역사를 스스로 무시하고 있으면서도, 또 뻔뻔스럽게도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조금도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감히 신에게 축복을 요구하는가? 매주마다 9/11 참사보다도 많은 태아들이 낙태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만 되겠는가? 우리 미국인은 그렇게도 눈이 멀었단 말인가? 이런 낙태의 광풍은 신의 가차없는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 번역 : 최광민
We are a nation on a crusade; a crusade to wipe from our history books every vestige of our former religious past. The religion of scientism, with its chief idol in the person of Darwin, has become enshrined in our very governmental policies. There is no creator, we are told, to express His law for us in the first place. We want to banish God and His law from our courtrooms, our schools, our every public institution. If God says it is wrong, we celebrate it. Every form of sexual debauchery is found in the land. The airwaves are filled with programs that exalt fornication and adultery. Major film stars are lauded for the most sinful lifestyles. Homosexuality is not only turned into an acceptable “lifestyle,” it is made a political right, a political force, a test-case for being properly “tolerant.” The list goes on and on and on. The widow and orphan is oppressed, while the nation indulges in every creature comfort, sits back in its luxury, looks about upon the bounty of the land, and says, “Ah, what the labor of my own hands, my own intelligence, my own insight, has accomplished.”
미국은 역사책에서 과거 종교적 전통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행진 중에 있다. 다윈이라는 우상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란 종교는 우리의 모든 정책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이제 '자신의 율법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신과 그의 법을 우리의 법정과 학교 같은 모든 공공기관에서 몰아내려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라고 신이 심판해주신다면 우리는 기뻐하리라. 이 나라의 도처에는 모든 종류의 성적 탐욕이 넘쳐나고 있다. 공중파는 음란과 간음을 찬양하는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고 있고, 동성애는 이제 "받아들여질 만한 생활양식"일 뿐 아니라, 정치적 권리와 권력이 되었고, 또 적절한 "관용"의 시금석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런 사례들은 끝없이 나열될 수 있다. 이 나라가 삶의 안락에 탐닉할 때, 사치에 몸을 기대고 이 땅의 풍요로움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아, 내 손으로 일궈낸 것들과, 나의 지성과, 나의 직관은 이제 너무나 완벽해 !" 라고 외치는 동안, 우리의 과부들과 고아들은 버림받고 있다. / 번역 : 최광민
Religious liberals may mock our “literalistic” reading of the Bible at this point, preferring to simply label us “fundamentalists” and ignorant, but the fact of the matter is, they know they could never win a scholarly debate on whether the Bible actually teaches that these things are sins which must, inevitably, bring God's judgment upon a people. They know that is exactly what the Bible teaches. They are just embarrassed by it, and hence seek to suppress that truth.
이 점에 대해,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근본주의자" 혹은 "무식쟁이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한다. 그러나 성서가 이 모든 것들이 신의 심판에 붙여질 죄라고 부르는지의 여부에 대한 학문적 논쟁에서는 사실상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들 자유주의자들 역시 성서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해하며,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억압하고자 한다. / 번역 : 최광민
그러나 우리 미국인들은 "거룩하고, 정의로우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의 피조물들에게 계시해 준 신"은 원치 않는다. 미국은 피로 물든 나라다. 우리는 늘 폭력을 찬양하고, 너무나 탐욕스러우며, 수많은 아기들을 어머니의 자궁에서 (혹은 출생 시 벌어지는 영아살해라는 형태로) 죽음으로 몰고가게 만드는 음란과 성적타락에 빠져있다. 우리 자신의 손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으면서도 고작 생각하기를, 촛불이나 켜들고 {신이여 아메리카를 축복하소서 God Bless America}나 웅얼거리면서 노래하면 신이 어여삐 보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표면적으로는 종교적이었지만 실제론 신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했던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성서의 구절을 들어볼텐가? - 너희가 손을 펴들고 기도한들 나는 외면할 것이며, 아무리 절절히 기도한들 나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손이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이사야 1:15). / 번역 : 최광민
Is America so arrogant, so utterly self-absorbed, so diseased by religious liberalism and philosophical subjectivism, that she thinks she can ignore all of history itself and demand from God blessings when she refuses to repent of her evils? Do we really need to be reminded that Planned Parenthood has killed more little children in our land in the week since the attacks than died in the attacks themselves? Are we so blind? Surely the scourge of abortion would be enough to warrant the unleashing of the wrath of God, but there is so much more!
미국이 얼마나 거만하고, 자기도취적이고, 철저히 종교적 자유주의와 철학적 주관주의에 빠져있길래, 우리 자신의 지난 역사를 스스로 무시하고 있으면서도, 또 뻔뻔스럽게도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조금도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감히 신에게 축복을 요구하는가? 매주마다 9/11 참사보다도 많은 태아들이 낙태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만 되겠는가? 우리 미국인은 그렇게도 눈이 멀었단 말인가? 이런 낙태의 광풍은 신의 가차없는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 번역 : 최광민
We are a nation on a crusade; a crusade to wipe from our history books every vestige of our former religious past. The religion of scientism, with its chief idol in the person of Darwin, has become enshrined in our very governmental policies. There is no creator, we are told, to express His law for us in the first place. We want to banish God and His law from our courtrooms, our schools, our every public institution. If God says it is wrong, we celebrate it. Every form of sexual debauchery is found in the land. The airwaves are filled with programs that exalt fornication and adultery. Major film stars are lauded for the most sinful lifestyles. Homosexuality is not only turned into an acceptable “lifestyle,” it is made a political right, a political force, a test-case for being properly “tolerant.” The list goes on and on and on. The widow and orphan is oppressed, while the nation indulges in every creature comfort, sits back in its luxury, looks about upon the bounty of the land, and says, “Ah, what the labor of my own hands, my own intelligence, my own insight, has accomplished.”
