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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민] 크리스마스 휴전, 1914년
草人!
2024. 10. 8. 09:43
작성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2-2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크리스마스 휴전, 1914년
순서
© 최광민, Kwangmin Choi, 2003-12-25
전문복사, 문맥을 무시한 임의적 발췌/수정, 배포를 금합니다.
제목
크리스마스 휴전, 1914년
순서
- 1914년 12월 24일
- 아이러니, 부조리
- 맺음말
§ 1914년 12월 24일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인 1914년의 크리스마스 무렵.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벨기에 서남부 지역에서 팽팽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12월 24일에도 양측은 바로 코 앞의 지근거리에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서 교전 중이었는데, 독일군 쪽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독일측 참호에서 먼저 사격을 중단하더니 자신들의 참호 위에 촛불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원래 독일의 풍습이었다.) 이를 본 영국군 사병들은 이 상황을 지휘부에 전달했고, 지휘부는 사격은 일단 중단하되 경계를 풀지말고 독일군의 동태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냈다.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벨기에 서남부 지역에서 팽팽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12월 24일에도 양측은 바로 코 앞의 지근거리에 참호를 파고 들어앉아서 교전 중이었는데, 독일군 쪽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독일측 참호에서 먼저 사격을 중단하더니 자신들의 참호 위에 촛불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원래 독일의 풍습이었다.) 이를 본 영국군 사병들은 이 상황을 지휘부에 전달했고, 지휘부는 사격은 일단 중단하되 경계를 풀지말고 독일군의 동태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려 보냈다.
Stanley Weintraub, {Silent Night: The Story of the World War I Christmas Truce}
이 소식은 급속도로 주변 전선으로 퍼져나갔고, 얼마 후에는 프랑스군과 벨기에군 일부도 이 곳을 방문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기념예배에 함께 하고, 위스키와 담배를 나누고, 여자친구 사진을 서로 교환하고, 국가 별로 축구경기를 하고, 참호중간지대에서 죽어 수 개월동안 방치되어 있던 전우들의 시체를 함께 수습하여 공동장례식도 치른 후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사병 뿐 아니라 일선장교들도 서로를 방문해 며칠 간의 짧은휴전에 합의했다.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부전선 벨기에의 Ypres Salient 남부지역의 격전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흔히 제1차 세계대전 전사에서 {크리스마스 휴전, Christmas Truce}라고 불리는 에피소드로 남게된다. 소식은 전선을 타고 퍼져 약 10만 명의 병사들이 산발적으로 비공식적 휴전을 즐기게 된다.
이 이야기의 전말은 영국 신문인 {The Daily Mirror}의 1915년 1월 8일 자 기사로 민간인들에게도 비교적 자세히 알려지게 된다.
1914년 12월 25일. 지난 18일에 벌어진 양측의 교전에서 사망한 전우들의 시신을 참호중간지대에서 함께 수습하는 영-독 병사들
축구경기를 하는 영-독 병사들
참호중간지대에서의 기념촬영, 1914년 12월 26일
§ 아이러니, 부조리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교회에서 가끔 듣게 되는 이 이야기는 가감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목사들이 이 일화를 소개하며 크리스마스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를 가졌는가를 강조할 때, 세계 제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법한 노병들은 회상에 젖고, 아이들의 감동한 눈은 크게 빛나고, 앞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는 더 크게 반짝거린다.
여기에는 무서운 아이러니와 부조리가 있다. 분명 이 이야기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을 살짝젖게하는 아름다운 힘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는 목사들이 이야기 해주지 않는, 혹은 오직 {리더스 다이제스트}류의 감동 만을 원하는 회중들이 듣기를 원치 않는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아있다. 왜 사람들은 더 남아있는 이야기를 듣고 곱씹으려 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속에 사람의 마음을 철렁하게 만드는 끔직함과 모순이 도사리고 있음을 본인들도 알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제 2부는 전혀 아름답지않다.
