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중년단

[© 최광민] 오리온을 보다

草人! 2023. 9. 29. 14:20
작성

© 草人 최광민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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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오리온을 보다


심야에 홀로 별을 보는 건 사실 무척 고독한 취미다. 이에 비할 것은 홀로 가는 심야 민물낚시가 정도가 아닐런지. 

물론 이 비교는 어두운 밤하늘을 찾아 홀로 멀리 찾아갈 때 이야기고, 내 경우처럼 주로 집 앞에서 하늘을 보는 경우라면 동네순찰 돌다가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혹은 지나가던 동네 사슴이 콧방귀도 뀌고 지나가니 심야낚시 경우처럼 절대고독이랄 순 없겠다. 사실 심야 민물낚시는고독을 넘어 좀 무섭기까지 해서 겁 많은 나는 꿈도 꾸지 않는다.

M42 오리온 성운, 6인치 반사, IMX533으로 촬영. ©최광민


늦가을이 깊어지며 겨울로 접어들 무렵에 밤하늘에서 가장 반가운 손님은 단연 오리온 자리와 오리온 성운. 

내가 언제 오리온 - 정확히는 "오리온의 허리띠" - 를 "처음" 보았는지는 불분명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세 별을 "'오리온의 '허리띠'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본 때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12살 되던 해 12월 어느 밤 동네목욕탕에 목욕하고 나올 때 골목길 위 하늘에서 선명하게 "오리온의 허리띠"를 구성하는 세 별 (알니타크, 알닐람, 민타카)을 보았던 때였다. 

당시는 물가안정의 일환으로 대중목욕탕 입욕비를 1000원 이하로 동결했던 시절이라, 주말에 별로 할 것 없던 당시엔 한 주 혹은 두 주마다 가는 목욕탕은 꽤 좋은 여가생활 (온천여행?)이었고, 초/중/고등학교에 토요일 오전수업이 있던 시절이었기에 토요일 오후가 목욕탕 가기엔 딱 좋은 때였다. 이른 오후엔 너무 사람이 많아서 발 디딜 틈도 없었기에, 좀 한적하게 목욕하려면 폐장하는 밤 9시 즈음에 맞춰 저녁 7시에 가서 한 시간 반 정도 목욕하는게 나의 주말 일과였다. 천원 한장이 주던 소박한 행복이 있던 시절.

"오리온의 허리띠"란 용어 자체는 그 무렵 읽었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책은 그해 11월에 교회에서 성경퀴즈대회 부상으로 받은 책으로, '생명의 말씀사'란 기독교 출판사에서 출판한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 헨리 모리슨의 책 혹은 그 책의 다이제스트 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로로 길쭉했던 그 책의 반들거리는 회색 표지가 지금도 떠오른다.

이 책에서 구약성서 {욥기} 38장의 구절이 인용되었는데, {욥기} 38장에서 신은 욥에게 일련의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천문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등장한다.

" ....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

그 책은 여기 등장한 "묘성"이 "플레이아데스" 이고 "삼성의 띠"는 "오리온의 허리띠"를 구성하는 세 별 이라고 설명했는데,  삽입된 그림이 없어서 그 대목을 읽을 당시엔 무얼 뜻하는건지 잘 몰라서 대충 건너뛰었다.  하지만 몇 주 후, 온 몸으로 김을 뿜으며 목욕탕을 나서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구름 한점 없는 겨울 밤하늘을 문득 올려보다가 "오리온의 허리띠"와 그야말로 우연히 조우했는데, 너무나 선명하게 세 별이 도열한 걸 보고 책의 내용이 떠올라 전율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책의 저자는 "묘성(들)"이 "묶여있다"라거나 혹은 "오리온의 허리띠"라는 표현은 천체들이 "중력장"으로 묶여있다는 뜻이며, "중력"이란 개념이 생기기 수 천년 전에 씌여진 {욥기}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찬탄했다. 

글쎄? 

플레이아데스의 별들이 중력장으로 묶인 것은 맞지만, 오리온 허리띠의 세 별은 중력장으로 묶인게 아니고 지구로부터 거리도 제각각이라 3차원 공간에서 일렬로 정렬된 것도 아니다. 즉, '오리온의 허리띠'는 지구 쪽에서 보았을 때의 착시효과다. 성군(星群, asterism)이라고 한다. 애시당초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편견없이 저 별들을 바라볼 땐 누구나 '플레이아데스'는 덩어리로 묶인 것으로, 오리온 허리띠의 세 별은 띠 처럼 보일 뿐이니, {욥기}의 시적표현을 가지고 성서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증명으로 삼으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과도한 것이다.

야밤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팟캐스트나 음악을 들으며 별을 보지만, 요새는 고독에 고상과 풍류를 더하려는 듯 오글거리는 "시 낭송"도 듣는데, 겨울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오리온 자리를 바라볼 때면 늘 20세기 초 미국시인 새러 티스데일의 시 {Winter Stars}를 떠올린다. 



Winter Stars

-- Sara Teasdale, 
-- from Flame and Shadow (1920)

I went out at night alone;
The young blood flowing beyond the sea
Seemed to have drenched my spirit’s wings—
I bore my sorrow heavily.

But when I lifted up my head
From shadows shaken on the snow,
I saw Orion in the east
Burn steadily as long ago.

From windows in my father’s house,
Dreaming my dreams on winter nights,
I watched Orion as a girl
Above another city’s lights.

Years go, dreams go, and youth goes too,
The world’s heart breaks beneath its wars,
All things are changed, save in the east
The faithful beauty of the stars.

(번역: 최광민)

밤에 홀로 밖을 나선다:
바다 건너 젊은이들이 흘리는 피로
영혼의 날개가 젖어버리는
그 슬픔을 간신히 참으며.

고개 들어 하늘 위로
눈 위로 아른거리는 어둠 속으로
옛적부터 불타오르는
오리온이 동편에 보인다.

아버지 집 창문으로,
겨울밤 꿈을 꾸면서,
또 다른 도시의 불빛 위로
어린시절, 나는 오리온을 보았지.

세월도 꿈도, 젊음도 지나가고
세상의 심장은 전쟁 속에 무너져 내린다.
모든게 다 변해도 홀로 변치 않는 건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동편의 별들 뿐 


Years go, 
Dreams go, 
and youth goes too .....


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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