미국은 역사책에서 과거 종교적 전통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행진 중에 있다. 다윈이라는 우상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란 종교는 우리의 모든 정책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이제 '자신의 율법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신과 그의 법을 우리의 법정과 학교 같은 모든 공공기관에서 몰아내려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라고 신이 심판해주신다면 우리는 기뻐하리라. 이 나라의 도처에는 모든 종류의 성적 탐욕이 넘쳐나고 있다. 공중파는 음란과 간음을 찬양하는 프로그램들로 넘쳐나고 있고, 동성애는 이제 "받아들여질 만한 생활양식"일 뿐 아니라, 정치적 권리와 권력이 되었고, 또 적절한 "관용"의 시금석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런 사례들은 끝없이 나열될 수 있다. 이 나라가 삶의 안락에 탐닉할 때, 사치에 몸을 기대고 이 땅의 풍요로움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아, 내 손으로 일궈낸 것들과, 나의 지성과, 나의 직관은 이제 너무나 완벽해 !" 라고 외치는 동안, 우리의 과부들과 고아들은 버림받고 있다. / 번역 : 최광민
Religious liberals may mock our “literalistic” reading of the Bible at this point, preferring to simply label us “fundamentalists” and ignorant, but the fact of the matter is, they know they could never win a scholarly debate on whether the Bible actually teaches that these things are sins which must, inevitably, bring God's judgment upon a people. They know that is exactly what the Bible teaches. They are just embarrassed by it, and hence seek to suppress that truth.
이 점에 대해,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처럼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근본주의자" 혹은 "무식쟁이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한다. 그러나 성서가 이 모든 것들이 신의 심판에 붙여질 죄라고 부르는지의 여부에 대한 학문적 논쟁에서는 사실상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들 자유주의자들 역시 성서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해하며,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억압하고자 한다. / 번역 : 최광민
As I said, Christians who believe the Bible are an unpopular lot today. If
they speak in accordance with the Word they may well find themselves being
called “unpatriotic” and “judgmental.” In fact, given that the new orthodoxy
demands of us the confession “Everyone is God's child” over against such
clear biblical teaching as John 1:12 (remember how Christians refused to say
“Caesar is lord” and died as a result?), we must be ready to “count the
cost” in engaging in formal, cultural “heresy” by speaking the truth. We
need to realize: this new American religiosity can take on the same kind of
fanatic zeal that kept the hijackers' hands steady all the way to their
end.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성서를 믿는 기독교도들은 오늘날 매우 인기없는 존재들이다. 기독교도들이 성서에 근거해 말할 때, 미국인들은 그들을 "애국심이 부족"하고 "매사에 비판적"이라고 불러댄다. 사실 미국의 이 새로운 "정통적" 신앙은 "모든 사람은 신의 자녀"라고 고백하길 요구한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 속에 등장하는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에 위배된다. (생각해 보자. 초기 기독교도들이 "황제는 우리 주님"이라고 부르길 거부하다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우리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공식적이고 문화적인 "이단" 이 가져올 결과를 셈해 볼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광적인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이 여객기를 납치한 그 테러리스트들의 광적인 종교적 열정과도 상통함을 알아야 한다. / 번역 : 최광민
May God grant His people the strength to proclaim loudly God's demands upon a wicked nation, and may He be pleased to bring repentance and revival in a land where darkness reigns.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성서를 믿는 기독교도들은 오늘날 매우 인기없는 존재들이다. 기독교도들이 성서에 근거해 말할 때, 미국인들은 그들을 "애국심이 부족"하고 "매사에 비판적"이라고 불러댄다. 사실 미국의 이 새로운 "정통적" 신앙은 "모든 사람은 신의 자녀"라고 고백하길 요구한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 속에 등장하는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에 위배된다. (생각해 보자. 초기 기독교도들이 "황제는 우리 주님"이라고 부르길 거부하다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우리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공식적이고 문화적인 "이단" 이 가져올 결과를 셈해 볼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광적인 이 새로운 미국의 종교관이 여객기를 납치한 그 테러리스트들의 광적인 종교적 열정과도 상통함을 알아야 한다. / 번역 : 최광민
May God grant His people the strength to proclaim loudly God's demands upon a wicked nation, and may He be pleased to bring repentance and revival in a land where darkness reigns.
나는 기원한다: 신은 이 사악한 나라(미국)를 향한 그의 요구를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기를. 또 어둠이 지배하는 이 나라(미국)에 회개와 갱신이 일어날 때 기뻐해 주시기를. / 번역 : 최광민
번역: 최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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