누구나 알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그 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며칠 후 지나 새해가 밝았을때, 이들은 각자의 참호 속에서 서로의 가슴에 기관총과 포탄을 다시 겨누고 있었다.
양측의 사령부는 며칠 전에 있었던 돌발사태에 적지않게 당황했다. 가령, 영국군 사령관 존 프렌치는 일선장교들에게 다시는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을 명령했고, 영국 제 2군단(British II Corps) 사령관 Horace Smith-Dorrien은 상황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하여, 향후 독일 측과의 어떤 우호적인 교신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독일측 지휘부 역시 마찬가지 대응을 취했다. 크리스마스 휴전에 분노한 독일 측 인물로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시 제 16 바바리아 동원보병사단 (the 16th Bavarian Reserve Infantry)에 병사로 참전한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은 전시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너희 독일인들은 명예를 잊었는가? Such things should not happen in wartime. Have you Germans no sense of honor left?”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수뇌들에게 있어 병사들은 (증오하며 혹은 아무 생각없이) 싸우는 기계여야 했고, 'No Man's Land'에는 문자 그대로 산 사람들이 아닌 죽은 사람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비록 4년을 지리하게 이어진 제 1차 세계대전 중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유사한 시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후에는 1914년에 발생한 것과 같은 극적상황이 재연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계속 죽어나갔고, 지휘부는 만족했다. 이 죽음은 1918년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다.
§ 맺음말
이들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했다면, 어떻게 바로 조금 전까지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며 담배를 나누고, 여자친구 사진을 나누어 갖고, 함께 캐롤을 부르고, 죽어간 자신들의 친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평화의 기도를 함께 속삭이던 사람들이, 며칠이 지난 후에는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눌 수 있을까? 상관의 명령이므로? 그렇다면 그들을 조금 전 함께 모이게 했던 힘을 가졌던 사랑의 神은 어디에 가 있었으며, 아기 예수의 구유는 어디로 치워졌을까? 그 예수가 크리스마스날에는 서로 죽이면 안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서로를 죽여도 된다고 가르쳤다면, 그 아기는 내가 아는 크리스마스의 아기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神조차도 고개돌릴 부조리와 모순이 아닌가.
당시 제 2 베스트팔렌연대 (the 2nd Westphalian regiment) 소속으로 참전한 독일군 구프타프 리벤자암(Gustav Riebensahm)은 이 부조리를 이렇게 일지에 적었다.
The English are extraordinarily grateful for the ceasefire, so they can play football again. But the whole thing has become slowly ridiculous and must be stopped. I will tell the men that from this evening it's all over.
...영국군들은 휴전을 매우 즐거워했고, 덕분에 축구를 다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들은 조금씩 우스꽝스러워져가고 있고, 언젠가는 끝나야 할 것 같다. 나는 영국애들에게 말해줄 것이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이 모든 것도 끝날거라고.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는 분명히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참호로 돌아가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눌 때,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정확히는 그 날을 사람들에게 준 神을 모독하고 있었다. 이 일화의 제 2부가 가진 모순을 감추고, 제 1부만을 말하고 듣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같은 모독에 참여하고 있다. 시신이 널부러져 있는 No Man's Land 에서 神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냥 위스키와 담배와 여자친구의 사진을 나누고 축구만 했으면 차라리 모순은 적었으리라.
나는 이 일화를 여전히 '아름답다'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엄청난 자기모순을 가진 '끔찍한' 이야기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아름답고도 끔찍한' 이야기라고 불러야 할까?
Gloria in excelsis Deo
et in terra pax homínibus bonae voluntatis.
......"homínibus bonae voluntatis"
草人
기사 :
- 1954년 BBC 인터뷰
- http://news.bbc.co.uk/1/hi/special_report/1998/10/98/world_war_i/199768.stm
- http://news.bbc.co.uk/1/hi/special_report/1998/10/98/world_war_i/197627.stm
- http://www.firstworldwar.com/features/christmastruce.htm
- http://history1900s.about.com/library/weekly/aa122100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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