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확, {오류는 나의 스승}

草人! 2024. 9. 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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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는 나의 스승

- 임동확

우린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그 궁극을 가늠하지 못한다
어둠이 가을강처럼 아늑해진 후에야
겨우 불빛이 그 근원의 반경을 드러내듯
어찌하여 나를 버리느냐고
비탄의 피울림을 울던 극치에서야
그가 한 인간이었음을 증거하듯
이곳에서 완전을 꿈꾸는 자
사랑의 완성을 노래하는자
내가 보기엔 가짜다
그리하여 늘 분명한 태도를 강요하는 자도
이미 체제의 편이다

자본이 몰염치를 화폐처럼 찍어내고
이념이 절망의 광기를 부도내듯
흠결 없는 자아란,
그래서 참회가 허용되지 않는 내부란,
얼마나 지루하고 끔찍한 학대인가
그렇다. 막장에서 돌아서는 것도
우리에겐 하나의 출구였듯

이제 오류는 나의 스승
그토록 깊은 나락의 미궁조차
내겐 공포라기보다 차라리 거대한 통로
그 거대한 종말론의 대지를 상속받고자 한다
오, 살아 있음의 이 태연한 흔적들이여
정말이지 잊고 싶은 것을 잊어버리며
아무래도 난 이곳에서 늙어가야겠다
잔정 많은 느티나무 뿌리처럼 얽힌 채
누군가 가던 그 길로 합류해야겠다


E-잉크로 E-페이퍼에 (Onyx BOOX Go 10.3) 손글씨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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